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으로 알려진 나, 하지만 내가 약속시간보다 늦게 가는 비율은 대략 70%에 달한다. 떠나야 할 시간이 되면 "마구 뛰어가면...역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이 오면..." 이런 식으로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십여분을 뭉기적거리고, 결국 그 시간만큼 늦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간을 잘 지키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 건 늦어봤자 십분 이내고-그정도는 예의상 늦었다고 이해된다-더 중요한 이유로 약속을 한 상대방이 그보다 더 늦게 오기 때문이다.
언젠가 십분 정도 늦을 거 같아 휴대폰을 걸었다. 조금 늦는다고 말하려 하는데, 그가 먼저 이런다. "어, 미안해! 지금 가고 있어!" 음...그렇구나. 그때부터 난 내가 늦을 것 같으면 무조건 전화를 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안오고 뭐해?" 십중팔구 "어, 거의 다 왔어"라든지, "미, 미안해"라는 답이 돌아온다. 걔중에는 "너도 아직 안왔지?"라고 말하는 예리한 녀석들이 있기도 하고, "무슨 소리야? 난 벌써 왔는데"라고 하는 예의없는 친구도 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약속 시간보다 늦는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내가 그런 것처럼, 소요 시간을 불가능하게 책정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여기서 잠깐. 늦는 사람들의 거의 다가, 전화로 독촉을 받았을 때 이런 대답을 한다. "지금 가고 있어!" 아니,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가고 있지 않으면 그게 인간이냐? 그들은 말한다. "십분 있으면 도착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십분 뒤에 도착하는 법은 없다. 십오분이면 양반이고, 대개가 이십분을 넘긴다. 그럼에도 그들이 십분을 주장하는 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함이다. 알고도 하는 거짓말이고, 알고서도 속아주는 거짓말이다.
술을 마시다 전화를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언제 오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은 '금방 간다'고 대답을 하지만, 걱정이 된 친구들이 "가봐야 되는 거 아냐?"라고 물으면 이렇게 큰소리를 친다. "가긴 어딜 가? 오늘 한번 마셔 보자구!"
그런 거짓말은 집에 늦게 왔을 때도 적용된다. 젊은 시절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갔다. 네시를 넘겨서 들어간 것 같은데, 다음날 아버님이 물으신다.
아버지: 너 어제 몇시에 왔냐?
나: 하, 한시쯤...
아버지: 이놈이!
나: 사, 사실은 두시 쫌 넘어서..
아버지: 그래도 이놈이!
나: 세시 정도 온 거 같아요.
아버지; 야 이놈아!! 내가 니 방에서 네시까지 기다렸다!
네시에 온거나 세시에 온거나, 그 뒤에 닥칠 파장은 별 차이가 없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몇십분이라도 단축시키려고 애를 쓴다. 왜 그러는 걸까? 그런 걸 보고 우리 조상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했나보다. 웃기는 건, 그 다음에 애들을 만나면 내가 이렇게 떠벌린다는 거다. "야, 엊그제 나 죽이게 술마셨다. 집에 가니까 세상에 다섯시더라구! 신문이 와있더라니까!"
사람들은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거짓말이 애교로 느껴지는 건, 남에게 그다지 피해를 주기 않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이말은 하련다. 십분씩 늦는 건 습관이고, 그 중에서도 나쁜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