
일시: 6월 17일(목)
누구와?: 미녀와
마신 양: 겁나게 많이
목요일에 술을 마시고도 술일기를 쓰는 걸 미뤄왔다. 어떤 소재로 써야할지 머리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걸 쓰자니 그렇고, 저것도 좀 그렇고. 해서, 전에 학회 때 탔던 KTX 얘기를 마저 한다.
1. 산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는 10분의 7이 산이라고 배웠다. 진짜로, 우리 나라 어느 곳을 가든지 산이 안보이는 곳은 없다. 그걸 난 KTX를 타면서 절실히 느꼈다. 10분의 7이 산이니까 기차 구간의 70%가 터널이다. 특히 대구와 대전 사이가 그런데, 그 구간 동안 휴대전화를 하면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 어, 터널이다. 들리니? 안들린다고? 아이 참... 아, 빠져나왔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 어, 또 터널이다. 들리니? 아, 들려? 뭐라고? 안들려? 터널이 왜이렇게 기냐. 아, 드디어 나왔다! 내가 하고픈 말이 뭐냐면... 에이 씨, 또 터널이다!!"
2. 커피
"키가 안큰다"고 어머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던 까닭에, 난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꼭 마셔야 할 때가 있는데, 너무 졸려서 내려야 할 역에 못내릴 것같은 느낌이 들 때다. 무궁화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1000원에 판다. 똑같은 커피를 새마을에서는 2천원에 판다. 천원인줄 알고 달라고 했다가, 2천원을 뺐길 땐 괜히 시켰다고 후회를 했다. 마셔보니 맛은 똑같더만... 그런 의문을 나만 가진 게 아니어서, 어떤 아저씨 한분이 그걸 따졌다. 판매원의 말, "비싼 기차니까 그렇죠!" 희한한 논리다. 장소가 바뀌어도 동일한 제품의 가격은 똑같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논리라면, 사이다도 새마을에선 1천원을 받아야잖아? 비행기가 그렇듯이, 비싼 기차를 타면 커피 쯤은 서비스를 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KTX에서는 무궁화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커피를 3천원에 판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KTX를 타면 절대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가서는 더 비싼 커피를 마실지라도.
3. 의자
일반 기차를 탔을 때, 앞 사람이 등받이를 너무 뒤로 제끼면 좀 불편하다.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내릴 때도 불편하고. 내가 목격한, 어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열나게 싸운 것도 의자를 조금만 덜 제끼라는 요구에 아저씨가 불응한 데서 기인했다. 그 아주머니는 어느 선 이상은 자신의 땅이지만, 아저씨는 제껴질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자기 땅이라고 생각했음직하다.
KTX에서는 이런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KTX의 의자는 방안에 널빤지를 세워둔 것과 같다. 의자를 뒤로 제끼면-그 각도도 제한되어 있지만-아래쪽이 앞으로 몰려 다리를 뻗을 공간이 줄어든다. 다시 말해서 개인마다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고, 그 선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거다. 난 이런 게 마음에 든다. 의자를 뒤로 돌려 넷이서 놀지 못하도록 한 것도 내겐 좋은 점이다. 가장 좋은 점은 무진장 빠르다는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