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증언 - 소설로 읽는 분단의 역사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0
이병수 외 지음, 통일인문학연구단 기획 / 씽크스마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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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 민족은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경험과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안에는 성장을 위한 아픔도 있겠지만, 굳이 경험하지 않았어도 되는 아픔도 상당하다.

특히 우리의 근. 현대사를 보자면 생각보다 많은 숫자들을 만날 수 있다.

3.1, 6.10, 4.3, 6.25, 4.19, 5.18, 12.12.....

이 책을 접하며 나의 학창시절 한국사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당시 고3에 닥쳐 한국사를 몰아서 배웠기에 시험을 위해 외웠던 숫자들 속에서 그 숫자 속에 얽힌 실제 이야기를 이해하기 보다 당장의 순서나 키포인트만을 잡아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왜 이 숫자 속 날짜에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조금씩 이슈화되는 날짜는 후에라도 어렴풋하게 알아가지만, 정말 이름만 알고 있는 사건들(여순사건, 제주 4.3사건 등)은 내가 찾아보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기억과 증언이라는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우리의 근. 현대사를 다룬 "소설집"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우리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인지라(태백산맥과 같은), 그런 책 들 중 하나라는 내 생각과 달리 역사 소설들을 통해 실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실제 역사를 설명해 주는) 해설집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과거 읽었던 태백산맥(빨치산, 여순사건)을 비롯하여 순이삼촌(제주 4.3. 사건)이나 곡두 운동회(6.25전쟁), 아우와의 만남(1983년 이산가족) 등 우리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룬 소설들을 통해 실제 우리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털어놓는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사건이 이런 이야기였어?'였다. 이름만 알았지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 일을 통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아무런 지식이 없던지라 읽으면서 무척 놀라웠다. 또한 나도 모르게 진실보다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왜곡된 지식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가령,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 혹은 "종북"에 대한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실제 빨치산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나처럼 처음의 이미지가 시대를 거치고, 이념이 합쳐지면서 더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화되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여순사건이나 제주 4.3 사건 또한 그랬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여순 "반란" 사건으로 불렸던 사건의 시작은 제주도민들을 토벌하라는 군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좌익계열 군인들에 의해서라는 사실이었다. 또한 제주 4.3 사건의 시작은 기마경찰의 말에 의해 아이가 치이는 일이 일어나고,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도민들에게 발포를 한 경찰의 잘못에서부터 였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모든 사건에서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기마경찰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동포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민족을 생각하고 국민들을 생각하는 결정을 내렸다면 이럼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필요가 있었을까?

소설 속 이야기들의 실제 모습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의 대립이 극도로 치닫고 있다. 세대 간 갈등도 갈등을 넘어 혐오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남의 이익보다는 내 이익이 우선이고, 내가 피해 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근데 우리의 과거 이야기 속에서 내가 본 것은 타인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나의 시간을 더하고, 힘을 더하고, 내 희생을 같이하는 장면들이었다. 놀라웠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그 시절의 사람들은 때론 역사의 심판으로 폭도가 되고, 왜곡되고 부정적인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들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 말이다. 덕분에 역사를, 진실을 다시금 알아갈 기회가 된 것 같다.

여전히 현대사는 진행 중이다. 후에 다음 세대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릴까?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해졌다.

그렇기에 분단의 역사는 영토의 분단에서 국가의 분단, 민족의 분단,

그리고 남남갈등으로 확신되는 과정으로서 '분단시대의 역사'로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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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누구? - 협동 네 생각은 어때? 하브루타 생각 동화
글빛마을 지음, 김세영 그림, 전성수 감수 / 브레멘플러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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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요즘은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느낌이지만), 겨울과 봄의 계절 차와 기온차 그리고 기분 차가 있다. 황량하고 추운 겨울을 잘 지내고 나면 어느새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과 봄꽃들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요즘은 벚꽃을 비롯한 봄꽃이 활짝 피는 계절임에도 코로나19 덕분에 꽃구경은 물론 바깥 구경도 쉽지 않은 때지만 그럼에도 봄은 봄이라서 창밖을 보고만 있어도 봄 기분이 새록새록 난다.

누구야, 누구? 속의 동물 친구들 역시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다.

개구리도, 곰도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따뜻한 봄에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긴 겨울잠을 자기 시작한다. 바깥의 봄기운을 느낀 아기 곰은 긴 겨울잠을 깨고 밖으로 나온다. 겨울잠을 자기 전에 약속했듯이 친구들과 놀던 꽃놀이 테로 돌아간다. 겨울 동안 폐허가 된 놀이터를 보며 곰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친구들이 깨기 전에 얼른 놀이터도 치우고, 땅도 일구고 씨앗도 심어야겠다는 생각에 곰은 부랴부랴 몸을 움직인다. '깨끗한 놀이터를 보면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곰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청소도구를 챙겨 돌아온다.

