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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개역판 ㅣ 까치글방 86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 까치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내 취미가 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숱하게 접한 단어가 바로 '마키아벨리즘'이었다. 그 단어를 찾아보기가 영 귀찮았던 난 같이 근무하던-아니, 같이 놀던-친구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 "쉽게 말하면 사기치는 거야!"
뭔가를 배우면 금방 써먹고 싶어지는 나, 또다른 친구에게 가서 마키아벨리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데?" 난 그에게 천원만 줘보라고 한 다음, 500원을 건네줬다. "500원 내놔!"란 그의 말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바로 마키아벨리즘이야!"
뭔가를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주위 사람들까지 모조리 잘못 알게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
<군주론>을 읽어본 바,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것은 현실 세계에서 군주가 해야 할 처신이지, 결코 사기를 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플라톤을 비롯한 이전의 철학자들이 현실을 도외시한 채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만 주장한 반면, 마키아벨리-이하 마씨라고 부른다-는 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직시한 것이다. 남을 잘 신뢰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유덕한 행위지만, 때로는 공동체 전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108쪽)" 하지만 그는 비록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실상은 안그런 척, 신뢰성이 있는 척 행동해야 인민의 미움을 사지 않고 권력을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은 이 점을 악용, 현실에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모양인데, 마씨의 주장은 이탈리아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싸움질만 하던 시절에 나온 것이며, 마씨 또한 "정부가 안정되고 확고한 상황에서 운영된다면 연민, 신뢰, 정직함 같은 덕목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정치인들이여, 지금이 전시라고 우기지 않을 거면, 정직하게 사시라.
"운명이란 우리 활동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락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지만, 신중함과 과감함 중에 후자가 더 낫다고 하는 마씨의 다음 주장은 좀 어이가 없다. 마씨의 말이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자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유명세로 보아, 여자는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여기서 나온 건 아닐까 의심이 간다.
"일개 평민에서 다만 운이 좋아서 군주가 된 자는..그 지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45쪽)"는 대목과, 막시미누스가 "미천한 신분 출신으로...원래 목동이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경멸받았다는 구절(141쪽)은 고졸에 말투가 상스럽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노무현을 연상케 한다. 기득권 세력의 공격을 막느라 집권 1년은 아무것도 안했다지만, 이제 집권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한 마당이니 그가 어떤 군주로 기억되느냐는 순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참고로 4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사는 데는 주저하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느 분이 이 책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책마다 "이런 책 읽지말고 <대통령과...> 같은 책 읽으란 말야"라고 딴지를 걸어 날 짜증나게 했던 그 사람이 어느날 이 책을 선물한 것. 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근 일년 이상을 책장에 놓아 두었는데, 결론만 얘기하면 하나도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 유명한 책이라고 너무 두려워 말자. 그들도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