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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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내 모습에는 뭄바이 거리를 쏘다니는 소녀가 남아있지.

나는 금지된 것에 맞서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

"그렇게 힘드셨어요?"

"힘들었지. 다르다고 느껴질 때는 항상."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 클로이는 조금 특별하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참여했던 그녀는 결승선을 앞두고 폭탄 테러로 두 다리의 40cm를 잃고 더 이상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밝고 적극적이던 클로이지만 사고는 그녀에게 몸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어냈다. 배우라는 직업이 성우로 변하였고, 직접 다니기보다는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밖을 구경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에 대해 곱씹는 버릇까지도...

클로이가 사는 아파트 역시 좀 특별하다.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다. 호출을 하면 승강기 승무원이 수동으로 엘리베이터를 호출한 층으로 올려준다. 낮 근무자인 디팍과 야간 근무자인 리베라 씨에 의해 일상의 불편을 덜 느끼며 살고 있던 어느 날, 야간 근무자 리베라 씨가 계단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고 다리 골절을 당하게 된다.

한편,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산지. 그는 인도의 꽤 규모 있는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젊은이로 디팍의 아내 랄리의 조카다. 산지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호텔의 1/3에 달하는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욕심 많은 삼촌들 덕분에 현금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산지는 친구와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사업을 구상하지만 자금이 모자라고, 미국에 살고 있는 고모 랄리를 통해 초대장을 받고 출자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디팍의 아파트에 갔다가 클로이를 마주하게 된다.

리베라의 부상으로 야간 엘리베이터 운행에 차질이 생기자, 아파트 회계사 그룸랫은 수동 엘리베이터를 없애고(당연히 디팍과 리베라는 해고될 것이다.) 2년 전 구매해 놓은 자동 엘리베이터를 들여놓고자 수를 쓴다. 물론 8명의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에 그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회의에서 상당수가 자동 엘리베이터 의견에 찬성한다. 다행히 이 사태 앞에서 랄리는 리베라를 대신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자신의 조카인 산지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고, 산지는 고민 끝에 그 제안을 수락하는데...

과연 산지는 처음 하는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직을 사고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클로이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 읽게 되었다. 근데, 제목이 클로이지만 그 이면에 담긴 디팍과 랄리의 삶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인도 잘나가는 집안의 딸이었던 랄리. 유망한 크리켓 선수였던 디팍. 그런 그와 그녀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생면부지의 땅에서 디팍은 수동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며 새로운 꿈을 꾼다. 바로 난다네비산의 3천 배 거리를 수직이동하겠다는 꿈 말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일개 잡부라고 생각하고 온갖 굳은 일을 시키는 사람들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꿈을 위해 전진한다. 그런 그의 앞에 자동 엘리베이터로의 변화는 단지 일자리 그 이상의 상실을 의미한다. 물론 디팍의 성실함에 대해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과묵한 그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든 삶을 알지만 절대 입 밖의 꺼내지 않는다. 디팍에 대한 기억은 클로이에게도 깊이 남아있다.

테러 후 다리를 절단하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온 첫날. 디팍은 언제나 다름없이 클로이를 맞아준다.

"아까 로비에서 휠체어를 밀어준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미스 클로이는 내 도움도,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아요.

어서 들어가요. 내가 해줄 게 없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따뜻하고 다분히 일상적이다. 물론 인도의 부유한(금수저급?) 상속자인 산지가 고모 랄리의 이야기를 듣고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이 되는 이야기는 좀 놀랍긴 하지만 말이다. 중간중간 펼쳐지는 클로이의 일기들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문득 자신의 다리를 보면 다시금 좌절을 느끼고 또 우울해지는 클로이. 자신을 위해 주변 사람들이 희생하는 것이 너무 싫고, 자신의 사고에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는 줄리어스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 속에 흐르는 편견이라는 두 단어를 지나칠 수 없다. 인도에 대한 우리가 가진 편견들. 장애인을 향한 편견들. 그리고 직업에 대한 편견에 이르기까지...

차분하게 읽다 보면 그들의 일상에 빠져들어 그들이 편견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고 내가 등장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할지 대입하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물론! 사랑 이야기는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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