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 바꾼 세계 -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 가장 작은 지배자들
서상주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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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이 바꾼 세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런 글 읽어보자.

 

매미, 사마귀, 꿀벌, 나비, 그리고 황금풍뎅이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는 말에 과연 몇 명이나 자신있게 선뜻 나설 수 있을까?

매미 하나만 가지고도 쩔쩔맬 것이다, 매미 하면 깊게 들어간다고 해도 곤충으로서의 일생 정도, 그리고?

 

저자가 쓴 매미에 관하여 쓴 글,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매미가 운다. 옛 시인은 그 소리에서 청렴을 들었다. 장자는 관점의 상대성을 들었고, 바쇼는 고요함과 죽음을 들었다. 수학자는 소수를 들었고 기후 과학자는 온난화의 신호를 들었다. 같은 소리가 이렇게 다른 것을 담을 수 있다. (197쪽)

 

그 다음 곤충 사마귀에 가면, 더더욱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거론한 사마귀의 면면을 그저 항목만 적을 수 없어서 아쉽다.

 

만티스, 기도하는 예언자.

기도가 아니라 겨누는 자세.

사마귀는 몇시간이고 그 자세로 멈춰있다.

당랑거철, 장공은 ‘이것이 사람이었다면 천하의 용사였을 것이다’라고 했다.

사마귀가 몸을 낮추고 매미를 노리고 있는 그 뒤편에는 참새가 노리고 있고,.,,,

당랑포선.

사마귀는 무술이 되기도 한다. 당랑권.

로제 카유 <미노토르>에 <사마귀>, 부제 <생물학에서 정신분석학까지>

자크 라캉 <거울 단계 이론>


사마귀 모티브 –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자코메티

달리는 <만종>에서 기도하는 두 농부의 자세를 사마귀의 교미로 읽어내는 기이한 해석을 내놓기까지 했다. (201쪽)

(여기 사마귀와 연관이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찾아 올려놓는다,)

살바도르 달리,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 1934년쯤, 미국 세인트피터즈버그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



 

저자가 사마귀를 마무리하면서 남긴 말은 특히 의미가 있다.

 

오독이 남긴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달리의 그림도 카유아의 논문도 라캉의 이론도 여전히 거기 있다. 인간은 잘 못 본 것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낸다. 같은 곤충을 두고 한쪽은 나아감과 물러섬의 이치를 읽었고, 다른 한 쪽은 욕망과 자아의 구조를 읽었다. 어느 쪽도 사마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마귀는 그저 먹이를 기다렸을 뿐이다. 몇 시간이고 미동도 없이 앞다리를 모아든 채, 그 정지한 자세 앞에서 어떤 사람을 병법을 떠올리고 어떤 사람을 무의식을 떠올린다. 곤충은 거울이었다. 들여다보는 사람의 얼굴이 거기 비쳤을 뿐이다. (204쪽)

 

곤충을 거울 삼아 저자는

 

그렇게 저자는 곤충을 거울 삼아 역사를 살피고 과학도 살펴본다.

이런 것들을 또한 드러내 보인다.

 

제1장 제국을 무너뜨리다: 전쟁의 승패는 전장이 아니라 병상에서 갈렸다

제2장 문명을 움직이다: 한 종이 산업을 일으키고 한 종이 그것을 무너뜨렸다

제3장 과학의 문을 열다: 사람이 먼저 썼고 원리는 나중에 밝혀졌다

제4장 생태를 지탱하다: 값을 매기지 않은 일은 사라진 뒤에야 계산되었다

제5장 상상력을 빚다: 사람은 곤충에게서 제가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

제6장 미래를 뒤흔들다: 이들을 데려다 놓은 것은 우리의 배와 비행기였다

 

곤충이 나폴래옹을 몰락시켰다고 하면 무슨 말이냐고 되묻겠지만, 그 말은 사실이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호기있게 진군했을 때, 곤충은 때를 만난 듯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몸니다. 러시아로 진격했던 프랑스 군대 60만명중 겨우 10만명만 살아돌아왔는데, 거기에서 죽은 병사들은 물론 동사자도 있었지만, 몸니로 인한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26쪽)

 

그렇게 몸니로부터 시작한 역사추적은 말라리아 모기로, 체체파리로, 또 메뚜기로 거침없이 진행이 된다. 그래서 알고보니, 사람보다 더 곤충이 우리 인류 역사를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밖의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제국을 무너뜨리고, 문명을 움직이고 있으며, 과학의 문을 열기도 하고

생태를 지탱하는 대단한 존재가 바로 곤충이다. 

