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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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한 줄 한 줄을 읽어나가면서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작가가 십 년 넘게 길 위의 아이들을 만나며 알게 된 실제를 기반으로 쓰였기에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지역은 내가 너무나 자주 지나치는 지역이어서 그런지 더 피부에 와닿았다.

지하철역 중에 가장 유명한 1.2호선 환승역인 신도림역. 역사도 새로 지었지만, 디큐브시티라는 복합건물이 들어서게 되면서 보기에 상당히 멋진 외관을 지녔다. 역과 이어지는 공원도, 쇼핑과 영화, 호텔이 한 건물에 있기에 원래도 복잡했던 신도림은 더욱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신도림역에서 한 블록만 가도 서울에 이런 집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가건물들이 과거에 참 많았다. 지금은 새로 건축되긴 했지만 말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지역이 내가 과거에 봤던 그곳을 말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반지하 쪽방촌들 말이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한다. 내 가치에 대해, 내 주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생각할 것이 많아지는 그 시기에는 자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또래집단과의 관계는 촘촘해지고 가족과의 관계는 한결 느슨해진다. 급기야 부모님과의 불화로 집을 떠나는 청소년들도 생각보다 많다. 문제는 아무런 재정적 기반이 없는 가출 청소년들은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집으로 들어가던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적인 일들을 하던가...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누군가의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은 결국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청소년들은 가면 안 되는 길을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책 속 예지의 경우도 같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는 청소년 예지는 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난다. 하지만 예지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은 없다. 그저 집을 나왔다는 사실로 이런 끔찍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 가슴이 아팠다. 자신과 같은 가출 청소년들과 지내게 되는 예지. 비즈니스라는 명목으로 예지를 성폭행하고, 그걸 찍어서 올려 돈을 버는 사이판과 같은 무리들을 보면 얼마 전 사회문제를 야기했던 버닝 썬이 나 n 번 방 사건이랑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십 년 넘게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결국 이 소설을 썼다. 읽는 독자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실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저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추악한 진실을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말이다. 답답하지만 실제적인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 사회가 주목해야 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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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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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은 참 무섭지만, 그에 대한 진실은 참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뺑소니 형태였던지라 부검을 하게 되었다. 가족 한 명이 동행해야 해서, 아버지가 가족을 대표해서 국과수를 다녀오셨는데 사실 돌아가신 분을 부검한다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 갔다.

매체나 책을 통해 법의학자는 그래도 자주 접했지만, 법의인류학자라는 직업은 사실 상당히 낯설다. 법의학자와 법의인류학자 모두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직업이지만 둘의 차이라면 법의학자는 시신에서 사망원인을 찾고,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원인을 찾는다. 법의학자 하면 국과수를 떠올리게 된다. 즉, 사망한 지 얼마 안 된(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시신의 연조직 등을 통해 사망원인을 찾는다. 반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원인을 찾기 때문에 백골화된 시신은 물론 미라화된 시신도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인류학자는 한 나라에만 속해서 일하기보다는 분쟁지역이나, 다수의 유골이 발견된 곳에서 뼈를 바탕으로 누구의 시신이고 어떤 상황에 처했으며,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 찾는 일을 하기도 한다. 책에는 저자가 겪었던 여러 가지 사연들이 소개된다. 미제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실종자나 노동자들의 죽음을 밝히고 그들을 가족의 곁으로 보내주는 일을 하며 알게 된 이야기들이나 그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처음 겪는 이야기들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놀라웠다. 보통 영화를 통해 고고학자(고고학자도 법의인류학자의 한 분야다.)들이 미라를 발견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약간의 가십 정도로 다루고 넘어갔는데 실제로는 시신을 발견하고 뼈가 상하지 않게 주의하면서 다루고 사망 시기나 사망원인 등 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미 백골이 된 시신을 만지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고, 부패가 진행된 시신의 경우 냄새를 포함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런 위험과 어려움을 감수하며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죽음을 통해 고인이 남긴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류라는 글자가 들어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한 사람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그의 죽음을 이해하고 밝히기 위해,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뼈를 통해 죽은 이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고, 더 나아가 남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기도 하는 소중한 일을 하는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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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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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참 두려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켜켜이 쌓인다. 원래 극단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울증으로 죽고 싶은 감정을 가지고 수많은 죽음 앞에 선 저자의 글을 통해 또 다른 삶의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워커홀릭인 저자는 갑작스러운 우울증에서 피폐한 삶을 지속해간다. 의사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울증의 실체 앞에서 저자는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 결국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면서도 우울감에 허덕이던 그때 저자는 결국 우울증을 인정하고 치료를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아들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며 행복을 찾아가면서 좀 더 깊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국경 없는 의사회의 문을 두드린다.

저자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 책을 시작한다. 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고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과 훗날 그때의 아빠를 향한 불안함과 그리움의 감정들을 듣게 되고 느꼈던 감정이 교차하면서 이 책을 열어간다. 아들에 대한 편지가 앞뒤에 담겨있어서 그런지 이 책은 더 실제적이고, 더 가슴 깊이 다가왔던 것 같다.

