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찍는 데 걸리는 시간을 3개월이라고 했을 때, 배우 한명이 최대한 찍을 수 있는 편수는 기껏해야 1년에 4편이다. 지금 극장에 걸린 영화 중 설경구가 주연한 영화는 <그놈 목소리> 한편인가 그렇다. 그게 정상일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의 모든 아역은 다코타 페닝이 다 하는 것 같다. 아이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몇 편 없어서 그런 걸까? <샬롯의 거미줄>에도 다코타 페닝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세상의 아역 연기자는 오직 다코타 페닝밖에 없는 걸로 느껴졌다.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다. 다코타 페닝은 나오는 영화마다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 줬으니까. 그 어린 나이에 영어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부러울 정도다. 다만 그녀가 좀 더 성장하면, 그래서 귀여움으로 어필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볼 때, 부정적인 생각이 좀 더 많이 든다. 연기는 더 잘하겠지만, 삶이란 게 꼭 실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물론 난 그녀가 쭉 잘해 나갔으면 좋겠다).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8시 반이라는 말도 안되는 시각에 잠이 든 탓에, 뭔가 실수라도 하지 않았나는 생각에 놀라 잠에서 깬 건 새벽 1시 반이었다. 책을 읽었고, 라면을 먹고 햇반까지 덥혀서 말아 먹었는데도 새벽 3시밖에 안됐다. 내친 김에 <바리에떼>를 다 읽어버릴까 하다가 갑자기 영화 생각이 났다. 한학기 수업을 영화로 대체한 덕분에 캐비넷에는 괜찮은 DVD가 여럿 꽂혀 있는데, 뭘 볼까 망설이다가 <드리머>를 집어들었다. 웬만하면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학생들의 반응을 보려고 했지만, 다른 수업이 겹쳐 있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 나오고 그랬는데, <드리머> 역시 한 30분 쯤 보다가 아쉽게 나온 뒤 그 뒷부분을 못본 영화였다.


다들 알다시피 <드리머>는 말에 관한 영화다. <각설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 나오는 영화의 결말은 둘 중 하나다. 말이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데 재기해서 경주에 나가고, 꼴등은 맡아놓았다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일등을 하는 순간 쓰러져 죽느냐 아니면 그냥 일등을 하느냐는 감독의 선택이다. 하지만 <드리머>는 실화를 영화로 옮겼기에 감독이 선택할 기회는 애당초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일지 모르겠지만, 난 <각설탕>보다 <드리머>의 결말이 좋다. 리포트를 채점하느라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최고였다”고 썼던 기억이 난다. <드리머>가 못 만든 영화라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다 본 지금사 말하거니와 그 학생은 태어나서 영화를 몇 편 보지 않았나보다. 아니면 나처럼 털 달린 동물을 좋아하던가.


* 문체가 완성되지 않은 사람은 읽고 있는 책의 문체를 따라하기 마련이다. 다시 읽어보니 지금 내가 썼던 문장들은 고종석의 그것을 흉내냈다. 당대의 문장가 고종석인지라 부끄럽진 않다.

 

* 어제 3류소설에서 유아교육에 관한 책을 홍보한 적이 있습니다. 전 그게 농담인 줄 다들 아실 거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보관함에 담으신 분들이 몇 분 계시더라구요. 혹시 가능하시면 취소해 주시고, 벌써 결제하신 분은 제게 조용히 연락해 주세요. 다른 책-아, 바리에떼가 좋겠네요-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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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3-20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2007-03-20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3-2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제 전에 지웠지만 은밀히 연락할까봐요^^ㅎㅎㅎ
영화 감상 즐거웠습니다^^

진/우맘 2007-03-2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마태님의 농담은 묘하게 진실하게 들려요~

Mephistopheles 2007-03-2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제 안했는데 했다고 뻥을 쳐볼까 심각하게 고민 중 입니다..^^

2007-03-20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7-03-2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최고였다" 요 학생 혹시 마태님의 원래 모습(?)을 알고서 점수에 신경쓰느라 적은 글 아닐까요? ^^

미즈행복 2007-03-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단대 이상해요. 왜 의대 교수가 글쓰기 수업도 맡고 그러죠? 영화는 무슨 수업시간에 보시는데요? 영화로 대체할 수 있는 의대 수업이 뭐가 있지? 학생들이야 좋겠지만... -이런건 감사에 안 걸리나요?-

짱꿀라 2007-03-2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의 글을 읽으면 쏘옥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드네요.^^
재미도 있고 글도 잘쓰시고 의사가 아니가 꼭 글쟁이 같아요.ㅋㅋ

마태우스 2007-03-2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아이 부끄러워요 제가 사실은 흡착기로 자판을 두드린다는 설이... 안웃겼나요 ㅠㅠ
미즈행복님/제말이 그말입니다. 글구 영화수업 말이죠 제가 반성할 부분이 많지요. 감사에는 안걸렸는데 학부모 한분이 항의 전화를.....
무스탕님/어 아니어요 전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애들한테 미리 말했는데...
속삭이신 분/아 바리에떼는 선물하면 하는 사람도 기분좋은 그런 책이어요 선물해 드릴께요 지금 아무도 신청을 안한 탓에...^^ 주소만 적어주세요
속삭이신 ㅈ님/결제 안하신 거 다 압니다 제가 알라딘이랑 그렇고 그런 관게인 거 모르셨3?
메피님/어허... 알라딘과그렇고그런관계라니깐요..
진우맘님/제 눈 때문에 그런 겁니다...
마노아님/그리 말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허험.
속삭이신 ㅎ님/어머나 넣다뺐다 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요!
홍수맘님/하여간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