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기차를 타고 가는데,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할머니: 민아, 나다.
나: 아, 네. 안녕하세요.
할머니: 어제 보니까 니가 몸이 너무 났더라. 밥 많이 먹지 마라.
나: (이, 이런) 네, 알았어요.
할머니: 자는 거 깨웠구나. 어서 자라.
나: 그게 아니라 기차 안이어요.
할머니:(귀가 어두우시다) 오늘 출근 안하는구나. 어서 자라.
어찌되었건 내가 할머니 말씀대로 몸이 난 건 사실이다. 러닝머신 9개월은 살을 빼지 못했고 오히려 몇킬로가 더 쪄 버렸으니, 이젠 어디다 의지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대학에 들어갈 때 173센티에 52킬로의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던 내가, 176에 80킬로가 되어 버렸다니, 정말이지 심난하다 (얼마 전까지 79라고 빡빡 우기다, 이젠 모든 걸 인정하기로 했다).
나랑 비슷한 체중이던 여자애들은 다들 살이 빠지던데, 증가만 한다는 엔트로피처럼 내 체중은 거듭 상승일로를 달렸다. 앗 하는 사이에 60킬로를 훌쩍 넘더니 곧 65킬로가 되고, "70킬로가 되면 휴학한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그것도 돌파했다. 그래도 그때가 봄날이었다. 지금은 내가 인간이 아닌 체중이라고 생각했던 80에 도달해 있으니까.
내 생애에서 최소한 일년간 체중이 줄어든 적은 딱 한번 있다. 78킬로의 체중으로 군대에 간 96년, 영양가 없는 밥을 먹고 고된 훈련을 하다보니 5킬로가 줄었다. 거기서 그칠 내가 아니어서, 테니스에 마라톤에 헬스까지, 난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운동을 했다. 몸이 너무 가벼워 발이 2센티쯤 떠있던 느낌을 줬던 그시절에 측정한 체중은 68킬로였다. 하지만 운동을 조금씩 게을리하기 시작하자 살은 악마처럼 날 찾았다. 그 다음해, 가뿐하게 70을 넘고, 어느새 75킬로가 되었다. 난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봄날이었다. 80이 된 지금은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조차 무서우니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체중에 만족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하나도 뚱뚱하지 않은 사람도 그건 마찬가지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한창 때 몇킬로였는데 말야" 그러니까 사람들은 전성기의 체중에 비교해서 자기 몸을 학대하는 거다. 내가 68킬로이던 시절을 잊지 못하던 것처럼. 하지만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괜히 '전성기'인가. 그때 생각에 매몰되어 있으면 인생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아무리 운동을 한다고 해도, 68킬로가 다시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현실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 현재의 몸매를 무조건 부정하거나, 그때로 돌아가자는 말도 안되는 전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서운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지금의 체중을 부러워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모든 일은 경각심을 가지면 대개 해결되지만, 체중만은 예외였다. 기근에 적응하도록 수백만년간 적응해 온 내 몸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래서 난 현재의 내 몸매를 사랑하기로 했다. 내 써클친구들 중 나보다 체중이 덜나가는 애가 한명도 없으며, 그 중에는 98킬로(사실은 100이 넘을 거라고 추측한다)인 친구도 있지 않는가. 위는 보지말고, 아래만 보자. 그리고 좀더 당당하게 세상에 서자. 잠바나 가방으로 배를 가리는 행위도 이제 그만하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라도 난 지금의 내 배와 평생을 더불어 살아야 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뚱뚱한 게 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