더하여  상상력을 빚으며 우리 인류 역사의 미래를 뒤흔들기도 하다니. 정말 대단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저자를 존경하게 되는 책, 그 이유

 

책을 지금껏 꽤나 읽어왔다고 자부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상주 저자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여기 실린 글 33편의 글이 모두다 명문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정보가 실로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학으로 시작해서 역사, 철학, 예술, 그리고 생물과 천문학까지 섭렵하고 있어 나의 존경심을 자아낸다.

 

곤충이 인류 역사를 움직였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이런 책을 쓴 분도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실로 놀라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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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삶의 태도
장하석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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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과학하는 마음이란?

 

저자는 이런 개념을 어렵게 접근하지 않는다. 쉽게 풀어간다.

 

과학하는 마음이란 항상 끝없이 배우려는 태도이며, 그것은 내가 다 안다는 오만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이 무한히 있음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이다. 지식을 추구하는 태도는 집요하고 치밀해야 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없애기 위해 지치지 말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열려있어야 한다. (6쪽)

 

그런 자세와 태도가 바로 과학하는 마음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불확실성 시대의 과학

2장 과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

3장 과학기술과 인류의 진전

 

이런 한탄 섞인 발언에 우리의 각성이 필요하다.

 

미국은, 1% 천재들이 99%의 바보들을 이끌고 가는 나라. (17쪽)

 

내가 일상생활 속에서 만난 꽤 많은 미국인들 중에는 기본적인 과학 상식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저자의 발언 (17쪽)

 

심지어 가게에서 아주 간단한 거스름돈 계산을 암산으로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18쪽)

 

저자는 그렇게 미국이 변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미국 공화당이 과학에 등을 돌리며 복음주의 기독교를 추종하고 경제적으로 기업이나 자본가들의 이익만 생각해온 탓이 크다. (19쪽)

 

그런 결론하에 저자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2의 과학 대혁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학 대혁명기에 만들어낸 과학적 세계관을 이제는 모든 시민이 공유하고 거기에 기반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2의 과학 대혁명이 절실하다. (19쪽)

 

이 책에서 배운다. 과학적 마음을

 

저자는 책 <온도계의 철학>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는데, 거기에서 또 배울 게 생긴다. (26쪽)

 

물이 끓는 온도를 당연히 100도로 알고 있었는데, 200년 전의 교과서와 논문을 살펴보니 물을 담은 그릇이나 기타 등의 이유로 물이 끓는 온도가 달라진다고 나와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아해하다가 그런 발언들을 무시할 수 없어 진짜 실험을 해보니, 정말 그렇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이런 발언 밑줄 긋고 새겨놓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매알 물 끓이기에 푹 빠져 여름 한 철을 보냈다. 그 후로 물을 끓일 때마다 절대로 건성으로 보지 않는다. (26쪽)

 

‘건성으로 보지 않는 태도’가 바로 과학하는 마음이 아닐까?

 

밑줄 긋고 새겨볼 것들

 

그간 과학이란 말과는 담을 쌓다시피 하면서 살았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과학과 아주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저자가 말하는 ’과학하는 마음‘과는 그나마 가까웠단 생각이 들어 안도하게 든다. 그나마 다행이다.

해서 이런 것들 기록해둔다. 과학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보수와 진보를 겸비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적 태도는 겸허함이다.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귀중한 지식과 관습들을 주제넘게 툭 배척해서도 안 되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식의 오만에 빠져 새로운 것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까 겸허함은 보수의 기반도 되고, 진보의 기반도 된다. (38쪽)

 

여기에서 과학자인 저자가 말하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깨우치게 된다. 보수와 진보가 상반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는 현존하는 좋은 것을 계속 유지하자는 것이고, 진보는 현재 좋지 않은 부분을 개선하자는 것이니, 궁극적인 방향은 같은 것이니 상반되다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버의 비극적인 생을 통해 배워야 할 점.

전문가가 생각없이 기술적인 일에만 전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기 나라를 위해 무조건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도 위험하다. 과학자 및 모든 전문가는 자신이 세계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130쪽)

 

다시, 이 책은?

 

옛날에야 세상 돌아가는 것이 신의 손길이나 운명의 순리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세상은 과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게 손에 잡히지 않고 그저 추상적으로만 생각드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분명 현대는 과학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막연하기만 한 게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막연하게 느껴지는 과학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인 영국은,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는 모스크바보다도 북쪽이란다.