저자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결핵으로 고통받는 서아시아의 아르메니아와 분쟁지역인 레바논 시리아 난민들을 치료하며 보고 겪었던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이 책을 읽을 시점에 코로나 4차 대유행의 위기로 1,2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 역시 결핵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고, 현재도 결핵은 유효한 병이다. 실제로 겪어보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위기의 상황과 아르메니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겹쳐지면서 저자의 경험이 더 피부에 와닿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진 않고, 의료의 혜택을 쉽게 누릴 수 있는 형편이지만 약과 의사의 부족으로 치료해야 할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얼마나 힘들게 치료를 이어갈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 선택으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 수 있는 생의 아이러니함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죽음을 수시로 경험하는 곳에서 종사하며 저자는 우울증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음을 피부로 느꼈기에,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덕분에 나 또한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서 감사하다. 이 책의 저자뿐 아니라 지금도 코로나19와 맞서며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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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룸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7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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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책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워낙 범죄 소설 쪽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기도 하고, 가독성 있게 글을 잘 쓰기도 해서 은근 기대가 되었다. 한참 우리나라에서 많이 들렸던 그 단어가 이 책에도 담겨있어서 그런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에 한참을 빠져 읽게 되었다. 벽돌 책 수준은 아니지만, 글자 크기가 좀 작다. 일반 폰트로 썼다면 분명 벽돌 책이 되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읽다 보니 이미 중반부까지 넘어가 있는 걸 보고 역시나! 싶은 생각 또한 들었다.

퇴직이 코앞인 베테랑 형사 해리 보슈와 형사 딱지를 단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범인과의 총격 사건에서 동료를 잃고 살아남은 핫한 신참 형사인 루시아 소토는 미제 사건 전담반에서 팀을 이루게 되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사건은 무려 10년 전 아르만도 세야스 전 시장의 결혼식에서 비우엘라를 연주하다 총격을 받았던 오를란도 메르세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총격을 받은 그는 척추에 총알이 박힌 채 생활을 하다 결국 두 다리와 한 팔을 잃었다. 그러다 결국 사망을 하게 되고 주지사를 바라보는 전 시장과 연관되어 있기에 이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미 10년 전 일어난 사건에 연장선상에서 수사가 이루어지기에 전에 수사를 했던 형사들(오스카 로드리게스, 베니토 로하스) 과의 공조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형사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열심히 해놓은 초동 자료를 넘겨야 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하지만 보슈는 특유의 경험들로 그들과 관계를 이어나간다.

한편, 소토는 과거 총격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언어가 출중하고, 여러 가지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형사로 잔뼈가 굵은 보슈가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날도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늦은 시간 다시 사무실에 들어온 보슈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소토의 가방을 발견하게 되고, 소토에게 어딘지 묻는 문자를 보내지만 그녀는 보슈에게 거짓말을 한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가던 보슈는 소토가 다른 팀의 자료를 무단으로 복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가 자신에게 숨기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에 마냥 불편한 감정이 들기 시작하는데...

시작은 한 개의 사건이지만, 소토와 연관된 다른 사건이 보슈팀에 이첩되면서 실제는 두 개의 사건을 풀어가는 상황이 된다. 어쩌면 다른 두 개의 사건이지만 또 전혀 연관이 없는 사건은 아니다 보니 오히려 추리와 추리를 함께 풀어가서 그런지 더 몰입되어 읽을 수 있었다. 시리즈물(이번 시리즈가 17권이었다.)이라고 하는데, 아직 전 작들은 만나보지 못해서 과거에 보슈가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 내심 궁금해졌다. 다시금 역주행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보다 한층 성장한 과학수사 덕분에 영구 미제 사건들의 범인이 밝혀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적인 기분이 들어서 더 흥미로웠다. 다음 시리즈는 과연 만날 수 있을까? 끝이 뭔가 석연치 않게 끝나서 내심 궁금증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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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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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여름에는 스릴러 소설이 끌린다. 극장가에서 호러물이 개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릴러소설이나 호러소설은 여름에 봐야 맛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워낙 타고난 새가슴이기에 티브이에 수술 장면만 봐도 이불을 뒤집어쓸 정도인데, 이상하게 소설류는 공포가 덜한 건 아마도 상상력을 조절하면서 읽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공포물의 주인공인 뱀파이어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게 또 뱀파이어와 살인사건 그리고 그를 추적해가는 짜릿한 추리까지 가미되니 나도 모르게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속에서는 3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형사인 수연, 프랑스 입양아이자 뱀파이어 사냥꾼 완다, 그리고 재활병원 간호사인 난주.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여성이라는 것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활병원에서 연거푸 자살로 추정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각자의 필체로 남겨진 꽃동산으로 가겠다는 유서가 자살임을 알려주지만, 자살이라고 하기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건물에서 뛰어내려 얼굴이 다 뭉개진 상태임에도 피는 거의 흐르지 않은 사실에 수연은 집중한다. 그러던 차 그녀에게 범인을 넌지시 알려준 그녀 완다. 완다는 시신의 어깨를 확인해보라고 한다. 두 개의 선명한 송곳니 자국이 있을 것이고, 그게 바로 범인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이라는 말과 함께... 한편, 재활병원에서 일하는 난주는 오랜 시간 병을 앓다 결국 사채 빚까지 지고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빚을 갚느라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 빚을 갚기 위해 그녀가 결국 벌인 일은...

이 소설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재활병원은 구시가지에 있는 병원으로 사실 누군가 자살을 해도 유족들이 부검을 맡기지 않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다.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머무는 곳이기에 그들의 외로움은 뼈에 사무칠 정도다. 그런 그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뱀파이어의 손길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인 셈이다. 결국은 죽음에 이르더라도 그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어서 결국 마지막을 선택하는 그들을 보며 인간이 가지는 외로움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주인공인 그녀들 역시 누구보다 외로움에 길들여져 있고, 그 외로움을 알아봤기에 그렇게 그들은 만나게 되었다.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뱀파이어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이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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