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숨결
박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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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굳이 따지자면...... 진실 편이지."

현직 의사가 쓴 메디컬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아무래도 전문가의 입장에서 쓴 책인지라 실제적인 지식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욱 증폭되었다.

사실 나는 병원 공포증이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병원에 가는 게 참 무섭고 두렵다.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이나, 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을 때도 혹시나 드라마에서 보는 피 튀기는(?) 응급실 풍경이 벌어질까 봐 늘 노심초사다. 근데 이상한 것은, 메디컬 소설류는 좋아한다. 아마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상상의 수위를 조절해서가 아닐까?;;

레지던트 1년 차 외과의 이현우. 눈치가 없어서 문제인 그지만 환자들에게는 따뜻한 의사다. 그런 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어느 날 실려온 환자.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드는 그 환자 한수아. 급성 충수염(맹장염) 수술을 마친 어느 날, 갑작스러운 콜이 온다. 이성을 잃고 엄마와 싸우는 수아에게 결국 안정제를 주사하는 현우.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깨어난 수아를 찾아가는 현우에게 수아는 5개월 전 이 병원에서 숨진 아빠 한재훈의 죽음에 얽힌 의문점을 이야기한다. 엄마와의 부부 싸움뿐 아니라, 아빠가 숨지고 얼마 안 돼 담당의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엄마의 모습 등을 통해 수아는 엄마가 아빠를 살해했다고 의심한다. 수아의 얘기를 듣고 역시 의심을 품은 현우는 사망한 한재훈의 기록을 열람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사망 당시 주치의가 자신이 좋아하는 선배 강나리였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고민에 빠진다.

근데 의문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수아의 아빠뿐 아니라 현우의 환자였던 황기영, 강나리의 환자였던 슬기에 이르기까지 사망을 하자 현우는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사망 전 차트를 열어보다 세 명의 죽음 사이에 칼륨(혹은 나트륨)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이들의 죽음과 병원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검은 손의 정체는 누구일까?

시간을 확인한 현우는 재빨리 8병동으로 향했다.

늦지만 않으면 수아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을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수아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어느 직장이나, 갑질을 하는 상사는 있기 마련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부교수 김태주와 레지던트 이현우의 관계 역시 그렇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상대에게 잘못을 전가시키는 악질 정도로 그치면 좋겠지만 김태주는 의사로는 물론, 인간으로도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사실 현우를 보며 마냥 안타까웠다.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을 파헤칠수록 병원에서 내쳐지고, 주변의 손가락질과 욕설, 인격모독 등을 당한다. 단지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은 한 사람의 의문을 자신의 전문성을 토대로 알려줘야겠다는 사실 말고는 다른 의도가 없는데 말이다. 오히려 진실을 이야기하자, 그에게 돌아온 것은 냉대와 괴롭힘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현우가 수아에게 품고 있는 마음이 그저 환자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가 처음 수아의 의문에 답을 했던 것은 의사로서의 양심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추리소설이기에 트릭도 있고 반전도 있다. (이번에도 나는 범인을 못 맞췄다ㅠㅠㅠ) 복선도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가며, 추리해가며 읽으면 한층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의 저자가 의사라는 사실이 생각지 못한 반전의 열쇠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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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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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늘이 무너질 일 같은 건 없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해.

이 책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전 작인 "죽음" 홍보 차 내한 때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작가는 죽음의 후속작으로 전생과 최면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베르베르 작가의 책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타 차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서 그런지 사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특이한 성격의 이야기를 개연성 있게 만들어가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기에 내심 차기 작은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32살의 역사교사인 르네 톨레다노는 우연히 판도라의 상자라는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최면을 통해 전생을 경험하는 대상자가 된다. 사실 반신반의하기도 하고, 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함께 간 직장동료 엘로디 때문에 억지로 참여하게 된다. 진행자 오팔에 의해 최면의 심층 기억으로 들어가는 르네. 르네는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기억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고, 그 기억이 자신의 109번째 전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때는 1917년 4월 16일. 그는 이폴리트 펠리시에라는 이름을 가진 상병으로 프랑스 군이다. 지금은 독일과의 전쟁 중이고, 장군인 니벨은 독일군으로부터 승리를 쟁취할 거라 믿는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행태가 벌어지게 되고, 이폴리트를 제외한 부대원은 다 죽음을 맞는다. 이폴리트는 살기 위해 위로 올라가다가 독일군이 판 참호를 발견하게 되고, 참호에서 격투 끝에 독일군 여러 명을 사살하지만 오른쪽 눈의 부상을 입고 강제로 최면을 종료하게 된다.

