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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평점 :
죽음은 참 무섭지만, 그에 대한 진실은 참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뺑소니 형태였던지라 부검을 하게 되었다. 가족 한 명이 동행해야 해서, 아버지가 가족을 대표해서 국과수를 다녀오셨는데 사실 돌아가신 분을 부검한다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 갔다.
매체나 책을 통해 법의학자는 그래도 자주 접했지만, 법의인류학자라는 직업은 사실 상당히 낯설다. 법의학자와 법의인류학자 모두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직업이지만 둘의 차이라면 법의학자는 시신에서 사망원인을 찾고,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원인을 찾는다. 법의학자 하면 국과수를 떠올리게 된다. 즉, 사망한 지 얼마 안 된(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시신의 연조직 등을 통해 사망원인을 찾는다. 반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원인을 찾기 때문에 백골화된 시신은 물론 미라화된 시신도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인류학자는 한 나라에만 속해서 일하기보다는 분쟁지역이나, 다수의 유골이 발견된 곳에서 뼈를 바탕으로 누구의 시신이고 어떤 상황에 처했으며,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 찾는 일을 하기도 한다. 책에는 저자가 겪었던 여러 가지 사연들이 소개된다. 미제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실종자나 노동자들의 죽음을 밝히고 그들을 가족의 곁으로 보내주는 일을 하며 알게 된 이야기들이나 그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처음 겪는 이야기들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놀라웠다. 보통 영화를 통해 고고학자(고고학자도 법의인류학자의 한 분야다.)들이 미라를 발견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약간의 가십 정도로 다루고 넘어갔는데 실제로는 시신을 발견하고 뼈가 상하지 않게 주의하면서 다루고 사망 시기나 사망원인 등 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미 백골이 된 시신을 만지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고, 부패가 진행된 시신의 경우 냄새를 포함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런 위험과 어려움을 감수하며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죽음을 통해 고인이 남긴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류라는 글자가 들어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한 사람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그의 죽음을 이해하고 밝히기 위해,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뼈를 통해 죽은 이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고, 더 나아가 남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기도 하는 소중한 일을 하는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