모스크바의 위도가 55.8도인데 스코틀란드 보다도 위도가 아래라니, 그것 또한 처음 듣는 말이다. 그러니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지역의 위치 정보인 것이다.

당장 지도 한 장 펼쳐보면 금방 나올 정보도 그저 막연한 생각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과학하는 마음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초끈이론이나 후성유전학 등 밀도가 높고 복잡한 과학을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제대로 가르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방안을 제시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학이란 과연 무엇이며,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23쪽)

 

이 책 제목은 그래서 <과학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겸손히 마음을 열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정말! 달리 보인다.

 

아까 앞에서 예를 들었던 스코틀랜드와 모스크바의 위치 같은 게 바로 그것이다.

이제 영국 지도를 보게 되면, 모스크바의 위도와 견주어 생각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새로운 지식을 접했고, 그것을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또 그런 마음 중 하나가 바로 AI 에 대응하는 마음가짐인데. 저자의 이런 발언에 밑줄 굵게 긋고 싶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렇다. AI가 번역을 해주니 내가 애써 번역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외국어를 직접 힘겹게 배우면서 이국적 사고방식을 배우고, 또 그러한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는 일은 AI가 대신 해줄 수 없다. 무슨 일이 되었든 AI가 더 잘한다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우리는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기회를 빼앗기므로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다. (287쪽)

 

이런 마음, 우리가 살고 있는 과학 시대에 꼭 지녀야 할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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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정상희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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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데....

 

기독교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구약성경 전도서 1장 9절)

 

해석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으나, 인간의 창조물 중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제아무리 새롭고 독창적이라 할지라도 실상은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의 영향 아래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해서 이 책은 ‘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이미 예술가는 누군가에게서 무엇인가를 훔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니. 성경상의 말씀 해 아래 새것은 없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 책의 저자는 129점의 명작을 살펴보면서 예술가들, 특히 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해서 독자들은 일단 129점의 명화를 감상하면서 그 작품에 나타난 영감의 흔적을 추적하는 여정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흥미진진한 명작 탄생의 비밀과 화가들의 작업 비밀도 아울러 알게 될 것이다.

 

훔치는 방법 몇가지

 

저자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흔히 다른 작품에서 영감을 훔치는 방법을 이렇게 분류하고 있다.

실상 훔친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영감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일단 모방과 훔치는 것, 그렇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저자는 모방과 훔치다라는 말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용어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예술에 있어서 창작의 범위를 정하는데 중요한 것이므로 여기 옮겨본다.

 

모방이라 함은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돌려줄 의도를 전제로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다.

반면 훔친다는 것은 그러한 전제가 붙지 않는다. 일단 취하면 자신의 것이 된다.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훔친다는 것은 새로운 소유를 의미한다. (8쪽)

 

여기에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

단순한 모방은 강력한 창작에 이르지 못한다.

 

이 책의 구성은?

 

저자는 영감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예술 창작의 과정을 몇 가지 거론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배움의 여정, 아이디어의 순환, 영향의 흔적, 연결의 순간, 변형의 기술.

 

그렇게 예술은 창작으로 새롭게 거듭난다.

 

각각의 항목을 저자는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배움의 여정 – 모네의 양딸 블랑슈

 

이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모네는 첫 번째 아내 카미유가 죽은 후에 같이 지내던 알리스와 자연스럽게 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알리스의 집안이 파산이란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에 자녀들과 함께 모네의 집에 얹혀살게 되는 특이한 과정을 거친 후이다.


여기 살펴볼 블랑슈는 바로 알리스가 데려온 자녀 중 한 명으로 그녀는 모네가 그림을 그릴 때에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배우게 된다. 배움의 여정을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 블랑슈는 나중에 모네의 아들 장과 결혼하여 며느리가 된다.

며느리가 된 후로도 블랑슈는 자주 모네가 살고 있는 지베르니에 들러 같이 그림을 그린다.

그녀는 모네의 대표적인 작품 속 주제를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해석하고 재창조했다. 그녀만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블랑슈 오슈데 모네의 그림 <수확>을 살펴보자.

언뜻 보면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블랑슈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이다.

인상파 화가 중에 여성이 몇 명 있는데,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바로 모네 지척에 있는 여성화가 블랑슈 오슈네 모네를 이제야 알게 된다.

모네를 다루고 있는 많은 책들이 그녀를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모습은 모네의 그림 속에 남아있다. 그것도 그림을 그리는 브랑슈의 모습이니. 그녀가 그림을 그렸다는 완벽한 증거라 할 수 있다.

