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조선일보가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용산참사 같은 큰 이슈가 생겼을 때, 그네들이 어떤 보도를 하는가가 궁금해서다.
그런다고 해서 억지로 찾아 들어가 읽진 않는데,
이따금씩 남들이 퍼온 기사를 볼 때마다 "얘네들은 정말..."이라며 혀를 차게 된다.

오늘 아침 테니스를 치러 나가는 차에 엘리베이터에 놓인 조선일보 호외를 발견했다.
조선일보가 노무현 서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는지가 궁금해 사설란을 펼쳤다.
조선은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 원인을 "대통령 권력은 제동 장치가 전혀 없다는 근본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데 돌린다.
여기까지는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부터다.
"구미 국가에선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데 언론의 비판적 기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 홍위병에 가까운 세력들이 시민단체를 가장해
대통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대해 전방위 공격을 퍼부었다.
여기에 권력의 세무사찰 등등의 탄압 방식이 얹혀지면서
언론의 대통령 권력에 대한 감시도 기대하기 힘들만큼 약화됐다.
그 결과 대한민국 대통령 권력은 감시. 견제. 비판으로부터 해방되면서
결국은 권력 자체의 비리의 무게로 붕괴되기까지 위태위태한 모습을 연출했다."

누가 본다면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에 나온 사설인 줄 알겠다.
'노 전 대통령'이라는 구절 때문에 노태우를 연상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우리나라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니,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하던 5년은 언론이 대통령에 대해 무한대의 독설을 퍼부었던,
언론 자유란 측면에서 본다면 르네상스라 할만한 시기가 아니던가?
대통령 말 한마디 한마디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면서 "품위가 없다"고 난리를 치던 게 조선일보가 아니었던가?

독재권력에 저항하기는커녕 그 품에 안겨 성장해온 조선일보가
소위 비판언론을 자처한 건 김대중. 노무현의 10년이 고작이다.
이명박이 집권한 지금, 조선일보가 다시금 권력의 시녀로 원상복귀한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왜 혼자만 헛소리를 할까?
이런 류의 사설이 나올 때마다 생각을 한다.
1) 이것들이 진짜로 이렇게 믿고 있는 건지
2) 대중들이 우매한 걸 이용해 속여먹으려는 건지?

제목은 '애도한다'지만 내용은 전혀 애도가 아닌 사설을 쓴 조선일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5년간 이 상식 밖의 집단과 싸웠지만
결국 이긴 건 조선일보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자살을 했으니 말이다.
스포츠조선 사장의 말대로 노무현은 5년마다 바뀌는, 별 볼일 없는 '낮의 대통령'이지만
조선일보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권력을 누릴 '밤의 대통령'이다.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 노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님을 미치도록 사랑했었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뒤 님은 제게서 멀어져 갔고,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600만불 수수는 치명타였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님이 세상을 떠나셨단 소식에 눈물을 흘렸던 건, 우리 정치사에 님같은 분이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이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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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05-2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정말 끔찍한 심정으로 동감이 됩니다.

Mephistopheles 2009-05-2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이것들이 진짜로 이렇게 믿고 있는 건지
2) 대중들이 우매한 걸 이용해 속여먹으려는 건지?

2일 경우가 더 가능성이 있고요...
문제는 2의 그 우매한 대중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그것이 나이들으신 양반들 뿐이 아니라 20대 젊은 사람들 중에도 제법 많다는 것이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웽스북스 2009-05-2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혹스러우리만큼 어이가 없네요 -_-

stefanet 2009-05-2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는군요.

그리고 제 생각엔,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렇게 수십년동안 시종일관 저런 XX같은 짓들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겠습니까...사실 그렇다면 더더욱 희망은 없는 것입니다만...

하얀마녀 2009-05-2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가 갈리는 넘들이군요

다락방 2009-05-2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

노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마늘빵 2009-05-2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조선일보 답네요.

2009-05-25 00: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조갑제가 한 말은 더 가관입니다..
서거라는 말은 존경심을 유발하는 단어이니,
자살한 자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하네요.. 에휴..

2009-05-2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분은 유신정권의 총 칼 앞에서도
그 누구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던 3당 합당 앞에서도
세계 각국의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각국 통치자 앞에서도
그는 언제 어디서나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로서 당당했습니다..
그렇게 당당하시던 그 분이 한없이 자신을 낮출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들' 앞에서 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두려움을 모르고 누구앞에서나 당당하셨던 그 분께서
자기주변의 한순간의 실수에도 부끄러워하며
자기자신을 놓음으로서 빚을 갚으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세븐파운즈에 나온 월스미스를 보면서 살아서 저지른 죄는 살아서 값을 치르고,
남은 여생을 살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더 큰 희망을 주었으면 하고 안타까워했었는데,
똑같은 심정이 듭니다.. 왜 떠나야 했을까요..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수많은 시민들의 세금을 사유화한 그들도 숨쉬고 있는 세상에 이미 퇴임한 후 아무 힘없는 그가 목적없이 건네받은 지도 확실치 않은 돈이 그렇게 큰 죄목일까요..검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사를 중단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야속하기만 합니다..자신들이 표적수사를 하고있었다는 것을 공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끝까지 수사를 속행하여 과연 그 죄목이 사람의 목숨과 바꿀만큼의 죄인지 밝혀야 합니다..철저한 이상주의자였기에 삼권분립을 위해 자율권을 맡긴 검찰에게 BBK 이명박보다 삼성 이건희보다 너무나 가혹하게 추궁하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죄가 포괄적 뇌물수수죄라면 힘없는 자를 끝까지 몰아세운 검찰과 힘없는 그를 지켜주지 못한 저는 포괄적 살인죄입니다..

BRINY 2009-05-2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 특히 더 공감이 갑니다. 말줄임표를 안 쓸 수가 없군요...

마태우스 2009-05-2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감사합니다...
델님/맞아요 자기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그런 대통령이었지요. 군림하기보단 맞장토론을 하셨던...
아프님/대단한 애들이죠.... 벌써 몇년째 집권중인지 지겨워 죽겠습니다'
다락방님/네...님 심정 이해합니다.
하얀마녀님/글게 말입니다
스테파넷님/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쟤네들은 대중의 우매함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계속적인 왜곡보도를 할 수가 없었을테니깐요.
웬디양님/어이없는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역시....
메피님/글게요. 나이드신 분들뿐 아니라 젊은 애들도 참 이상한 애들이 많더라구요
비연님/그러게요. 그네들이 있는 한 울나라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