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의 장소 - 유럽 속 이슬람 유산
박단,이수정 외 지음,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기획 / 틈새의시간 / 2025년 5월
평점 :
기억의 장소-유럽 속 이슬람 유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이 책은 유럽 곳곳에 남아있는 이슬람 세계의 ‘기억의 장소’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이슬람 세계의 흔적이 유럽에 남아있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이슬람 흔적은 당연히 이슬람 지역에 있어야 하는데.....까지 생각하다가, 그렇지, 스페인이 있지. 스페인 역사가 그렇지. 거기에 이슬람이 성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는데....에 생각이 미치자, 이 책의 의미가 선연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보면,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이슬람이 유럽에서 호령하던 시기에 흔적을 남겨놓았던 게 틀림없다. 그 흔적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그 흔적들은 어디 어디에 있나?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열면서 당연히 그 흔적은 지리, 장소별로 분류해 나갈 줄 알았다.
스페인에서는 이런 흔적이 있고. 이탈리아에는 이런 것......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만 허를 찔려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그 흔적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part 1 종교의 기억
part 2 문화의 기억
part 3 사상·언어의 기억
part 4 일상의 기억
장소별로 분류하는 게 아니라, 흔적의 종류별로 분류해놓고 있는 것이다.
해서 이 책은 그 목차로 종교, 문화, 사상과 언어, 그리고 일상에까지 이슬람의 흔적이 남지 않은 것(또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먼저 ‘아, 그렇구나.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래도 지리, 장소로 따져보았더니
그런 흔적의 범주로 나누려고 하니, 아무래도 생각이 먼저 장소와 연결되는지라, 이런 정리를 하게 된다.
part 1 종교의 기억 - 영국, 프랑스, 헝가리
part 2 문화의 기억 – 유럽 각지, 또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리보르노, 파리
part 3 사상·언어의 기억 – 아, 이건 굳이 장소를 따질 필요가 없다.
part 4 일상의 기억 – 이것 또한 장소를 따질 필요 없지!
그러고 보면 저자가 분류를 이 책대로 하기를 잘 했다.
지리, 장소별로 구분 분류했더라면 책을 써나가는데 애로가 컸을 것 같다.
먹거리 이야기 – 크루아상(croissant)
멀리 갈 것 없다. 주변에 빵집에 가보면 크루아상이 있다. 초승달 모양의 빵이다.
맛있다. 프랑스 빵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 빵에 얽힌 이야기가 이 책에 소개되고 있다.
이 빵의 유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스만 튀르크군이 1683년 빈, 또는 1686년 부다페스트를 공격할 때 성으로 들어가고자 성벽 아래로 밤새 터널을 파고 있었다. 이를 성안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던 어느 제빵사가 발견하고 아군에 알려 튀르크 군을 물리쳤다. 그 제빵사는 결정적 제보를 한 공로로 무슬림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드는 독점 권리를 받음으로써 크루아상이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는 이야기다. (122쪽)
물론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으니, 읽어볼 일이다. 무릇 그런 일에는 항상 몇 가지 버전이 따르는 법이다.
지성사 차원에서 – 이븐 할둔
얼마전 단테의 『신곡』을 읽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만났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을 지나가는 중에 제일 첫 번째 장소인 ‘림보’에서 만난 사람중에 흥미로운 인물들이 있다.
바로 이슬람 인물들이다. 기록되기를 살라흐 앗 딘(살라딘), 이븐 루시드, 그리고 이븐 시나, 이렇게 세 사람은 분명 이교도임에도 그들을 지옥에 배치한 게 아니라, 림보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단테가 살았던 시절에도 이슬람인들을 아주 배척하지는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이슬람인이 등장한다. 이븐 할둔. 역사학자다.
유럽 지성사에서 이븐 할둔을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19세기 초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역사서술의 학문화를 이미 14세기 중세 말에 제창했다는 점이다. 그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연구하는 방법, 그리고 서술하는 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역사를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로 여기는 시각을 넘어 ‘학문’, 그것도 ‘철학적이거나 사회과학적 학문’으로 확립할 필요성을 강조한 점이었다. (322쪽)
그런 인물이니 만약 단테가 그를 『신곡』에 배치한다면 적어도 지옥에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정말 대단한 흔적이 많다. 이렇게 많았나. 허기야 몰라서 그랬다.
그게 이슬람의 흔적인줄 몰랐던 게 더 많이 있었던 것이다.
해서 이 책으로 이제 조금 눈이 떠진 셈이다.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그것의 유래가 어떤 것인지 몰랐던 나의 지식에 플러스를 한 가지 더한다. 감사한 일이다.
이 책에서 이슬람의 흔적에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억의 장소'는 단지 과거의 흔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의 유럽을 어떻게 이해하고, 미래의 유럽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에 대한 문화적 열쇠다. 유럽은 이제 더는 단일한 기독교 문명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고 충돌하며 화해하는 역동적 무대다. 이슬람은 이 무대의 외부자가 아니라, 유럽 문명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조각 중 하나이다. (6쪽)
그리하여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이 책은 유럽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을 단순한 유물로 보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기억의 장치이자 문화적 상호작용의 상징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6쪽)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한 생각도, 또한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다시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