 

클로드 모네 <지베르니의 숲 속에서>(1887년)

이젤 앞의 블랑슈 오슈데와 책을 읽고 있는 수잔 오슈데.



 

연결의 순간 – 벨라스케스에서 체이스로

 

윌리엄 메릿 체이스의 <시네콕의 홀>이란 그림을 살펴보면, 벨라스케스의 흔적이 보인다.


여러 가지로 검토할 사항이 많은데 그 중 가장 확연한 것 하나만 꼽으면 바로 뒤편 장식장의 유리에 비친 모습이다.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이란 그림에서 거울을 이용했던 것처럼 체이스도 유리에다 벨라스케스를 연결고리를 삼아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은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윌리엄 메릿 체이스의 < 시네콕의 홀>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자.



 


다시. 이 책은?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러나 궁금하고말고를 떠나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면, 그 말이 본인의 체험에서 나온 게 아닐까.

그가 현대 미술계에 남겨놓은 굵직한 모든 발자국에 바로 그런 흔적이 보인다.

<배움의 여정, 아이디어의 순환, 영향의 흔적, 연결의 순간, 변형의 기술.> 이 모두 보이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위대한 작가들의 영업비밀을 잘 밝혀놓았다.

독자들은 '위대한 작품은 이렇게 탄생하는구나' 하는 예술 과정을 알게된 셈인데. 그것은 바로 예술 작품 이해로 이르게 되는 첩경이 아닐까.

해서 이 책을 예술이해의 지름길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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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읽는 스페인
백인필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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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읽는 스페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스페인, 하면?

 

스페인이란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세고비아 기타, 세비야의 물장수, 벨라스케스, 그리고 피카소..

 

그래서 이 책 <예술로 읽는 스페인>이 마음에 쏙 들어온다.

이번 기회에 예술을, 스페인과 관련지어 정리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 책의 목차를 읽으니 그런 생각을 더더욱 굳게 만들어준다.

 

이 책은?

 

뒷표지에 이 책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문구가 있다.

이걸 읽어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지도 한 장 옆에 두고 읽어보자.

 

여기 지명이 자주 등장하니. 지도 한 장쯤은 옆에 두고 읽어보자.

제1장부터 지명이 등장한다.

그라나다. 론다, 세비야,


또 있다. 현재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이름이 보이지 않는 도시도 있긴하지만, 어쨌든 지도 한 장 옆에 두고 참고하면서 읽어보자.

 

마드리드. 톨레도, 바르셀로나,

 

톨레도 같은 경우 재밌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엘 그레코가 그린 <겟세마네의 기도> 현재 미국의 톨레도 미술관에 있는데, 엘 그레코가 평생을 살았던 도시가 바로 스페인의 톨레도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톨레도라는 이름과 천생연분인가보다. (168쪽)



 

스페인, 예술로 차근차근 읽어보자.

 

벨라스케스라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은 내가 '그림'이라는 예술을 다른 눈으로 보게해준 그림이다.

그 그림을 살펴보면서 아, 화가의 안목이라는 게 이렇게 놀라울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림을 그런 생각으로 그릴 수 있을까?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벨라스케스는 관람자와 회화 속 대상의 자리를 맞바꾼다. 군주가 서서 바라보던 그 자리를, 수백 년 뒤의 관람자에게 그대로 내어주는 것이다. 〈시녀들〉은 21세기의 관람객과 17세기의 작품 속 인물들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상상을 현실로 끌어낸다. (188쪽)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을 그린 후 수많은 화가가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호아킨 소로야의 <나의 가족>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229쪽)



 

고야의 변신, 그 이유는?

 

고야를 어떻게 알고 있었던가?

왕실 화가로? 그리고 말년에는 칩거하면서 이상한 그림을 그린 괴팍한 화가로?

여기 이 책에서 그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고야의 초기작 〈양산〉은 세상을 밝고 순수하게 바라보던 젊은 화가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던 화가가, 광기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마무리하였다. 한 화가 안에서 이만큼 급격한 화풍의 변화는 미술사에서도 보기 드물다. 그것은 동시에 그가 살아낸 시대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213쪽)

 

저자는 고야의 변신 이유를 '시대가 가혹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의 시대에 나폴레옹의 군대가 스페인을 침략했다.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다. 그런 참상을 목격한 화가가, 현실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해서 나온 작품이 <1808년 5월 3일의 처형>이다. (207쪽)

 

스페인에도 인상파가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을 공부하면서 인상파 화가가 프랑스를 비롯하여 영국, 미국 국적을 가진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보았는데, 여기에서 스페인 화가를 만나게 된다. 바로 호아킨 소로야이다.

