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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행복하게, 그러나 - 어떤 공주 이야기
연여름 외 지음 / 고블 / 2023년 12월
평점 :
영원히 행복하게, 그러나
세상에 널려 있는 게 공주다. 현실 말고 동화 속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주만 해도 여럿 된다. 백설공주, 엄지공주, 인어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겨울 왕국>에 나오는 안나 공주........하여튼 많다. 공주가.
그런데 그런 공주들을 한번 비틀어보면 어떨까?
그들을 현실로 모셔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 해본 적이 있는데, 여기 그런 생각을 해본 소설가들이 있다.
책 제목이 벌써 그것을 암시한다.
『영원히 행복하게, 그러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면 좋지, 거기에 왜 ‘그러나’가 붙는가?
힐난할 게 아니다. 그래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동화책 속에서나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야 어디 그런가?
여기 여섯편의 단편 작품이 있다.
스왈로우 탐정 사무소 사건 보고서
측백나무성의 라푼젤
변신
미혼모 백설의 기고
산맥공주
고들빼기 공주와 전설의 김칫독
각각의 작품에서 비틀어놓는 동화 속 인물은, 작품 순으로 이렇다.
엄지공주, 라푼젤, 신데렐라, 백설공주, 엄지공주,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중 읽고, 뭔가 느낌이 번쩍 하고 온 작품은 세 번째 작품인 <변신>이었다.
<변신>이 비틀어 놓은 동화는 <신데렐라>다.
모든 사람(여기에는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포함된다)이 은근히 품고 있는 신데렐라 되기.
이름하여 신데렐라 증후군.
현실에서 그게 과연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주인공은 신디. 재투성이 족이다. 재투성이라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신데렐라.
그러니 재투성이족이란 신데렐라 기질이 있다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게다.
그런 성향을 가진 신디는 재투성이 행성을 떠나 도피를 한지 84 생애주기째이다.
그러면서도 신데렐라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같이 지내고 있는 흰눈이의 입으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디.
“신디. 나가자. 야 너 또 <신데렐라> 보고 있었냐? 그만 좀 봐, 너 왕자가 나타나면 결혼이라도 하려고 해?” (110쪽)
“그러기에 내가 <신데렐라> 좀 작작 보라고 했지?” (114쪽)
이 작품 구성에 등장하는 장치들이 신데렐라 성향을 가진 인간의 알레고리라 생각하면 이 소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말, 특히 아직도 신데렐라 증후군에 머물러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공주들에게 보내는 일침이다. 들어보자.
“생각해봐, 신데렐라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잖아. 나는 이제 늙었으니, 신데렐라 속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된 거라고. 나는 다른 이야기로 건너갈래.”
“어떤 이야기?”
“아직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가 좋겠어. 나이 든 할머니가 아주아주 억세게 행복해지고 왕자 따위는 코빼기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로 말이야.” (123쪽)
이 작품에서 저자가 묘사하는 지구인 모습, 한편으로는 우습지만 그 날카로움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지구인들은 생식 욕구를 탕으로 끓여서는, 인정욕구와 자아실현과 신성에 대한 욕망이라는 고명으로 장식한 다음, 외모지상주의를 조미료로 뿌린 뒤 여성혐오와 동성애 혐오라는 그릇에다가 퍼담는다. (102쪽)
지구인들이 펼치는 로맨스를 그렇게 묘사한다. 그러니 들어갈 것은 모두 들어간, 그야말로 짬뽕 같은 것이다. 그러니 맛이 없을 리 있나? 그렇게 해서 다음 회를 보게 만들고, 60초후에 만나자고 해도 군말없이 광고를 보면서 인내하는 것이다.
그런 지구 모습, 그래서 이런 말은 들어도 싸다.
지구인들은 고통을 좋아하잖아요. 전쟁, 학살, 고문 (..........) ....지구인들은 항상 고통을 찾아 헤맨답니다. 주로 남의 고통을, 그러다가 종종 자기 고통을요. (107-108쪽)
다시, 이 책은?
신데렐라 공주를 빙자한 유쾌한 세태 비틀기, 작가는 성공했다.
신데렐라 되기를 은근히 바라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지구인들, 아주 통쾌하게 한방 먹였다. 잘 했다.
그 작품 읽으면, 물론 다른 작품들, 모두 소설 읽는 맛이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땅의 모든 공주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공주가 아니라면? 그래도 읽어야 한다.
혹시 모를, 잠복해 있을지도 모를 공주 증후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