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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남자 편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0년 9월
평점 :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
이 책은?
이 책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남자 편』은 조선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나쁜 남자'를 주제로 하여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저자는 최문정, <(본명 유경愈景)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조기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과학교사가 역사 소설을 쓴다는 것, 특이하다.
일인칭 서술의 효과
이 책 첫 장은 대뜸 ‘고려말, 나의 어머니 원경왕후는.....’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물론 그 위에 첫 장 타이틀 - 왕위를 버린 남자, 양녕대군 - 이 있으니, ‘나’가 누구인지 알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뜸 일인칭으로 시작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를 다룬 글에서 ‘나’라는 일인칭으로 글을 끌어나간다는 것은 그 글의 성격을 아주 편향적으로 잡겠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시각으로 볼테니, 아주 한쪽으로 치우친 주관적인 글이라는 것이다. 그런 글이 역사를 다루는데 적절한 것일까?
저자는 그렇게 일인칭을 사용함으로써, 말하는 사람인 역사적 인물의 실체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왜냐? 지금껏 우리는 역사책을 부지런히 읽어왔기 때문에 셋째인 충녕을 후계자로 삼은 태종도 알고, 그렇게 해서 왕이 된 충녕(세종)도 알기에, 이제 양녕의 속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독자들의 심리를 파악한 저자가 일인칭으로 양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다른 글들에서 양녕을 비롯한 다른 인물 - 소헌왕후, 문종, 연산군, 중종의 왕비인 단경왕후 - 들 모두 그렇다. 저자는 실존인물들의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그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며, 일인칭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화 스크린에 주인공의 눈에 잡힌 영상이 상영되는 것처럼, 일인칭 카메라가 그 앞에서 펼쳐지는 사건들, 등장하는 주변의 인물들을 잘 잡아내고 있는 것이다.
‘나쁜 남자’란 어떤 사람?
왕위를 버린 남자, 양녕대군
양녕대군 속을 언제 들여다 본적이 있던가?
아마 없는 듯하다. 세종이 된 충녕의 속은 그랬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양녕 측의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서 구도의 축을 ‘나쁜 남자’로 잡고, 양녕도 나쁜 남자측에 들게 하려는 모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쁘고 나쁜, 악한으로 또는 천하의 인간 말종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니, 본인의 입으로 ‘나쁜’ 게 뭔지 들어보기로 하자.
나도 아버지와 똑같이 굴면 어떻게 될까? 만취한 머릿속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기 마련이었다. 아버지가 나쁜 남자라면 나도 나쁜 남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비뚤어지기로 결심했다. (31쪽)
한마디로 나는 목숨을 걸고 폐세자가 되려 발악하는 것이다.(35쪽)
나는 마침내 왕위를 버리기로 결심을 했다. 미치는 것은 쉬웠다.(37쪽)
비록 내가 원해서 폐세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무능하고 여색을 탐한 인물로 역사에 남을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46쪽)
요지는, 양녕은 그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권력 추구 과정에서 환멸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방원을 아버지로 둔 죄로, 권력을 얻기 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듣고 철저하게 느낀 바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리 앉기 싫어서 나쁜 남자가 되었다는 것,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나만 몰랐던 사랑 이야기, 문종
문종 역시 나쁜 남자다. 그의 부인에게는 사정없이 나쁜 남자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여자에게는 혼례복을 입고 연지, 곤지를 찍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데 난 그 순간을 빼앗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122쪽)
떠오르는 기억은 모두 순임의 상처뿐이었다.
후회는 아무 소용없었다.
순임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세상 누구보다 나쁜 남자였다. 순임은 그런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126쪽)
회임으로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 달이나 찾아보지 않다 처소에 들른 날이었다. 원망스런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좋아서 나를 힐끔거리는 모양이 한심스럽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자존감 따윈 없는 아이라 비웃으며 물었다.
“넌 내가 한 달 만에 왔는데도 원망하는 기색 하나 없구나. 내가 그리도 좋으냐? 도대체 왜 내가 좋은 게냐”
“모르겠습니다.”