너무나 생생한 기억을 안고 밖으로 뛰쳐나온 르네는 독일 나치의 문양을 가진 스킨헤드 청년과 맞닥뜨리고 그가 휘두른 칼에 손등을 다친다. 결국 그와의 몸싸움 끝에 그를 죽이고 살인자가 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자수를 위해 경찰서로 향하지만 자수를 하지 못하는 르네는 자신의 전생 기억에 사로잡혀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엘로디의 조언에 따라 자신에게 그런 기억을 선사한 오팔의 공연장으로 향한다. 오팔에게 다시금 최면을 요구하는 르네. 하지만 오팔을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협박의 가까운 발언을 통해 자신의 긍정적인 심층 기억 속으로 향하는 르네는 죽음을 앞둔 백작부인 레옹틴, 드레파나 해전 중 배에 묶인 제노의 기억 속으로 향한다.

 

이번에 쾌감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경우에 따라서 그것은 고통의 중단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건요.

고통이 강할수록 그것이 멎을 때의 쾌감은 크기 마련이니까요.

오래 불편함이 지속되고 난 뒤에 찾아오는 쾌감은 아무리 소박할지라도 

희열의 순간을 선사하죠.

 

르네는 자신의 전생의 기억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기억의 경험이 많아지는 만큼, 그들의 삶에서 직접 접할 수 있는 것들 또한 늘어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생체험에 묘미를 알게 된 르네는 오팔에게 "운명적 사랑"의 기억으로 인도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첫 번째 생이었고, 게브라는 남자였다. 놀라운 것은 게브는 르네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동안의 전생들은 르네의 존재에 대해 무서움을 느꼈다.) 기억 속으로의 여행을 통해 르네는 게브가 살던 곳이 전설 속 섬인 아틀란티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역사교사이기에 꿈의 섬 아틀란티스가 사라진 이유가 대홍수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 르네는 과연 심층 기억을 통해 섬과 주민들을 구할 수 있을까?

역시 소설 곳곳에 베르나르 베르베르만의 색이 돋보인다. 이번에도 그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뿜어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전생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르네와 그의 전생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는 무엇인가가 과거 내 경험의 산물일 수 있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물론 내 무의식 속에 들어있는 기억일 테지만... 전생과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인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또 다른 맛의 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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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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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내 모습에는 뭄바이 거리를 쏘다니는 소녀가 남아있지.

나는 금지된 것에 맞서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

"그렇게 힘드셨어요?"

"힘들었지. 다르다고 느껴질 때는 항상."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 클로이는 조금 특별하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참여했던 그녀는 결승선을 앞두고 폭탄 테러로 두 다리의 40cm를 잃고 더 이상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밝고 적극적이던 클로이지만 사고는 그녀에게 몸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어냈다. 배우라는 직업이 성우로 변하였고, 직접 다니기보다는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밖을 구경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에 대해 곱씹는 버릇까지도...

클로이가 사는 아파트 역시 좀 특별하다.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다. 호출을 하면 승강기 승무원이 수동으로 엘리베이터를 호출한 층으로 올려준다. 낮 근무자인 디팍과 야간 근무자인 리베라 씨에 의해 일상의 불편을 덜 느끼며 살고 있던 어느 날, 야간 근무자 리베라 씨가 계단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고 다리 골절을 당하게 된다.

한편,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산지. 그는 인도의 꽤 규모 있는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젊은이로 디팍의 아내 랄리의 조카다. 산지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호텔의 1/3에 달하는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욕심 많은 삼촌들 덕분에 현금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산지는 친구와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사업을 구상하지만 자금이 모자라고, 미국에 살고 있는 고모 랄리를 통해 초대장을 받고 출자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디팍의 아파트에 갔다가 클로이를 마주하게 된다.

리베라의 부상으로 야간 엘리베이터 운행에 차질이 생기자, 아파트 회계사 그룸랫은 수동 엘리베이터를 없애고(당연히 디팍과 리베라는 해고될 것이다.) 2년 전 구매해 놓은 자동 엘리베이터를 들여놓고자 수를 쓴다. 물론 8명의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에 그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회의에서 상당수가 자동 엘리베이터 의견에 찬성한다. 다행히 이 사태 앞에서 랄리는 리베라를 대신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자신의 조카인 산지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고, 산지는 고민 끝에 그 제안을 수락하는데...

과연 산지는 처음 하는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직을 사고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클로이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 읽게 되었다. 근데, 제목이 클로이지만 그 이면에 담긴 디팍과 랄리의 삶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인도 잘나가는 집안의 딸이었던 랄리. 유망한 크리켓 선수였던 디팍. 그런 그와 그녀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생면부지의 땅에서 디팍은 수동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며 새로운 꿈을 꾼다. 바로 난다네비산의 3천 배 거리를 수직이동하겠다는 꿈 말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일개 잡부라고 생각하고 온갖 굳은 일을 시키는 사람들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꿈을 위해 전진한다. 그런 그의 앞에 자동 엘리베이터로의 변화는 단지 일자리 그 이상의 상실을 의미한다. 물론 디팍의 성실함에 대해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과묵한 그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든 삶을 알지만 절대 입 밖의 꺼내지 않는다. 디팍에 대한 기억은 클로이에게도 깊이 남아있다.

