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얘기한 바 있지만 난 영어를 아주 못한다.
내가 학력고사-지금의 수능-을 치던 시절, 영어는 총 50문제가 출제됐다.
그 중 문법이나 어휘를 묻는 게 10문제가 안됐고
나머지 40여문제가 죄다 독해였다.
그러니 그 시절엔 영어를 읽고 해석할 줄만 알면 시험을 칠 수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영어시험에 영어회화가 포함이 됐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문장을 듣고 답을 고르게 했는데,
그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안할 만큼 극도의 정숙을 기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배들은 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영어회화를 잘했다.
그러니까 학력고사에서 47점을 맞았던 내가 영어회화에 잼병인 건
시대의 비극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시대 탓만 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었다.
나와 동시대 사람들은 따로 영어회화 공부를 하면서,
또는 외국에 나가서 직접 말하고 들을 기회를 가지면서
시대의 비극을 나름대로 극복했다.
반면 난 따로 영어회화를 공부한 적도 없고,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외국에 나가기도 꺼려했으니
원래 없었던 영어회화 능력은 어휘력의 퇴보와 함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예컨대 테니스 경기를 보고나서, 난 한번도 내가 좋아하는 페더러의 인터뷰 내용을 알아들은 적이 없었다.
그 절정은 외국학자를 만났을 때로,
올해 8월 대구에서 열린 세계기생충학회 때 내가 에스코트를 했던 브라질 학자는
내 영어에 대해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학회발표는 구글 영어로 미리 할 말을 준비한 뒤 그걸 외워서 읊는 형식으로 했는데,
발음이 후지다보니 남들이 별로 알아들은 것 같지 않고,
내가 발표 때 중요시하는 유머를 넣을 여유가 없었기에 재미마저 없었다.
뒤풀이 때 나보다 어린 애들은 물론이고 내 또래 애들까지 자유롭게 외국 학자와 회화를 하는 걸 보면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영어실력의 후짐에 대해 자아비판을 하고 있으면
주위에선 다들 이렇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 정도면 영어 괜찮은 거야.”
그들은 위로차 하는 얘기겠지만, 난 이런 감상적인 위로가 짜증이 났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내 영어가 후진데, 그런 위로가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래도 이번 학회 때 느낀 바가 있어서
팟캐스트 이이제이에 나온 ‘짐잉글리시’를 수강하기로 했다.
스카이프라는 인터넷을 이용해 필리핀에 있는 선생과 대화를 하는 건데,
지난 주말을 이용해 두 차례, 각각 한 시간씩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내 선생인 도나는 내 레벨 테스트 결과를 보내왔다.

 

 


그 표를 보고 내가 외친 한 마디,
“거봐. 나 영어 못하잖아! 내가 옳았어!”
솔직하게 말해준 영어선생이 고맙고,
1년이 지났을 땐 모든 부문에서 Good이 되도록 노력하리라.
그리고 외국학자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눠야지.
나이 xx에 꾸는 야무진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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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제 2018-09-2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드립니다!

마태우스 2018-09-29 02:25   좋아요 0 | URL
소화제님 응원에 속상했던 지난날이 다 씻겨갑니다^^

다락방 2018-09-2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게 있나요? 저도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마태우스 2018-09-29 02:24   좋아요 0 | URL
영어 잘하면 좋은 게 많더라고요. 님도 도전해보심~~~

비연 2018-09-2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마태우스 2018-09-29 02:24   좋아요 0 | URL
진작 좀 했으면 좋았을텐데 후회됩니다 ㅠ

세실 2018-09-28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스피킹은 굿인걸요.
저도 야나두 끊었어용.
발음 연습중~~~

마태우스 2018-09-29 02:24   좋아요 0 | URL
앗 세실님 반갑습니다 야나두도 필리핀 선생님인가요. 우리 나중에 만나면 영어로 얘기해봐용^^

moonnight 2018-09-2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훌륭하십니다. 저도 응원합니다^^

마태우스 2018-09-29 16:32   좋아요 0 | URL
리스닝 푸어가 뭐 훌륭합니까 ㅋㅋ 암튼 응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