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네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마을 34
박현숙 지음, 박성은 그림 / 책고래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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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깊지도, 좋지도 않다.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 집은 거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우리 집은 늘 친가에만 갔고, 외갓집에는 매년 외할아버지 생신 때 한 번 갔던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갓집은 워낙 시골인데다 비포장도로기도 했고, 그 흔한 가로등조차 없었기에 해만 떨어지면 암흑으로 바뀌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보는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나와 그리 친밀하지 않았다. 막내딸인 엄마의 딸인 나와 외할머니의 나이 차이도 왠지 모를 거리감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외할머니네라는 그림책 속 상황은 나 또한 경험해봤다. 물론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내 머릿속 기억보다는 엄마나 고모의 이야기를 통해 구성된 기억일 테지만 말이다. 나 역시 3살 되던 해 동생이 태어났다. 당시 동네에서 작은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 입장에서 아이 둘을 케어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셨기에, 큰 아이였던 나는 시골에 계신 친할아버지 댁에 한 달 정도 맡겨졌다. 이곳저곳 다니며 사고도 많이 치고, 한 살 어린 사촌동생에게 말을 가르쳐주기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가 많다고 할아버지가 바가지를 대고 내 머리를 잘라줬다는 일화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당시 사진은 없지만, 한 달 만에 나를 데리러 가신 엄마는 내 모습을 보고 서울로 데리고 오며 한참 울었다고 한다. 딸인데, 바가지로 잘라놓은 머리를 보고 말이다.)

책 속 수영이 역시 동생이 태어난 뒤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외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내려간다. 할머니 집에 간 첫날 많은 것이 다르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외할머니 집에서 커다란 나무 대야에서 목욕을 하고, 할머니가 준 초코우유를 먹으면서 오히려 즐겁기도 하다. 많은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기에 수영이 입장에서는 지루할 새도, 엄마가 그리울 새도 없다. 하지만 수영이에게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엄마소와 떨어져 팔려가는 아기 송아지들을 봤기 때문이다. 눈물이 그렁그렁 한 송아지들의 눈을 보자마자 수영이 또한 엄마가 생각난다. 송아지처럼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모기장 안에 누워서도, 무엇을 먹을 때도 수영이는 엄마 생각이 난다. 급기야 수영이가 병이 나고 만다. 엄마가 그리워 엄마를 부르며 3일을 앓아누운 것이다.

과연 수영이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수영이의 입장으로 책을 봤다. 동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건 맞지만, 수영이도 엄마 곁에 있고 싶을 텐데 엄마에게서 떨어져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수영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보내는 엄마가 밉고, 그리울 것 같다. 처음에야 이런저런 달라진 풍경에 마음을 쏟아 엄마 생각이 안 나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라고 하지 않나? 얼마나 지나야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상황이 아이로 하여금 그리움의 병이 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며칠 후 다시 읽어본 책에서 이번에는 엄마의 마음이 읽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엄마 입장에서는 오히려 엄마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지내는 수영이가 눈에 밟혔을 것이다. 내 품에 안고 있는 작은 아이는 내 눈으로 보지만, 눈에 안 보이는 수영이는 가슴에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친정엄마에게 맡긴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를 떨어뜨려놓은 엄마 마음은 슬프고 미어질 것이다. 수영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단숨에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아직 신생아인 작은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고 갈 수 있을까? 괜히 내 몸 편하자고 아이 보내서 아이가 병이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내가 힘들어도 둘 다 내가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여 수영이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짧은 그림책이지만 행간에 가득한 감정선들을 짚어가며 읽다 보니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하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었나 보다. 말썽 부리고, 투정 부릴 때면 떼어놓고 싶다가도 돌아서면 아이가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얼마 전 출산 후 처음으로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동생이랑 반나절 바람을 쐬고 온 적이 있다. 오랜만에 자유라고 생각해서 마음껏 놀아야지 싶었는데, 가는 곳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풍경, 동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이 생각이 가득해졌다. '우리 **이가 좋아하는 동물이네! 우리 **이가 봤으면 신나했겠다.' 옆에 있던 동생이 잔소리를 한 움큼 던졌다. 오늘만큼은 **이 생각 하지 말라고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도 아빠도 다른 차원으로 이사를 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자연히 무엇을 보고 먹어도 아이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면...

아직은 엄마 손길이 그리운 아이 수영이와 외할머니의 짧은 동거기. 그 속에 가득한 엄마와 수영이의 사랑을 보며 나 또한 책 속 엄마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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