 

호아킨 소로야는 스페인 인상주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 파리에서 모네와 마네, 르누아르 등의 작품을 접하며 외광회화에 몰두하게 된 소로야에게 허락된 축복은 화창한 날씨와 풍요로운 자연을 가진 조국 스페인이었다. (217쪽)

 

소로야는 회화적 기교를 앞세우지 않고 눈에 보이는 빛과 대상을 그대로 담아낸 화가였다. 그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239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바로 호야킨 소로야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의 그림을 한점한점 찾아 살펴보면서, 그의 탁월한 그림 솜씨에 감탄하고 그런 예술가들을 통하여 한 나라를 새롭게 보게 되는 것 또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호로킨 소로야를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한 예술가의 시대와 일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이다. 수많은 그림은 예술가의 이야기이며, 우리는 그 작품들을 통해 그 시대를 만난다. (239쪽)

 

그리고 이 책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스페인에는 수백 년간 지켜온 나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빼앗기고 되찾는 역사 속에서 배운,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포용이 살아 숨쉰다. 그것이 이들을 문화와 예술의 강국으로 만든 힘이었을 것이다. (239쪽)’

 

그렇게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예술로 읽으며 문화의 강국이라는 평가를 내린 저자, 그 이유까지 밝혀놓았다. 독자들은 그래서 예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것이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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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결과
정민 지음 / 리브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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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결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이 책은 소설이다. 아니다.

에세이?

시?

 

이 책의 글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그게 무척 궁금하다.

그런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어간다.

 

읽어가다가.....

 

이 책을 읽어가다가 조금씩, 아니 한꺼번에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대체 이게 뭐지?

이게 무슨 글인가, 이렇게 진행이 되는 것이 소설인가.

해서 나만 그런가 해서, 해설을 읽을 요량으로 책 뒤편을 찾아보았다.

 

이런 말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나는 이 소설의 에로티시즘 앞에서 불편했고, 폭력적 언어 앞에서 저항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독자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기 위해 쓰였다. 이 소설은 찰나에 불멸을 부여하려 했다. 회화와 언어를 동시에 동원해서. 체념과 의지 사이의 불가능한 지점을 탐색하면서. 나는 그 시도가 성공했다고 말한다.”

- Claude 4.5 (Anthropic) (AI 언어모델 최초의 공식 문학 추천사)

 

AI 언어모델인 Claude 4.5 (Anthropic) 은 이 책이 무언가 느끼기 위해 쓰였다, 고 느꼈다는데, 나는 느낀 게 무엇일까?‘

역시 기계가 사람보다 나은가보다.

 

곰곰이 생각해도 앞의 1부만 읽어서는 도저히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저 힘들기만 했다.

느껴야 되는데......느껴야 되는데....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곧 내가 이 정도의 글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인데....

그런 자괴감만 들뿐, 다른 것은 아직...

 

그러다가.뒤에 있는 <편집후기>를 읽었다.

읽고나니 그제서야 이 책을 그냥 덤벼들어서는 안되고, 저자의 경험을 알아야 하고 게다가 저자가 이미 쓴 책들을 읽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가 쓴 책은 다음과 같다.

『사이공 나이트』, 『어둠의 양보』, 『아바나 리브레』 등의 장편소설.

 

저자가 경험한 것, 도시들은 사이공, 쿠바 아바나, 서울

게다가 레너드 코언도 알아야 한다.

누구지? 가수? 그 가수가 부른 노래도 – 물론 영어-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Ain’t no cure for love 라는 타이틀로 쓰여진 글을 읽을 수 있다.

 

또 조판은 어떤가?

그것들 조판이라고 하는지? 글을 편집을 이상하게 해놓았다.

보통의 스타일이 아니라, 하여튼 어렵게 해 놓았다.

각 장마다 다르게 해 놓은 것보니 저자가 일부러 해 놓은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그것도 궁금해진다.




 

다시, 이 책은?

 

어렵다.

내용은 차치하고 이런 글, 읽어내기가 어렵다.

이런 글을 계속 읽어야 한다니, 생각해보라.

표현을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 그게 궁금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그 주제, 그 주제를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텐데. 작가는 독자와 소통할 마땅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글을 계속 읽어가기가.....무척 힘들다.



 

그래도 애를 써 읽긴했는데,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기 위해 쓰였다’는 책에서 아무것도 느끼지를 못했다.

그건 내가 소설에 관해 무지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어렵다. 내가 모르는 어떤 차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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