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난 영화를 몇편이나 봤을까? 극장에서 본 것만을 치자면 대략 40편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유레루>처럼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많이 봤다는 게 올해 내가 본 영화의 특징이다. 이 영화들 중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영화가 무엇일까,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게 궁금한 건 아마도 내 몸에 각인된 순위경쟁의 유전자 탓이리라.


가장 재미있는 영화를 뽑기 전, 먼저 쑥스러운 변명을 해야겠다. 올해 1월, 카메론 디아즈가 나온 <당신이 그녀라면>을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1월달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성급해 보이지만, 이게 올해 최고의 영화다.”

그때의 난 좀 성급했었다. 그 이후 그거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여러 편 봤으니 말이다. <캐러비안의 해적2>도 재미 면에서 훨씬 뛰어났고, <음란서생>도 보다가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내년부터는 12월이 되기 전까지 “가장 재미있는”이란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픽팍님의 이미지가 바로 이 사진!


 

저예산 영화를 최고로 선정함으로써 수준 있는 척을 하려는지도 모르겠지만, 올해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나온 <귀향>이었다. 2위는 <가족의 탄생>, 3위는 조니 뎁이 마음먹고 웃겨준 <캐러비안의 해적 2>. 왜 이런 순위가 나왔는지 분석해 본다. 영화가 재미있다는 건 많이 웃었다는 뜻도 되지만, 영화가 주장하는 바에 공감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의견이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예컨대 눈이 작은 사람을 비하하는 영화가 있다면 다른 사람은 낄낄 웃을지언정 내 마음은 내내 불편했을 거다. 반면 주류와 다른 생각을 혼자 하고 있는데, 영화가 내 생각과 같은 말을 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그래서 난 <귀향>이 좋았고, <가족의 탄생>이 좋았다. <귀향>에서 주장하는 바는, 이 세상의 악은 대부분 남자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 살아오면서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된 내가 이 영화에 열광한 것은 당연했다. <가족의 탄생>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가족보다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만든 대안가족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나 역시 가족제도에 늘 회의를 가져 왔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가까이 살면서 놀자’고 말해 왔던 터라,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밖에 없었다.


올해 11월, 작년부터 보기 시작한 시네21에서 구독연장 여부를 묻는 전화를 했었다. 대번에 그러마고 했다. 당장의 십만원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시네21이 아니었던들 난 <귀향>을, <가족의 탄생>을, <비상>을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2006년의 영화들에게 감사하면서,  내년에도 아름다운 영화들로 인해 즐거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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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꼬 2006-12-30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를 낳고 바빠지면서 씨네21 구독을 포기했습니다.. 님의 영화에 대한 열정 부럽네요... 내년엔 짬을 내서 저도 많이 봐야겠어요..

마태우스 2006-12-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안녕하셨어요. 맞아요 아이 낳으면 시네21은 물론이고 영화보는 것도 힘들어지지요... 큰 키에 팔다리가 긴 님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레와 2006-12-3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저랑 똑같으세요~!!

내년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속과 안이) 영화들이 개봉할까요..
그 생각이 불러오는 설레임에 가슴이 콩당콩당 뛰어요~ 헤헤..

연휴 잘 보내세요! ^^*

모1 2006-12-3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편중...가족의 탄생만 보았네요. 귀향은 저예산 영화라니 약간 예술영화같은 느낌이 들어요. 예술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태우스님 존경스럽습니다. 전..예술영화랑은 너무 안친해서요. 예전에 프랑스 영화 세가지 색 시리즈 중 블루 보다가 졸던 기억도 있다는..

다락방 2006-12-30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마태우스님의 이토록 멋진 글을 읽고 나니 저도 올해의 영화를 하나 뽑아보고 싶어지는걸요. 흐음.

연휴 잘 보내세요!

짱꿀라 2006-12-3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서 소개해주신 영화 꼭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기를 바래요. 복도 많이 받으시구요.

픽팍 2006-12-31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귀향 자체는 그 나라에서는 굉장한 대중영화로 통한답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귀향은 180만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절대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나라로 치면 봉준호나 박찬욱 감독 정도의 수준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영화들을 저예산 영화로 착각하는 것은 어쩌면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일단은 보기가 힘드니까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전 내년에 기대하는 영화로 2월22일날 개봉하는 뮤지컬 영화 dreamgirls를 단단히 기대하고 있답니다. 노래가 다들 느무느무 좋아요.

마태우스 2007-01-0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아..그렇군요 사실 저도 저예산이란 말을 쓰는 게 좀애매하단 생각을 했어요. 상영관이 적은 영화를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예술영화라 하기에도 뭐하구요 독립영화라 하기도... 그래서 그냥 저예산이라고 부르는데요 그것도 딱이 옳은 표현은 아니겠지요...
산타님/이번에 알았는데요 아는 사람들이 건강한 게 제일 큰 복이더군요...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님/제가 뽑은 올해의 인물: 다락방니임!
모1님/예술영화라고 하기엔 귀향은 좀....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귀향같은 영화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 역시 블루 레드 이런 영화 감히 시도도 못했습니다.
레와님/여러가지로고맙습니다. 님도 복 많이 받으시길!! 올해 개봉할 영화들에 기대해 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