 

근데... 놀이터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 누가 청소를 한 거지? 궁금증을 뒤로하고 아기곰은 땅을 일굴 삽을 가지로 집으로 간다. 삽을 챙겨서 돌아온 아기곰은 일구어져 있는 밭을 발견한다. 누가 밭을 일군 거지??

한발 늦은 아기곰의 행동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며 아기 곰보다 먼저 움직인 친구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여기저기 숨은 그림 찾기처럼 미리 행동에 옮긴 친구를 발견할 수 있는 힌트가 등장하기 때문에 함께 찾아보며 동물 친구들을 맞춰보면 책 읽는 재미가 배가 될 것 같다.

힘든 일은 서로 미루기만 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동물 친구들은 다른 친구를 위해 먼저 행동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한발 늦긴 했지만, 아기곰 역시 일어나자마자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모두가 행복한 봄날을 즐길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은 힘들지만, 친구들과 함께 도우며 아름다운 꽃 놀이터를 가꾸어나가는 모습을 통해 아이 또한 친구와 협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글 밥이 많지 않으면서 다채로운 색상에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봄 분위기를 가득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함께 들어있는 생각 카드를 통해 아이와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표현하는 방법 또한 배울 수 있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나,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에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카드 4장 끝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기에, 고리로 연결하니 보관하기 참 편리하다. 또한 질문이 나오는 부분(달팽이 그림)이 등장하면, 아이에게 카드를 직접 찾을 수 있도록 하니 더 집중해서 책을 보게 되는 것 같아서 더욱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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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의 사회학 - 남자를 지배하는 ‘남자라는 생각’
필 바커 지음, 장영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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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3번만 울어야 한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서도 안되고, 참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겠지만 상당히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안에도 이런 남성적, 여성적에 대한 고정관념이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얼마 전 봤던 두 가지의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하나는 "하이 바이 마마"라는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 드라마의 서우라는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의 성별에 관한 것이다. 극 중 차유리(김태희 배우)의 딸로 등장하는 아이가 실제로는 남자아이였다는... 근데 아이의 엄마가 남긴 글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아이에 대한 주위의 걱정이 스트레스라고 말이다. 성 정체성 문제부터, 남자아이를 여자아이처럼 키우는 건 아니다 같은 류의 이야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글이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남자아이인데 치마를 좋아해서, 치마를 하나 사줬다고 한다. 예쁘게 잘 어울려서 카톡 배경사진으로 올렸는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여기저기서 전화도 오고 70세 친척 한 분은 혼을 내셨다고 한다. 왜 남자아이에게 치마를 입히느냐고 말이다.

과연 남자다움, 여자다움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일까?

Y 염색체가 파란색, 자동차, 바지,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하고, X 염색체는 핑크색, 인형, 치마, 조용히 노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냐는 물음에 저자는 아직 그런 연구결과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우리가 늘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라고 불문율에 가깝게 이야기하는 그 사실 또한 참 아이러니 한 점이 있다.

1940년대 이전에는 핑크색은 활발한 색이라서 남자의 색, 파란색은 차분한 색이라서 여자의 색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남자라면~ 혹은 여자라면~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닌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간 이미지일 것이다. 단지 색이나 옷뿐 아니라 자신의 성향에 따른 구분이 아닌 사회가 주어진 구분이 우리의 정체성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문제는 그 모든 모습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향한 위해와 부정적 시선, 소외 등에 있다. 그렇게 받은 스트레스가 반대적 급부의 부정적 표현(가령 성폭력, 여성 혐오, 가정폭력 등)들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 표현들 또한 남성적인 모습으로 포장되기까지 이르게 된다.

이 책은 맨 박스에 갇혀 부정적 남성성을 마치 진정한 남자의 모습이라 착각하는 현대 우리 사회의 모습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결코 남성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왜 그럴까?'

라는 생각에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나 또한 내 아이에게 그런 성별적 모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내 모습이 훗날 아이에게 영향을 미쳐 그릇된 성별관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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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순정 -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
이영희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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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추억을 소환하는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 같다. 70-80세대의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자신들만의 추억을 향유하는 세대를 보며 내심 부러웠는데, 요즘은 90-00세대들을 위한 탑골 가요 등의 옛 추억거리나, 장난감 등을 보면서 세대 안에 동질감도 추억도 되새기게 되는 것 같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물건들을 볼 때면, 한때의 기억과 더불어 그만의 감성을 채우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어린 시절 내 모습과 친구들을 강제 소환하기도... ㅎ

