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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림의 500자 소설
문수림 지음 / 수림스튜디오 / 2026년 3월
평점 :
500자 소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500자라면, 우리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에 최소로 써야하는 그 분량인데
그 글자 안에 과연 소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 속에 얼마나 사건과 생각을 압축해서 집어넣어야 할지?
한 작품 한 작품 속을 들여다 보면서, 그 작업의 과정의 결과물을 살펴보고 싶었다.
이 책은?
과연 500자로 쓰여진 소설이 있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설의 구조, 형식은 차치하고 그안에 제대로 된 메시지가 들어갈 수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500자 소설』은 ‘500자’라는 단순한 분량 규정이 아니라, 특정한 쓰기 조건과 읽기 방식을 포함한 하나의 형식이다. 이 형식은 반복을 통해 축적되며, 그 과정 자체가 장르적 성격을 형성한다. (서문 중)
또한 저자는 ‘곳곳에 작은 이스터에그를 심어두었다’는데, 그것도 읽어가면서 찾아야 한다.
‘이스터에그’가 무엇인가?
내가 아는 이스터에그는 부활절 달걀 밖에 없는데, 또 다른 뜻이 있는가 해서 찾아보니, 이런 뜻이 있다.
이스터 에그(Easter Egg)는 영화, 책, CD, DVD, 소프트웨어, 비디오 게임 등에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을 뜻한다. 또한 이스터 에그라는 이름은 서양권에서 부활절에 부활절 달걀을 미리 집안이나 정원에 숨겨두고 아이들에게 부활절 토끼가 숨겨놓은 달걀을 찾도록 하는 부활절 달걀 찾기 풍습에서 유래했다. (인터넷에서)
그러니까 부활절에 달걀 찾는 게임을 하듯이 이 책 안에 숨겨놓은 그 무엇인가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힘들까? 아닐까?
과연 500자안에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까?
소설에는 장편과 단편, 그리고 장편(掌篇)이 있다.
극히 짧은 소설을 장편(掌篇)이라 하는데, 그런 경우도 500자는 넘을 것이다.
그러나 500자 소설은 그야말로 초장편(超掌篇)이라 할 수 있다.
짧아도 너무 짧은 소설.
여기 이 책에 실린 101편의 초장편(超掌篇) 소설, 읽기는 과연 어떨까?
간단히 말해서 쉬울까? 짧으니까 읽기가 쉬울까?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어렵다. 먼저는 그 안에 소설적인 정치는 차치하고 소설이 갖는 기본적인 줄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그러니 독자는 그야말로 열일을 해야 한다. 힘든 일이다.
하나의 글을 몇 번이고 읽어 그 뜻을 헤아려야 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 안에 숨겨놓은 것은 없는가, 같은 말이라도 다른 뜻으로 해석되지는 않을까?' 등등
하여간 별별 생각을 다 해가면서 읽어야 하니, 이건 진짜 중노동이다,
읽다가 이런 것을 발견(!) 했다.
소설 하나 하나 마다 제목이 붙어있다. 그리고 그 앞에 넘버가 붙어있다.
첫 번째 글은 타이틀이 <마지막 대화>인데 그 앞에 1이라고 쓰여있으니 첫 번째 글이다.
그런데 그 다음 글은?
2가 아니다. <32. 달로 가는 자전거>이다. (8쪽)
그리고 그 다음 글은 역시 3이 아니다. <27. 배변 대행>이다.
그러니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이다.
이게 웬일?
이건 분명 저자의 어떤 의도가 숨겨있음이 분명하다. 혹시 이게 저자가 말한 이스터에그?
그래서 몇 개의 글을 순서대로 연결해보기도 했다.
<1번 마지막 대화> (6쪽) - <2번 씨앗> (58쪽) - <3번 숙제> (196쪽) - <4번 유예>(60쪽)
그렇게 이어봐도 뾰족한 연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헛짚었나 보다.
혹시 이게 이스터에그?
읽다가 페이지 하단에 무언가 쓰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97쪽이다.

저자가 글에 이어서 몇 마디 코멘트를 하는 난이 있다.
<당신의 글은 언제부터 판매를 전제로 쓰이기 시작했나요?>
그것은 그 위의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이리라.
그런 질문을 읽으면 독자들은 자신들의 경우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나같은 경우는?
없다, 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속으로 대답하고 그 아래로 눈을 내려보니 이런 글이 보인다.
<숨어서 대필도 했고
드러내고 대담집도 썼고.>
어라? 이건 저자의 경우가 아닐까?
그러니까 저자가 질문하고 그 질문에 저자의 경우를 답변에 적어놓은 것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 답변을 보고, 그것을 따라서 스스로 답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것이 바로 저자가 군데 군데 숨겨놓은 이스터에그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또 다음을 읽어보니, 그게 또 맞지를 않는다.
다시. 이 책은?
추리소설을 읽어보면 이런 문구가 보인다.
‘독자 여러분도 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 범인이 누구인지 작가와 게임을 해보시라!’
저자가 추리소설 곳곳에 숨겨놓은 단서를 찾아가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보라는 것인데, 그게 추리소설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스터에그를 찾아내는 재미,
그리고 500자 이내로 쓰여진 소설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가는 재미.
그런 재미를 느낄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야말로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된다.
'이건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 것 아닐까?' 등등
오랜만에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그러니 읽는데 힘들어도 독서의 기쁨이 앞서는 것이다.
그나저나 리뷰를 쓰다보니, 500자를 훨씬 넘었다. 이거 저자가 알면 혼낼지 모른다.
<500자 소설> 리뷰가 500자를 넘다니? 말도 안돼, 라는 꾸중을 들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