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퇴근버스는 의대 앞에서 출발해서 자연대, 사회대를 돌면서 사람을 태운다. 그러니까 나처럼 의대 주변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빈 버스의 아무 자리나 앉을 수가 있는거다. 누군가 앉아있는 옆자리에 끼어드는 건 좀 미안한 일인지라, 그건 좋은 점인 것 같다. 처음 퇴근버스를 탔을 무렵, 난 사람들의 행동양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대 사람들끼리는 서로 다 알지만, 결코 같이 앉지 않는다는 것. 만나면 가벼운 목례나 덕담을 주고받고는 다들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

잠을 자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잠을 자 버리면 실례니까. 하지만 내릴 때까지 안자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 왜 그럴까?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과 같이 앉고픈 심리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나이가 좀 들고나서 알았다. 사람들은 적당히 아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을. 아주 친한 사이라면 모르겠지만, 직장이 같다는 이유로 만난 사람끼리는 같이 나눌 공통의 화제가 별로 없다. 나도 한번 의대 사람과 앉아 봤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침묵---
나: 하시는 일은 잘 되세요?
그사람: 그렇죠 뭐...
--다시 침묵---

딱이 할말이 없어 말뚱말뚱 있어야 하는 그 썰렁함, 그 어색한 침묵이 사람들은 불편한 거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 방이 있는 4층까지 올라가는 것도 굉장히 긴 시간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사를 하자마자 다른 곳을 향해 서있는 것이리라. 엘리베이터도 그런데, 내릴 때까지 두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차 안에서 둘이 같이 있는다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옆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면 책을 읽든 잠을 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나도 이젠 적당히 아는 사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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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5-1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무지 잘 아는 사이죠~ 그렇죠?^^
(그런데...의대 사람들이요, 혹시 아는 사람 몰래 코 파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

*^^*에너 2004-05-1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마태우스님하고는 조금아는 사이죠. ^^
나중에 시간이 좀더 지나면 많이 아는 사이가 될수있겠죠. ^^

마립간 2004-05-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의 언중유골(言中有骨)!

플라시보 2004-05-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역시 저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우리 회사의 외적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정말 수없이 많은 적당히 아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어쩌다 엘리베이터라도 같이 타면 눈인사를 하고 난 후 어색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메시지 2004-05-1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거리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인간들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는 과연 얼마일까요?
참, '아름다운 거리'라는 희곡이 있는데 거기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네요. 가물가물 기억이 잘 안나네요. 기억력 감퇴에 뭐가 좋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마태우스 2004-05-1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님....몰래 코후비시는군요!
*^^*에너님/그쵸. 시간이 지나면 많이 아는 사이가 되겠죠?
마립간님/흠...님은 코후비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플라시보님/님처럼 호걸도 그런 걸 의식하시나요???

마태우스 2004-05-1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님/아름다운 거리는 비온 뒤의 거리가 아닐까요? <---썰렁.

마립간 2004-05-1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대사 :
우리가 이렇게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태양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기 때문...

sweetmagic 2004-05-12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당히라는 말에 담긴 거리의 관념이 다들 다르겠지만 전 적당히 아는 사이가 맘은 제일 편하더군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저 같은 경우는 사람을 잘 알게되면 될수록 가슴이 아련하게... 아픈게 있라구요.그 사람을 동정 하거나 그런 건 당연히 아니구요. 그래서 그런지 그냥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모르고 사는게 편하더라구요. 히히
어떤식으로 사는게 옳은 건지 한때 고민도 했지만 걍 생각나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살라구요 ~

갈대 2004-05-1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당히 알면 편하다. 적당히 알면 불편하다. 으아~

야누스 2004-05-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보니 ...참 그렇네요...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면...
인사치레로 몇마디 나누고 침묵한다면....
아...정말 괴로울 것 같네요...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