개인적으로 나는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동생이 윙크 등의 만화잡지를 잘 찾아서 봤던 것 같다. 물론 나도 가끔 얹어서 보긴 했지만...;;; 저자가 이 책에 등장시킨 만화의 발행연도를 보니, 사실 모를 수밖에 없는 것들도 상당수 있긴 하다.(90년대 초반 작들은 아마도 대부분... ㅠ) "순정만화"라는 장르에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라면 책보다는 만화로 많이 경험한 작품들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베르사유의 장미나 비밀의 화원 같은 작품처럼 말이다. 내 머릿속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은 예쁘고 잘생기고(미소녀. 미소년들) 눈이 크고 초롱초롱하고 오뚝한 콧날을 자랑하는 인물들이다. 하나같이 늘씬하기도 하고, 멋진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생각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만화 중 제목을 들어본 작품이 2개(인어공주를 위하여, 오디션) 뿐인지라, 저자의 설명과 만화를 보며 오히려 순정만화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된 것 같다. 나 역시 순정만화하면 조금은 뻔한 신파의 이야기들(청순가련한 여주인공, 눈물 등)만 떠올랐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순정만화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고(때론 파격적이기도 한), 선명한 주제도 들어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름의 지식적 요소들(우리나라 만화임에도, 작품에 등장하는 시대가 프랑스혁명, 페르시아제국 시기 등)이 상당히 내포되어 있다는 것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만화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들을 무참히 깨 부실 수 있었는데... 어른들은 왜들 그러셨을까?ㅠ)

생은 때로는 격한 투쟁, 또한 때로는 잔인한 전쟁.

외길을 걷는 인간은 미래를 모른다.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때로 그 의미가 처절한 슬픔을 내포한다 해도.

지금에서야 순정만화를 통해 한결 성숙한 생각을 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처럼 그 당시에 봤을 때의 느낌과 나이가 들어서 본 순정만화의 느낌은 많이 다를 것 같다. 보다 많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사회 속에서 떼가 묻기도 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당시의 감성을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되기도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보지 못한 순정만화가 대부분이기에, 정독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해봤다. 특히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만화는 꼭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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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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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자연이라는 두 단어를 접했을 때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내 삶에서 가장 오래 우울했던 기억 말이다. 혼자 생각이라는 것을 깊이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집 밖을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꽤 오래 준비했던 시험을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망가질 때로 망가진 마음과 몸을 가지고 뭔가를 시도조차 못한 채 방문을 닫고 오랜 기간 들어가 있었다. 안쓰러웠던 엄마는 몇 번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 엄마는 그렇게 집안에만 있지 말고, 집 밖으로 나가서 공기도 쐬고, 꽃이나 나무도 보고 하면서 기분을 전환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저 그냥 집 안에 있고 싶었다.(지금 생각하면 엄마 입장에서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했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그때 나는 경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그 말이 효과가 있다는 것은 회사 다니면서 경험했다. 스트레스가 한 번씩 머리를 짓누를 때면 습관적으로 공원, 산, 식물원이나 동물원 같은 곳으로 무작정 떠났던 것 같다. 그저 한 바퀴 돌면서 흙도 밟고, 나무와 꽃을 보면서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

저자인 에마 미첼은 박물학자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25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현재도 이어지는 우울증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숲과 정원을 거니는 삼림욕이었다.

날마다 숲속을 산책하는 일은 내게 그 어떤 상담 치료나 의약품 못지않은 치유 효과가 있다.

이 책에는 각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식물(혹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저자가 자연을 거닐며 만난 치료제이자 친구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아니다. 길을 나서다 만난 버들강아지나 앵초, 찌르레기 떼나 개암나무 새잎 등에 대한 계절에 변화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자연을 이야기한다.

저자 역시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날이 더워지면 야외활동이 힘들고, 추워지면 또 추워지는 대로 쉽지 않다. 그리고 우울증은 그런 저자에게 어쩌면 바깥활동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연의 변화를 목격하는 것을 마치 오늘의 할 일이라 느낀다. 트위터를 통해 가까운 곳에 반딧불이 떼가 목격되었다는 이야기에 친구와 함께 나가기도 하고,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슈퍼마켓에 쇼핑하러 가는 길에 꽃망울들을 보고 반가움에 눈물이 솟기도 한다.

무엇인가 행동하는 것조차 너무 힘든 상황임에도 저자는 자연이 주는 위로를 놓치지 않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자연은 그런 저자에게 수고의 보답이라도 하듯 여러 형태의 모습을 선물한다. 무엇이 있겠구나!라는 것을 알고 나가는 것도 좋지만, 예상치 못한 선물이나 인연이 배의 감동을 주는 것처럼 자연은 저자에게 그런 선물이 된다. 1년 12개월 자연은 날씨에 맞게 다양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자연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자연을 벗하며 사는 삶의 중요성을 참 많이 이야기했다.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준비한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가꾸지 않았지만 눈인사를 건네는 자연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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