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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ㅣ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평점 :
둘 다 시간을 보내기 좋은 취미라서 그런지, 책을 읽는 사람은 대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알라딘에 스포츠 얘기를 써보시라. 대략 0-1개의 댓글이 달린다. 스포츠만 보다가 독서계로 진입한 난 몇 번의 경험으로 그걸 깨닫고 일체 스포츠 얘기를 하지 않는다. 박태환처럼 국가적인 스포츠맨은 예외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스포츠에 대한 지식을 마음껏 뽐낼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스포츠 얘기가 나오는 책을 읽을 때다. 특히나 미국은 야구가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 야구를 모르면 책의 일정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도 조 디마지오-원서에는 '그레이트 디마지오‘로 되어 있는데-가 있으니 양키스가 이길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니 미국 책 번역자는 야구에 대해서도 일정 지식이 있어야 하건만, 그게 아니라서 가끔씩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느 책에서인가는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Shea stadium-쉐이 스타디움-을 ’쉬 스타디움‘으로 번역해 놓아 허탈하게 웃었는데, 야구선수인 톰 고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선수가 톰 고든이다
톰 고든을 우상으로 아는 소녀가 조난을 당해 구조되기까지의 일을 그린 이 책에서 소녀는 라디오로 야구를 들으며 톰 고든이 세이브를 따내면-즉 9회를 실점없이 마무리하면-자신이 구조될 거라고 믿는다. 당연하게도 야구장의 상황이 가끔씩 묘사된다. 문제는 여기에 틀린 곳이 있다는 거다.
“고든이 투구자세를 취합니다. 던졌습니다. 삼진 아웃. 마르티네스가 (버니 윌리엄스를) 잡았습니다!”
고든이 던졌는데 왜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삼진을 잡냐. 유명한 유격수 Derek Jeter(데릭 지터)를 ‘데렉 제터’로 표기한다던지, 보스톤 홈구장인 펜웨이에서 경기를 하는데 양키스의 역전 챤스에서 관중들이 “희망을 품고 환성을 지”른다고 써놓은 점 등 오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스턴 투수 팀 웨이크필드와 양키스의 어린 왼손잡이 타자 앤디 페티트의 대결”이라는 것도 앤디 페티트가 실은 투수며, 아메리칸리그에선 투수가 타격을 안 한다는 걸 안다면 터무니없는 오류. 맨 마지막 장에서도 오류는 계속됐다.
“고든은 3안타에 3득점을 내주고 말았다. 레드삭스 팀은 2대 1로 패했다.”
3점을 내줬는데 왜 2대 1로 지는가. 이런 걸 번역자가 바로잡지 못한다 해도, 나같은 MLB 매니아에게 한번쯤 점검을 시키는 성의가 있었다면 오죽 좋을까.
평소 써먹을 데가 없는 지식을 보유한 사람은 이렇듯 남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를 비웃으며 혼자 만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책은 재미있냐고? 스티븐 킹의 책은 재미로 읽는 게 아니다. 심모 작가님의 말마따나 스티븐 킹이 대중작가로 알려져서 저평가되고 있지만, 문장력은 기가 막힌다. 난 <그것>을 읽다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그의 문장구성에 감탄에 감탄을 했었다. 그리고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주변환경에 대한 묘사를 잘하는 게 소설 쓰기의 기본일진대, 이번 소설 역시 내가 마치 산에 있는 것인 양 장면장면의 묘사가 기가 막히다. 그러니 스티븐 킹을 읽는 건 소설쓰기의 전범을 배우는 것과 같다. 물론 재미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