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명함을 파지 않는 이유는, 언제 내가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정교수가 되어 "이젠 놀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희한한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짜로 노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교수는 고사하고 내년 시즌의 재임용 통과가 최대의 목표인 나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하루하루 잘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데 내가 잘리는 게 더 앞당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기는 오늘 있었던 방송 리허설. 다음주 x요일에 전파를 탈 그 프로에서 사회자인 김어준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서민씨는 더 이상 대학병원에 취직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 말을 듣고보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한 발언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저런 놈은 당장 잘라라"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결국 자진사퇴의 명목으로 그만두는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는 어떤 말을 했던가?
[김어준: 오늘은 대학병원의 허와 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나: 대학병원의 '실'은 이런 게 있습니다. 거기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며, 그 분야의 전문가가 환자를 진료하는 동시에 각 과별로 원활한 공조체제가 굴러간다는...
김어준: 그렇다면 '허'는 어떤 게 있습니까?
나: 그러니까 환자를 진료한다는 기능과, 학생들을 교육시킨다는 기능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게 어렵다는 거죠. 내시경을 할 때 환자는 답답해 죽겠는데 "학생들, 이리와 봐. 이거 보이지?"라고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지요....
나: 직장검사라는 게 있어요. 직장에 손가락을 넣어 전립선을 만져보는 건데, 그게 입원할 때면 꼭 해야 하는 항목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수치스럽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모 고위 관료는 "모욕당했다"면서 화를 내고 퇴원해 버리기도 했는데, 그걸 한사람만 하면 괜찮지만, 이사람 저사람 다 하는 건 좀 힘들거든요. 병원에 왔으니까 시키는대로 다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없이 대주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김어준: 아무래도 직장이니까...
나: 그래서 제 생각인데요, 그렇게 힘든 일은 그냥 학생들끼리 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환자의 고통도 알 수 있고...
김어준: 서로의 직장을 찌르면서 유대감도 깊어지고....
나: 그렇죠. 직장이니까요
나: 내진도 그래요. 자궁경부가 얼마나 열렸나 보는 건데, 손가락을 넣어봐야 알 수 있긴 하죠. 하지만 학생들이 우르르 와서 이놈도 찌르고 저놈도 찌르고 그러면 산모는 정말 수치스럽거든요...]
내 결론은 대학병원이 환자의 편의를 위해 좀더 노력했으면 한다는 거였다. 담당피디는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하지만, 김어준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나도 병원의 녹을 먹고 있는 사람인데, 대학병원의 교육기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런 말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x요일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