순간 심통이 났다. (126쪽)
연산군
연산군은 두말할 필요없이 나쁜 남자다. 나쁜 왕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내 광기는 점점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 (181쪽)
그러나 저자의 평가를 들어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무오사회 이전의 연산군은 정치적 감각도 뛰어났고 개혁적인 정책도 추진하는 뛰어난 왕이었다. .....또한 무오사회 이전에는 후궁도 많이 두지 않았고,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와의 관계도 돈독했다. (186쪽)
연산군이 폐위된 후 등극한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는 이렇게 평가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억울하게 폐비되어 사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산군은 점점 더 포악하게 변해갔다. (202쪽)
그러니, 아무리 좋게 봐준다 해도 나쁜 남자 타이틀을 벗기는 어렵다.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가 중종에 대해 전한다.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 이야기다. 그녀는 중종이 된 진성대군과 대군 시절 결혼을 한 후에 연산군이 쫓겨나고 그 뒤를 이어 남편 진성대군이 임금 중종이 되는 바람에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 왕비 자리에서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인왕산 치마바위’로 알려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중종에 대한 조정대신들의 발언을 이렇게 전한다.
조금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도타이 사랑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 (220쪽)
중종은 나쁜 남자, 그리고 나쁜 왕이었다. 이를 조선왕조실록이 말해주고 있다.
사신은 논한다. 상은 인자하고 유순한 면은 남음이 있었으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비록 일을 할 뜻은 있었으나 일을 한 실상이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하지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했기 때문에 재위 40년 동안에 다스려진 때는 적었고 혼란한 때가 많아 끝내 소강(小康)의 효과도 보지 못했으니 슬프다.
사신은 논한다. 인자하고 공검한 것은 천성에서 나왔으나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리어 진성군(甄城君)을 죽여 형제간의 우애가 이지러졌고, 신비(愼妃)를 내치고 박빈(朴嬪)을 죽여 부부의 정이 없어졌으며, 복성군(福城君)과 당성위(唐城尉)를 죽여 부자간의 은의(恩義)가 어그러졌고431) , 대신을 많이 죽이고 주륙(誅戮)이 잇달아 군신의 은의가 야박해졌으니 애석하다.
(중종실록 105권, 중종 39년 11월 15일 경술 12번째기사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이 책, 235쪽)
기구한 사연, 세 여인의 정처(定處)
연산군과 중종에 얽힌 세 여인이 있다.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 그녀는 이조판서 신수근의 딸이다.
연산군의 정비 역시 신씨다. 신씨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바로 신수근의 누이다. 그러니 단경왕후 신씨의 고모가 된다.
또 한명의 여인이 있다. 연산군의 장녀 휘경공주다.
먼저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난 단경왕후 신씨, 그녀는 궁전에서 나와 거처를 전전하다가 오라비 집으로 옮겨간다. 거기에는 이미 연산군의 왕비였던 고모(신수근의 누이) 신씨가 친정이라고 와있었다. 연산군과 중종 때문에 피해를 본, 두 명의 여자가 한 집에 기거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한 여인이 들어온다. 바로 연산군의 장녀 휘경공주.
그녀는 연산군이 폐위된 후 이혼당한다. 세상 인심의 야박함이여! 아버지가 임금 자리에 있을 때는 부마 자리를 그리 자랑하더니, 연산군이 그리 되니 단박에 부인을 쫒아낸 것.
그렇게 해서 세 명의 여인이 한 집에 살게 된다.
이 모든 게 나쁜 남자들 탓이다. 나쁜 남자에 나쁜 임금, 그런 역사가 우리 역사다.
다시, 이 책은? - 이 책의 압권, <장옥정전>
"똑같은 이야기가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165쪽)
연산군의 발언이다.
연산군이 왕으로 즉위한 후에 외할머니로부터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해 듣게 된다.
외할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는 그동안 신하로부터 들어온 사연과는 달랐다.
똑같은 이야기가 어떤 입장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것,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누구 입장에 서서 듣느냐에 따라 장희빈은 천하에 몹쓸 악녀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현숙한 여인으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궁녀 김원미를 필자로 내세워, 장옥정, 장희빈의 한을 풀어준다.
그동안 인현왕후의 편에 서서 그쪽 얘기만 실컷 들었던 독자에게
저자가 김원미에 빙의되어 풀어쓴 <장옥정전>은 역사의 기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하며 또한 역사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놀랍도록 깨닫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