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아물지 않는다 -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이산하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은 아물지 않는다

 

이 책은?

 

이 책 생은 아물지 않는다는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이산하, 시인이다.

 

이 책을 보다 더 의미있게 읽으려면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난 후에 책을 읽어야 한다.

그가 1987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는 사실과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실행위원, 국제민주연대 인권잡지 사람이 사람에게초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인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그의 시는 책상에서 나온 시가 아니다.

그의 시는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이 책의 내용은?

 

시집 한라산의 저자인 시인 이산하가 쓴 아포리즘.

여기 모두 111편의 글이 소개되고 있다.

 

아포리즘이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로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따위를 가리킨다.>

 

이 책에 실려 있는 111개의 글들은 그 글 하나 하나가 모두 아포리즘이라 할 정도로 간결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해서 소개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 중에는 나를 일깨워주는 것, 새롭게 알게 되는 것,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또 시도 있다.

 

먼저 이런 글 읽어보자.

<모든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잘리고 병든 이웃 나무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그 애정과 결합의 정도가 강한 숲일수록 더 오래 유지된다. 참나무나 전나무, 가문비나무, 더글러스소나무 등 거의 모든 나무도 마찬가지다. 숲이나 산을 걷다가 발견하는 살아남은 밑동은 그런 우정과 상호 연결의 결과이다.> (25)

 

그래서 글의 앞부분, 이런 글을 새겨야 한다.

나무들도 서로 영양분을 나누지 않으면 더 빨리 죽고 죽은 나무도 금방 썩어 숲에 구멍들이 뚫린다. 그럴 때 태풍이 오면 옆이 나무들도 쉽게 쓰러져 죽는다.

 

옆의 나무가 쓰러지는데, 저라고 별 수 있을까?

 

코스타리카라는 나라는 군대가 없다. 사실일까?

저자는 그 나라를 이렇게 소개한다.

<코스타리카는 1948년 과감하게 군대를 해체해 버렸다. 대통령은 군대가 없는 것이 최대의 방위력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군대가 없으니 당연히 무기도 필요 없을 것이다.> (43)

 

이런 사실, 정말일까?

정말이다. 사실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확인한 바는, <1949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를 철폐한 이후 경찰이 치안유지와 국토방위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

  

사람이 죽으면 꽃을 같이 묻었다. 예부터. 

지금의 이라크 북부, 한 동굴에서 6만년전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유골 근처에 빙 둘러 꽃가루들이 나왔다. 그 꽃가루들을 분석하니 놀랍게도 지금도 볼 수 있는 꽃들이었다. 아킬레아, 엉겅퀴, 접시꽃, 히아신스 등.

그때도 네안데르탈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꽃을 같이 묻었던 것이다. (68)

 

현각스님은 요즘 뭐하시나요?

예전에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녔던 화제의 스님이 있다. 현각 스님.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그랬던 스님이 안 보인다. 매스컴에 나오질 않는다. 어디에 계시는지?

 

한국을 떠나셨다. 이유 중 하나는, 소위 인기라는 것이다. (248)

유명해지는 것은 전혀 내 뜻이 아니었는데... 결국 명성은 또 다른 짐이자 고통이란 걸 깨달았다. 난 외로워지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거기서 또다시 유명해진다면 난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진정한 구도자, 수도자는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인기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는 게 덧붙인 나의 생각이다.

 

아포리즘중 아포리즘 - 이런 시는 어디 벽에라도 굵게 새겨두자.

 

불혹

 

백조는 일생에

두 번 다리를 꺾는다.

부화할 때와 죽을 때

비로소 무릎을 꺾는다.

 

나는 너무 자주

무릎 꿇지는 않았는가.

(172)

 

이 시는, 이 책의 아포리즘중 아포리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자르는 데는 너무 인색하고 타인의 생각을 자르는 데는 너무 익숙하다.> (63)

 

정명훈 지휘자가 줄리어드 음대에서 공부를 할 때, 어느날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의 답은 이랬다.

지휘를 잘하고 싶지만 잘 안되는데 어떻게 하면......”

“It takes time.(시간이 걸려)” (126)

 

<오늘, 어느 석좌교수가 쓴 과학책을 읽다가 혈압이 올라 곤욕을 치렀다. 조악한 비문의 장례행렬이 이어졌고 나는 조용히 책을 쓰레기통으로 운구했다.>(143)

 

공감이 가는 글이어서, 옮겨 놓는다. 크게 공감이 가는 글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도 꼭 읽어야 한다.

이 시가 맨 앞에 수록되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워, 여기 옮겨 놓는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읽어보라는 의미다.

책 제목이 마침 시의 제목이기도 하니까, 이 시를 읽어야 책을 읽는 셈이 된다.

 

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시는 책상에서 나온 시가 아니다. 그냥 읽고 허공으로 사라지는 시가 아니라,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