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강의가 있는 날.


그 전부터 읽던 이기호의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를 가져갔다.

기차에서 책을 꺼내고 나니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전에 절반가량 읽어서 남은 책이 반밖에 안됐다.

내가 사는 천안에서 대구는 기차로 1시간 10분이 걸린다.

오는 시간까지 합치면 2시간 20분,

문제는 그날 내가 단순히 대구만 다녀오는 게 아니라 영안실에도 가야 했다는 점이다.

혼자 가는 거라 영안실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책이라도 보며 버텨야 하는데,

이 책을 다 읽어 버리면 어쩌지?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이 없다는 건 내게 3대 공포 중 하나였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책을 살까 했지만

그러자니 시간도 그리 넉넉지 않고 또 더운데 서점까지 가기도 귀찮았기에

에라 모르겠다 스마트폰이나 하자며 책을 덮었다.

 

 

 

 

강의를 마치고 간 영안실.

문상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상주와 얘기를 하는데,

우리학교 교수가 영안실에 나타났다.

거기 머무르는 동안 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교수 역시 집이 천안이라, 올 때도 나랑 같이 왔다.

책 읽고 싶은데 그 사람이랑 이야기 하느라고 하나도 못 읽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면서 읽어버릴 걸 그랬다.

 

 

 

후회되는 것은 책 생각을 하느라 동대구역에서 돈 찾는 일을 깜빡했다는 점이다.

할 수 없이 장례식장 ATM기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게 은행 것이 아니라서 수수료가 회당 1300원이고

인출 상한액이 20만원밖에 안됐다.

내 부조금만 내는 게 아니라 내게 부탁한 다른 분들 것도 내야 해서,

3차례에 걸쳐 출금을 하며 3900원의 수수료를 냈다.

누군가가 기생충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기생충 걱정은요, 걸린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약 하나면 해결되는걸요.”

읽을 책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닥친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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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8-07-26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27살이후로 항상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읽을 책이 내 주변에 없었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던 것 같아요...ㅎㅎ

마태우스 2018-07-26 21:18   좋아요 0 | URL
그죠. 옷은 까먹고 안입고 갈 수 있어도 책은 꼭 가져가야죠 ^^

hellas 2018-07-27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이 없을거라는 공포. 공감합니다. 그래서 읽을시간이 길어질거라 예상되면 예비책? 을 들고가고 열에 아홉은 읽던 책도 못 마친채로 귀가하는 우매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ㅈ;

마태우스 2018-08-11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답이 늦어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괜히 두권 가져가서 한권도 채 못읽고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게 낫죠!

고양이라디오 2018-08-1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항상 책을 챙겨서 다닙니다. 저는 보통 우매하게 책을 넉넉하게 챙겨가서 어깨가 아플 때가 있습니다ㅎ

마태우스 2018-08-15 15:13   좋아요 1 | URL
한가지 확실한 것은 책을 가지고 다니면 언젠가는 보게 된다는 거죠. 스맛폰 하나만 들고다니는 분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꼬마요정 2018-08-14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북을 잔뜩 사놔서 늘 안심입니다. ㅎㅎㅎ

마태우스 2018-08-15 15:13   좋아요 0 | URL
아 요정님 멋지십니다. 이북이 있군요...!

북프리쿠키 2018-08-14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북에 500여권이 들어 있어
어딜가도 든든합니다.ㅎㅎ

마태우스 2018-08-15 15:14   좋아요 1 | URL
와 앞으로 읽을 게 500권이 넘게 있는 건가요. 정말 든든하시겠어요. 다 읽는 데 1년 넘게 걸릴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