테러 후 다리를 절단하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온 첫날. 디팍은 언제나 다름없이 클로이를 맞아준다.

"아까 로비에서 휠체어를 밀어준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미스 클로이는 내 도움도,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아요.

어서 들어가요. 내가 해줄 게 없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따뜻하고 다분히 일상적이다. 물론 인도의 부유한(금수저급?) 상속자인 산지가 고모 랄리의 이야기를 듣고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이 되는 이야기는 좀 놀랍긴 하지만 말이다. 중간중간 펼쳐지는 클로이의 일기들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문득 자신의 다리를 보면 다시금 좌절을 느끼고 또 우울해지는 클로이. 자신을 위해 주변 사람들이 희생하는 것이 너무 싫고, 자신의 사고에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는 줄리어스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 속에 흐르는 편견이라는 두 단어를 지나칠 수 없다. 인도에 대한 우리가 가진 편견들. 장애인을 향한 편견들. 그리고 직업에 대한 편견에 이르기까지...

차분하게 읽다 보면 그들의 일상에 빠져들어 그들이 편견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고 내가 등장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할지 대입하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물론! 사랑 이야기는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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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 서가명강 시리즈 10
이효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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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전공의 반 이상이 법학과목이었다. 덕분에 법학은 어렵지만, 조금은 익숙해지는 분야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니 민사나 상법 외에는 직접적으로 법전을 찾아봐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한참을 담을 쌓고 살다 한 번씩 헌법소원 관련 기사가 등장할 때나 만나게 된 헌법.

법 중 가장 상위법이라 하는 헌법이지만, 실제 우리 삶에는 그리 관련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런 헌법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 걸까? 저자는 도입부의 이야기를 통해 헌법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 헌법이라는 잣대로 살펴봐야 할까?

헌법은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과 비전을 담고 있다.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철학 하듯이 인공적인 인격체인 국가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할 것인지를 고민해 규범으로 체계화한 것이 헌법이다.

행복한 국가의 미래상이 헌법인 것이다.

헌법과 행복이 관련이 있다니? 사실 마지막 한 줄이 너무 궁금했다.

저자는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3가지의 큰 틀에서의 헌법을 이야기한다.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의 그 한 문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한 줄의 구체적이고 실제적 의미를 모를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헌법 속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가명강 시리즈 자체가 전공자가 아닌 비전공자를 위해 쓰인 책인지라,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역시 헌법을 알기 위해 알아야 할 국가 발생의 역사를 비롯하여 국가의 3요소(아직도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국민. 영토. 주권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신기하다.)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인과 졸렌이라는 이원적 분석 개념(자인은 사실판단의 근거, 졸렌은 법 해석을 통한 가치판단의 근거다)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저자의 그 한 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사실 그 한 줄을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쓴 것 같다. 헌법이 수호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그 의미 말이다. 우리의 헌법은 여러 차례 개정을 겪었고, 그 개정에는 여러 가지 이해집단의 욕심과 논리가 섞여있긴 했지만, 그 기본적 가치는 여전히 문장으로 수호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연 헌법에 문장화된 권리와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많은 성장이 있어왔지만 아직은 아쉬운 상태다. 여전히 국가의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경우를 우리는 여전히 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을 통해 국가도 국민도 헌법의 테두리 안(법치국가)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통제를 누려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법 안에서 국가권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이 잘 만들어져야 하고 그 안에서 집행과 해석, 적용이 잘되어 하는 것은 기본이며, 법과 현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양립이 필요하다.

참고로 자유와 평등의 개념 정의는 꼭 필요하다. 특히 평등에 대해서 곡해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여기서의 평등은 특정한 측면에서의 차별 금지를 말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취급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정의한다. (평등과 자유의 개념은 3장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마지막 4장에서는 우리 헌법에도 명시된 통일국가에 대한 강한 바람이 담겨있다. 지구촌 내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민족의 앞으로 나아갈 통일의 방향에는 "평화"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가치는 헌법에서 정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 4장의 이야기는 미래의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인류 전체의 개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평화라는 개념이 가진 포괄성 덕분이다.

