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소한의 문학 - 새로운 서사의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강영준 지음 / 두리반 / 2026년 2월
평점 :
최소한의 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소설로 읽는다.
그게 가능할까? 물론 역사소설로 얼마든지 우리나라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소설 말고 다른 장르의 소설로 그게 가능할까?
이 책은 바로 그런 궁금증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 책은 소설로 읽는 인문학이고 소설로 이해하는 한국사회다. (5쪽)
한국 사회라는 말에는 물론 역사도 포함이 된다.
즉, 시대별로 소설을 통해 당시 사회를 읽어보는 것이다.
어떤 시대, 어떤 작품이 있을까?
저자는 우리나라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 이후를 5개의 시대로 구분한다.
식민지 조선, 전쟁과 이념의 굴레 시대, 성장 시대, 모순의 시대, 경계없는 시대.
이에 대해 굳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어떤 시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각 시대별 작품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이에 대하여는 목차를 참고하면 될 것이니 그중 하나만 소개한다.
성장 시대 - 성장의 그늘, 공존을 향해
이호철 「닳아지는 살들」, 서정인 「후송」, 김승옥 「무진기행」
이청준 「소문의 벽」, 황석영 「삼포 가는 길」, 현기영 「순이삼촌」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이렇게 7 편이 소개되고 있다.
다른 4개의 시대 역시 각 6편 또는 7편씩 소개하여 이 책에는 모두 32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그 소설들 왜 쓴 것일까?
그렇다면 그 시대, 당대를 살아가던 작가들은 그 작품들을 왜 쓴 것일까?
단순히 그들이 작가라서, 글을 쓰는 게 직업이니 쓴 것은 아니다.
시대를 기록하고, 그 시대를 향하여 질문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작품을 분석한 다음에 각 작품마다 품고 있는 질문을 꺼내 보여준다.
채만식의 「치숙」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채만식의 「치숙」은 단순히 한 인간의 무기력이나 도덕적 실패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사회주의 이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지식인의 자기기만을 고발하는 동시에, 식민지 자본주의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형인 조카의 내면까지도 예리하게 비판한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타락한 사회적 존재이며, 결국 이념의 실천을 외면한 동일한 시대의 산물이다. (81쪽)
그리고 이어서 그 작품 안에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 노동의 존엄, 기후 정의, 교육의 평등 같은 가치를 누구나 말로는 지지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개인의 안위와 이익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여 그 가치를 실천하지 않는 모습도 흔하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시대지만, 그 발언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81-82쪽)
또 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에서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국가의 모습과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의무를 찾아내 보여준다. 더하여 그 작품이 현재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이삼촌」은 하나의 문학 작품을 넘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윤리적 질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쉽게 ‘국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죽게 내버려 두었는가.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도, 얼마나 자주 고통을 외면하고 침묵을 강요해 왔는가. 순이 삼촌의 이야기는 과거의 서사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를 기억하고, 지지하며, 책임지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200쪽)
그래서 작가는 시대의 증언자요, 질문하는 자다.
여기 이 책에 실린 32편의 작품, 읽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그전에 읽었던 그 때의 작품이 아닌 것이다. 완전히 다르게 읽혀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소설로도 읽었고, 넷플릭스를 통해 영상으로도 본 적이 있는 작품이다.
그때는 어떻게 읽고, 보았던가?
낯선 소재이지만 그저 재미로만 읽고 본 듯하다.
'어, 이런 소재가 뜻밖에 재미있는데,' 그래서 정세랑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뒤로도 몇 편의 작품을 읽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분석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현실과 판타지를 흥미롭게 결합한 경쾌하고 밝은 소설이다. (315쪽)
이 말은 나도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느낌은 여기까지였고 다음과 같은 분석은 나로 하여금 이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문턱이 낮아지자 오래 숨죽였던 이야기가 쏟아졌다.
경쾌하다고 해서 깊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도한 관념의 외피를 걷어내자 숨겨진 균열이 더 선명해졌다.
판타지, 코믹, 학원물이라는 가벼운 외양 안에 돌봄 노동, 성장통, 권력의 그늘을 담아낸다. (312쪽)
소설 속 젤리는 ‘억압된 자아’라는 개념을 시각화한 장치로, 감정과 욕망의 찌꺼기들이 자율적으로 형상화 되어 떠도는 존재다. (316쪽)
그리고 이런 결론,
이 소설은 영웅을 새롭게 상상한다. 대단한 능력이나 출신, 지위가 아닌 ‘보는 감각’과 ‘곁에 있는 자세’가 진짜 힘이라는 사실, 그것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누군가의 젤리를 보고 있는가? (320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소설을 단순한 소설로만 읽는다는 것은 ‘일차원적 읽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단순하게 줄거리 정도 파악하고, 그 시대를 문장으로 재현했다는 정도로 소설을 알고 있었던 무지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독서가 단순히 교양의 축적 정도가 아니라는 것,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각 작품마다 그 깊은 심연의 세계로 들어가 건져내어 보여주는 핵심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 또한 가져야 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르네 마그리트가 자신의 작품에 붙인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 제목처럼, 이제 나에게 ‘소설은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소설 너머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한다는 것, 이제야 알게 된다. 이런 깨달음, 이 책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