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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건 수행 일기 - 대한민국을 뒤흔든 10·26, 12·12 현장 기록
이재천 지음 / 인사이드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현대사 사건 수행 일기
이건 역사다. 역사책이다.
<조선왕조실록>만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책이야말로 역사다.
이 책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큰 흔적을 남긴, 두 가지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자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니, 남에게 들어 현장을 기록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역사에 가장 큰 사건, 게다가 불행한 사건이라면?
바로 10.26과 12.12 사건이다. 숫자로만 기억하면 결코 안 되는 사건이다.
그날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이에 대하여 수많은 기록들이 이미 있지만, 그래도 더 구체적인 진실 알고 싶은 게 우리나라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그 현장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금까지 그 사건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신문에 의해 전해진 것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문 기사는 정확한 사실을 전하고 있을까?
그 실체적 진실은 어떤 것일까?
그런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을 모두 들어봐야 할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의 모든 증언을 청취한 다음에 그 증언을 교차 검증하여 서로 어긋나는 사항에 대하여는 다시 심층적으로 캐묻고 다시 검증하고 다시 캐묻고....
그런 과정을 거치고 거친 다음에야 겨우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작업은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있는데, 마침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현대사 사건 수행 일기』
여기서 수행이란 수행(遂行)이 아니고 수행(隨行)이다.
[정승화 장군의 전속 부관으로 보직된 뒤에는 근접 수행하면서 그 기록을 남겼다. (8쪽)
1977년 8월 모교인 육군사관학교로 돌아와 학교장 정승화 장군의 전속부관 임무를 수행하였다. (9쪽)]
저자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뒤흔든 세 번의 사건을 언급했는데, 그 중 두 가지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정승화 장군을 근접 수행한다. 수행(隨行)을 한 것이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건 중,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건이란 무엇일까?
바로 1979년 10월 26일 벌어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과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가 일으킨 12.12 사태다.
그 사건이 일어날 때, 저자는 어떤 일을 했을까?
저자는 일기 형식으로 그 사건들을 기록해놓고 있다.
나는 일기장에 유신 권력이 정지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승화 총장이 총 한 발 쏘지 않고 법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9쪽)
이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옮겨본다.
사건 이후 신군부는 정승화 총장의 탁월한 위기 조치를 왜곡하였는데, 이에 대해 대부분 법적 판결로 규명되어 불명예를 회복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으니 10.26 사건과 12.12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총장을 수행했던 전속 부관으로서 사실에 근거하여 다음 세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렇게 세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간략하게 소개한다. (10-11쪽)
첫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내란 목적으로 박 대통령을 시해하기 위해 정승화 총장을 초대하지 않았다.
둘째, 김재규 부장은 박 대통령 시해후 어떠한 무력 행위도 하지 않았다.
셋째, 12월 12일 신군부는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연행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선제 사격하였다.
공관에서 유일하게 실탄이 장전되지 않은 권총을 차고 있었던 나와 김인선 경호 장교는 선제 사격할 수 없었음을 그날의 일기가 말하고 있다. (12쪽)
이런 기록, 의미있다.
- 저자가 피격되는 순간을 기록한 내용이다.
나는 다이얼식 전화기를 들고 손가락으로 국방부 장관 공관의 전화번호 5026 중 5, 0 숫자를 돌렸다. 내 등 뒤에서 탕! 탕!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복부에 통증과 중압감이 몰려온 동시에 무거운 물체가 뒤통수를 내리쳤다. 나는 책상 좌측과 소파 사이로 넘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세 명 중 한 명이 나에게 총을 쏘는 동안 나머지 두 명은 권총으로 김인선 대위의 머리를 내리친 후 허벅지 등에 권총을 수 발 쏘았다. (286쪽)
저자가 기록한 1979년 12월 12일(수) 일기중 일부이다.
저자는 그날 벌어진 일들을 시간 별로, 시간 순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중 19:10 ~ 20:00 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1. 두 명의 대령, 총장님에게 직접 인사 요청
2. 총장님, 응접실로 들어가다.
3. 총장님의 호출 벨소리를 듣고 응접실로 뛰어가다.
4. 총장님이 국방부장관과의 전화 연결을 지시하다.
5. 국방부 장관 공관으로 전화를 돌리는 순간, 피격되다.
6. 피격후 정신을 차려 전화기를 들다.
7. 응접실 바로 피신, 육본 상황실로 최초 신고하다.
8. 육본 참모차장에게 총장님 납치를 알리다.
위의 8개 사항중 5번째로 자신이 피격된 사항을 적어 놓은 것이 바로 위에 인용한 부분이다.
그러니 이처럼 구체적이고 생생한 역사 기록이 어디 있겠는가?
저자는 그렇게 12·12 사태가 일어난 한남동 육군 참모총장 공관에서 피격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저자는 반성한다.
그런 사건을 거친 다음에 모진 고통의 시간을 겪은 저자, 이런 발언 들어보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1977년 8월부터 1979년 12월 12일까지 30여 개월 동안 육사 교장, 1군사령관, 육군 참모총장을 모셨던 내 임무를 돌이켜 보면서 반성하였다. 육군 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의 전속부관으로서 상관을 잘 모시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어 극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전속부관 임무의 핵심은 공인인 장군의 신변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함이다. 특히 야간은 전적으로 전속부관인 나의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이유로 전속부관 방은 공관 입구에 배치되어 공간 출입과 경계 임무를 통제하고 감독해야 할 위치에 있다. 결국 12월 12일 저녁 출입자 통제는 0점이었다. (306쪽)
저자가 보안사 서빙고 대공분실에 갇혀 있으면서, 들었던 소회를 기록한 것이다.
날짜는 1980년 1월 10일(목)의 일이다.
이런 기록, 과연 지금은?
적어도 내가 본 10월 유신은 뿌리 깊은 가난을 퇴치하기 위한 국력의 조직화에 있는 것 같았다. (75쪽)
정치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유신헌법이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데 급급한 사람에게는 잘살아 보자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강력하게 실천해 나가는 위정자가 사사건건 반대하는 사람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91쪽)
각각 1972년 11월 25일, 1975년 2월 13일자 일기에 적은 내용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은?
바로 그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에서 10.26 사건과 12.12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날짜별, 시간별로 기록해놓고 있으니, 이 부분은 우리 현대사의 귀중한 사료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의미있는 기록이다.
제5장 10·26 사건 현장에서
부산 · 마산지역 비상계엄령 발령
10 · 26 사건이 발생한 궁정동 현장
대통령 유고 상황을 수습하다
제6장 유신 권력 이양과 12·12 현장
유신 권력 이양 현장 수행
12 · 12 사태, 한남동 참모총장 공관 현장
국군수도통합병원 입원 생활
보안사 서빙고 대공분실 수감 생활
역사는 기록의 산물이다. 기록해야 역사가 된다.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기록이 의미있는 것이다.
저자가 기록해 놓은 일기장에는 말 그대로 역사가 담겨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 부분을 가감없이 기록해 놓은, 사료로 평가할 수 있는 귀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를 지닌, 역사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