우리의 헌법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이 법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팍팍하고, 국가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침해당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해 나가고 있는 과도기에 있으며, 언젠가 민주주의가 완성된 때(혹은 지금보다 더 민주주의가 이룩된 때)에 우리의 헌법과 실제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행복한 국가의 미래상이 헌법이라는 저자의 말은 사실이다. 헌법을 구성하는 조항들을 이루어나가다 보면 국민의 나아가 국가의 행복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그런 행복한 헌법을 가져서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행복한) 헌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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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네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마을 34
박현숙 지음, 박성은 그림 / 책고래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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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깊지도, 좋지도 않다.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 집은 거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우리 집은 늘 친가에만 갔고, 외갓집에는 매년 외할아버지 생신 때 한 번 갔던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갓집은 워낙 시골인데다 비포장도로기도 했고, 그 흔한 가로등조차 없었기에 해만 떨어지면 암흑으로 바뀌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보는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나와 그리 친밀하지 않았다. 막내딸인 엄마의 딸인 나와 외할머니의 나이 차이도 왠지 모를 거리감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외할머니네라는 그림책 속 상황은 나 또한 경험해봤다. 물론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내 머릿속 기억보다는 엄마나 고모의 이야기를 통해 구성된 기억일 테지만 말이다. 나 역시 3살 되던 해 동생이 태어났다. 당시 동네에서 작은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 입장에서 아이 둘을 케어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셨기에, 큰 아이였던 나는 시골에 계신 친할아버지 댁에 한 달 정도 맡겨졌다. 이곳저곳 다니며 사고도 많이 치고, 한 살 어린 사촌동생에게 말을 가르쳐주기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가 많다고 할아버지가 바가지를 대고 내 머리를 잘라줬다는 일화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당시 사진은 없지만, 한 달 만에 나를 데리러 가신 엄마는 내 모습을 보고 서울로 데리고 오며 한참 울었다고 한다. 딸인데, 바가지로 잘라놓은 머리를 보고 말이다.)

책 속 수영이 역시 동생이 태어난 뒤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외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내려간다. 할머니 집에 간 첫날 많은 것이 다르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외할머니 집에서 커다란 나무 대야에서 목욕을 하고, 할머니가 준 초코우유를 먹으면서 오히려 즐겁기도 하다. 많은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기에 수영이 입장에서는 지루할 새도, 엄마가 그리울 새도 없다. 하지만 수영이에게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엄마소와 떨어져 팔려가는 아기 송아지들을 봤기 때문이다. 눈물이 그렁그렁 한 송아지들의 눈을 보자마자 수영이 또한 엄마가 생각난다. 송아지처럼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모기장 안에 누워서도, 무엇을 먹을 때도 수영이는 엄마 생각이 난다. 급기야 수영이가 병이 나고 만다. 엄마가 그리워 엄마를 부르며 3일을 앓아누운 것이다.

과연 수영이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수영이의 입장으로 책을 봤다. 동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건 맞지만, 수영이도 엄마 곁에 있고 싶을 텐데 엄마에게서 떨어져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수영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보내는 엄마가 밉고, 그리울 것 같다. 처음에야 이런저런 달라진 풍경에 마음을 쏟아 엄마 생각이 안 나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라고 하지 않나? 얼마나 지나야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상황이 아이로 하여금 그리움의 병이 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며칠 후 다시 읽어본 책에서 이번에는 엄마의 마음이 읽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엄마 입장에서는 오히려 엄마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지내는 수영이가 눈에 밟혔을 것이다. 내 품에 안고 있는 작은 아이는 내 눈으로 보지만, 눈에 안 보이는 수영이는 가슴에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친정엄마에게 맡긴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를 떨어뜨려놓은 엄마 마음은 슬프고 미어질 것이다. 수영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단숨에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아직 신생아인 작은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고 갈 수 있을까? 괜히 내 몸 편하자고 아이 보내서 아이가 병이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내가 힘들어도 둘 다 내가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여 수영이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짧은 그림책이지만 행간에 가득한 감정선들을 짚어가며 읽다 보니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하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었나 보다. 말썽 부리고, 투정 부릴 때면 떼어놓고 싶다가도 돌아서면 아이가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얼마 전 출산 후 처음으로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동생이랑 반나절 바람을 쐬고 온 적이 있다. 오랜만에 자유라고 생각해서 마음껏 놀아야지 싶었는데, 가는 곳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풍경, 동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이 생각이 가득해졌다. '우리 **이가 좋아하는 동물이네! 우리 **이가 봤으면 신나했겠다.' 옆에 있던 동생이 잔소리를 한 움큼 던졌다. 오늘만큼은 **이 생각 하지 말라고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도 아빠도 다른 차원으로 이사를 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자연히 무엇을 보고 먹어도 아이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면...

아직은 엄마 손길이 그리운 아이 수영이와 외할머니의 짧은 동거기. 그 속에 가득한 엄마와 수영이의 사랑을 보며 나 또한 책 속 엄마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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