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고 있다가 갑자기 울린 전화벨에 잠을 깼다. 나와 정치 얘기를 하는 거의 유일한 친구다.

“지금 여성부 폐지운동이 벌어지고 있잖아. 이번에 여성부가 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신문과 뉴스를 안본지 오래라, 뭐가 뭔지 몰랐다. 얘길 들어보니 성매매를 안한다는 각서를 가장 많이 받은 회사에게 회식비를 지급한단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 물었다.

“뭐가 문젠데?”


그는 말했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성매매 금지법이 발효될 때, 그는 내게 실토했었다. 이 땅의 남자 중 그런 곳에 한번도 안가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냐고. 90% 이상이 경험이 있지 않느냐고. 그 정도 수치면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도 되는 거 아닐까?


“각서 쓸 때 얼마나 수치감을 느끼겠어?”
그는 내게 따졌지만, 난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수치심을 느끼면 각서를 안쓰면 되는 거 아닐까? 그의 말은 시종일관 길을 잃고 있었다. 성매매 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매매는 성행하고 있으며, 연말일수록 더 심하다는 건 그 역시 인정하지 않는가. 이번 행사가 연말 성매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걸로 족한 거 아닌가. 모 언론에서는 이 일로 인해 여성부가 해외토픽감이 되어 망신을 당했다지만, 해외 원정을 다니면서 자행되는 우리나라의 성매매가-정력제를 포함해서-국제적 망신을 당한 게 어디 한두번인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여성부 폐지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벌써 5만명이 넘게 서명을 했단다. 참 할 일 더럽게 없다 싶다. 비정규직이 절반에 육박하는 이 나라에서, 곧 자신의 문제가 될지도 모를 KTX 여승무원의 투쟁에는 냉담하면서, 여성부를 없애는 일에 그렇게 많이들 서명을 하다니 말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부처들 중 여성부만큼 일을 잘한 곳이 어디 있는가? 경제를 말아먹은 재경부나 문화를 말살한 문화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 아랍과 비슷한, 거의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여성권한척도에는 눈을 감은 채, 티끌만큼이라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마초들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다.


극악한 마초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남녀평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대세에 밀려서, 인기 하락이 두려워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 진심은 아니다. 여성부 폐지에 서명한 이 5만여명은 사실 남녀평등의 시대가 도래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며, 여성부의 활동으로 인해 초래된 불편함들을 참을 수가 없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시대의 물줄기를 뒤로 돌릴 수는 없는 일, 성매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마음 단단히 먹으시라. 시대는 점점 변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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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3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2-3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부 폐지의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답니다. 이번에 보다 가시적으로 행해지고 있을 뿐이지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여성부가 있으며 공직에 여성을 할당하는 것도 대한민국만의 유일한 제도라고 그들은 말하지요. 여성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조치가 남성에게는 역차별로서 작용할 수 있음을 잘 알지만, 여성에게 불리한 현실에 대해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답니다. 심지어 10만원권을 만들면 여성 인물이 그 화폐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집단 이기주의라고 말을 하고,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되면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육아 지원과 관련된 예산이 여성부에 귀속되기에 여성부 예산이 증가하자 그것 가지고도 예산 낭비라며 말이 많은 걸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제 선택이 아니고, 제 지난 경험 역시 제가 원한 것이 아니지만... 성폭력의 '성'을 제외하면 '폭력'인데 그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성폭력을 많이 당해봤나보네. 그러니까 괜히 피해의식 있어서 여성부를 지지하는거지."라는 식의 가벼운 댓글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게도 저는, 시대가 변하고 있긴 할까 되묻게 되네요.

바람돌이 2007-01-0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성폭력이나 성추행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잖아요. (뭐 물론 처벌은 너무 약한 것이 맘에 안들지만...) 근데 이걸 갖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놀림감으로 삼는답니다. 회식자리에서 뭐 자연스럽게 서로 술 따르면서 잘 먹다가 갑자기 어 이러면 성희롱이야 아니야라면서 그걸 웃음거리로 삼아버리는 그 남자들 머리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늘 궁금하답니다.

마태우스 2007-01-0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런 거 많이 봐요.... 성희롱법을 실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니가 설마 날 고발하겠냐는 턱없는 자신감...
콸츠님/맞습니다 여성부의 모든 일에 딴지를 걸고픈 애들이 있지요 남성부를 만들라고 하질 않나...사회의 모든 권력을 다 가졌으면서 역차별 어쩌고 하면서 난리 부르스를 치지요. 시대의 변화는 워낙 더디게 오잖습니까? 저 20대 때와 비교하면 변했다는 거지만, 아직 멀었죠 울나라.
속삭이신 분/저 역시 님을 알게되어 서재생활이 즐거웠답니다. 제가 미모에 약한 거 잘 아시면서...호홋. 좋은 말 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내년엔 아니 올핸 친하게 지내요.

LAYLA 2007-01-01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쉽게 알아듣기 쉽게 글을 써주셔서 넘 좋아요 ^^짝짝짝~

비로그인 2007-01-0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가끔씩 핀트가 나간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윽! 어려워요! 이런 문제를 해설해주시는 책, 한권 어떠세요???

stella.K 2007-01-0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해가 안가요. 여성부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하는데...

짱꿀라 2007-01-0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글을 읽고 가네요.

마태우스 2007-01-0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부끄럽습니다. 글 쓰는 내내 문장이 잘 안되서 버벅거렸는데... 아무튼 뜻은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어요
스텔라님/제말이 그말입니다...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정군님/어맛 전 님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옵니다 열심히는 해보겠지만....
라일라님/그게요 제가아는 게 매우 피상적이라서 그래요 호홋.

도도 2007-01-1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이렇게 멋진 글을 이제 발견하다니. 마태우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태우스 2007-01-11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드플루토님/아니 이렇게 멋진 댓글을 이제야 발견하다니....매드님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