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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6년 1월
평점 :
동방순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의 제목 『동방 순례』에서 동방은 어디일까?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제목의 이해가 필요하다.
『동방 순례』, 즉 '동방으로 가는 순례'라는 말인데, 그 ‘동방’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곳이 어디인가는, 여기쯤 오니까 비로소 알게 되는데, 그때부터 읽기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공간적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스르며 여행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정은 동방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중세로도, 또 황금시대로도 행진을 했다. (43쪽)
우리의 목표가 단지 동방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동방’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나라나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동방은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아무데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버린 그런 곳이었다. (44쪽)
유럽의 절반과 중세의 한 부분을 가로질러 온 뒤, 이탈리아 국경에 이르러(.......) (61쪽)
즉, 동방은 단지 지리적인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그제서야 이 책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저자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만약 독자들을 공동체의 비밀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 허락되기만 한다면 우리가 행한 일들이 펼쳐졌던 그 차원, 그리고 그 행위들이 속하는 영혼의 체험들을 비교적 쉽게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허용되지 않기에, 많은 것들이 어쩌면 모든 것이 독자에게는 믿기 어렵고 결국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14쪽)
그리고 말이 지니고 있는 한계에 대하여 역설한다.
언젠가 동방에서 온 현명한 친구 싯다르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말이란 숨겨진 깊은 뜻에는 이롭지 못하다. 모든 것이 언제나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씩 왜곡되며, 조금씩 어리석어진다. 그렇지만 그것도 괜찮다. 나는 그것조차 기꺼이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물이자 지혜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15쪽)
이렇게 여러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글이기에, 읽을 때마다 다시 읽고 되새김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의 실종, 아니 레오의 존재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레오의 실종,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다.
하인 레오의 실종을 둘러싸고 온갖 중요한 테마가 흘러나온다,
그 의문은 모르비오의 골짜기에서 레오를 찾던 때에 시작된 것이다, (72쪽)
여기서 레오는 철학의 주제로 바뀐다.
또 있다.
다시 레오를 만났을 때, 레오는 화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십 년이 지나도록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슬프게도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101쪽)
그리고 다시 레오는 이번에는 결맹의 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따라서 레오의 정체, 레오라는 존재는 이 책에서 아주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체 레오는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화자는 ‘나의 형상은 레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그에게 흘러 들어가 그를 먹이고 강하게 하려했다.(.........) 그는 자라나야 했고, 나는 소멸해야만 했다’(167쪽)고 말하는가. 대체 레오는 누구이기에?
헤세의 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나는 그 책을 쓰던가, 아니면 절망 속으로 떨어지던가 해야 했지. (84쪽)
루카스가 한 말, 이 말의 의미는?
실상 헤세는 루카스의 입을 빌려 헤세의 심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해설>에서 해설자는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완성한 후 찾아온 창작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집필되었다고 한다. (172쪽)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가 가득하다.
이 책의 내용은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을 이해해야만 이 책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것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친구 루카스는) 우리가 거둔 성과, 티치노 지방의 몬타크 마을을 인도받은 일이 감명 깊었다고 했다. (79쪽)
이 글 하단에 주석을 보면, 그 문장을 이렇게 풀어놓고 있다.
몬타크 마을은 스위스 몬타놀라를 의미한다, 한스 보드머가 몬타놀라에 있는 집을 헤세에게 선물한 것을 암시한다.
그러니 루카스의 말은 비유인 것이다. 이런 비유를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헤세의 이 책은 다른 방향으로 읽히게 된다.
또한 레오를 다시 만났을 때, 레오가 화자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또한 은유에 속한다,
그는 십 년이 지나도록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슬프게도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101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나는 하인 레오에게 물었다. 왜 예술가들은 때때로 ‘반쪽짜리 인간’처럼 보이는 반면 그들이 창조한 형상들은 이토록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냐고 말이다. (54쪽)
이에 대한 레오의 답변, 밑줄 굵게 그어야 한다.
어머니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를 낳아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 힘을 다 내어주고 나면 정작 그들 자신은 눈에 띄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더는 그들을 찾지 않게 되지요. (55쪽)
어떤 물건이 손에서 사라지게 되면 유독 더 소중해 보이고, 당장 손에 쥔 어떠한 것보다도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64쪽)
문학 작품 속에 서술된 인물들이 그들을 창조해 낸 작가의 모습보다 더 생생하고 사실적일 때가 많다. (168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내용은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을 이해해야만 이 책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는 항상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몇 번, 아니 단 두 번만 읽어도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렇게 이해되면 글이 두 번째로 읽으면 다르게 이해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또다시 읽고 다시 리뷰를 쓰게 된다면 분명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처럼 이 책은 몇 번이고 읽어야 할 책이고, 그때마다 독자들은 헤세라는 샘에서 맑은, 더 맑고 시원한 물을 길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