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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죽음은 참 두려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켜켜이 쌓인다. 원래 극단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울증으로 죽고 싶은 감정을 가지고 수많은 죽음 앞에 선 저자의 글을 통해 또 다른 삶의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워커홀릭인 저자는 갑작스러운 우울증에서 피폐한 삶을 지속해간다. 의사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울증의 실체 앞에서 저자는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 결국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면서도 우울감에 허덕이던 그때 저자는 결국 우울증을 인정하고 치료를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아들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며 행복을 찾아가면서 좀 더 깊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국경 없는 의사회의 문을 두드린다.
저자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 책을 시작한다. 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고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과 훗날 그때의 아빠를 향한 불안함과 그리움의 감정들을 듣게 되고 느꼈던 감정이 교차하면서 이 책을 열어간다. 아들에 대한 편지가 앞뒤에 담겨있어서 그런지 이 책은 더 실제적이고, 더 가슴 깊이 다가왔던 것 같다.
저자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결핵으로 고통받는 서아시아의 아르메니아와 분쟁지역인 레바논 시리아 난민들을 치료하며 보고 겪었던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이 책을 읽을 시점에 코로나 4차 대유행의 위기로 1,2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 역시 결핵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고, 현재도 결핵은 유효한 병이다. 실제로 겪어보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위기의 상황과 아르메니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겹쳐지면서 저자의 경험이 더 피부에 와닿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진 않고, 의료의 혜택을 쉽게 누릴 수 있는 형편이지만 약과 의사의 부족으로 치료해야 할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얼마나 힘들게 치료를 이어갈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 선택으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 수 있는 생의 아이러니함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죽음을 수시로 경험하는 곳에서 종사하며 저자는 우울증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음을 피부로 느꼈기에,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덕분에 나 또한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서 감사하다. 이 책의 저자뿐 아니라 지금도 코로나19와 맞서며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