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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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태양이 죽고 아침이 찾아오지 않아도 어두운 밤의 바닥에서 살아가면 돼요."

몇 년 전 일본에서 각광받는 직업에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일명 특수청소라고 불리는 사후청소일에 대한 기사였다. 주로 청소하는 집은 고독사를 했거나 자살을 하는 등 사후에 남겨진 집에 남은 유품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 역시 낯설지 않은 직업이 되었지만 이 기사를 접했을 때만 해도 유품정리는 가족들의 일이라는 인식이 큰 탓에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하는 21세의 아사이 와타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돌봐주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이다. 임종을 지키기는커녕, 할머니는 고독사로 6일가량 지난 다음에 발견되었다. 오랜 시간 할머니와 함께 한 기억이 있었음에도 아사이는 할머니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마지막을 지키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된 할머니의 죽음에 아사이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 꽃병에서 자신처럼 상복을 입고 있는 남자 사사가와 케이스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술을 먹다 실례를 한 아사이는 사사가와의 상복을 세탁해 가져다주기로 하고 명함을 받는다. 데드 모닝. 이름이 기묘하다. 죽음의 아침이라니... 이름처럼 사사가와가 하는 일은 죽음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일명 특수청소로 죽은자의 집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세탁한 옷을 전하러 간 날, 사사가와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자신의 할머니처럼 고독사를 한 노인의 집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익숙하지 않은 불쾌한 냄새가 건물 안을 감싸고 있다. 15분 일찍 도착했지만, 집주인은 늦었다고 짜증을 낸다. 죽음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그곳을 청소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악취는 물론이고, 시신이 부패하며 그가 누워있던 곳의 다다미와 바닥까지 스며들은 악취는 그림자처럼 기묘했다. 몇 번의 구역질과 함께 차로 도망가 설핏 잠든 순간, 폐기물 수집 수거업자인 가에데를 만난다. 씩씩하기만 한 그녀와 함께 다시 들어간 집에서의 청소를 무사히 마친다.

그 이후, 아사이는 사사가와의 일을 종종 돕는다. 무섭기도 하고, 기묘하기도 한 그 일을 하며 아사이는 자기도 모르게 죽은 사람의 목소리와 마음을 듣게 된다. 자살한 아들의 집 청소를 요청한 어머니와 함께 공간에 머물면서 아들이 남긴 유서를 발견해서 전달한다. 어머니는 등산을 좋아하는 아들이 마지막으로 신었던 등산화를 버려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아사이는 신발을 남겨두고, 어머니에게 전하다가 어머니의 실제 마음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 밖에도 1년 전 고통사고로 사망한 애인의 유품을 정리해달라는 요청과 원수처럼 지냈던 동생의 유품을 정리해달라는 일, 그리고 자신이 자주 가는 카페 꽃병의 주인과 데드 모닝의 대표 사사가와 사이의 있었던 아이의 이야기까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요.

돌아가신 분의 삶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죽음 뒤에 남은 이야기를 통해, 남겨진 사람도 떠나간 사람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슬프고도 기이한 죽음들 속에 담긴 죽음의 그림자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다르다. 그렇기에 같은 죽음의 모습은 없다. 그들이 살았던 삶이 다 다르듯이 말이다. 삶은 사라지고 지워지지만, 마음에 남은 흔적은 아무리 청소를 하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책의 제목은 돌아가신 분의 삶의 흔적은 사라지지만, 마음의 남은 흔적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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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오피스
말러리안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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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면,

세상 속의 더 많은 본질을 볼 수 있거든요.

보고 싶다는 욕망이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있어요.

어떤 대상을 본다는 행위가 그 자체로

수많은 가능성을 다 차단해버리고,

그 순간 한 가지만 진실이라 강요하게 만드니까요."

실제 직장 생활에 SF가 가미된 듯한 소설이다.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내용들이나 분위기가 실제적이지만, 접근이 불가한 잔인한 상황들이 기묘해서 또 지극히 소설 같기도 하다.

중견기업인 마이푸드에서 디자인팀의 한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직원이 자살했음에도 마이푸드의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과 직원들을 입조심 시키고, 분위기를 더욱 옥죈다. 사업팀 이제욱 과장은 요즘 바뀐 VIP 때문에 말이 아니다. 이것저것 지시사항은 많지만, 늘 지엽적인 것만 탓하는 VIP 조명지 회장을 닮아 사업부장이자 상무인 김상환은 제욱을 갈구기만 한다. 거기다 조명지는 복귀하자마자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인다. 자신의 둘째 형 편이었던 사람들을 밝혀내서 다 잘라내는 작업이다. 그와 함께 마이푸드에서 만든 만두에 자신이 지목한 첨가물을 섞으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사채업자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제욱은 전승완이 말한 첨가물 NR19를 조명지의 지시라는 명목으로 둔갑시켜 만두에 넣기로 하고, 전승완으로 부터 상당 물량을 넘겨받는다. 첨가물을 넣은 만두가 종전의 히트 시키는 와중에 NR19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진다. 갑작스러운 물량을 맞추지 못하게 되자 전승완은 다른 통로를 통해 비슷한 첨가물을 받아 납품하기로 하지만, 그 업체의 전적을 들은 제욱은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히트제품인 만두에 불량 첨가물이 들어갔다고 밝혀지게 되면 오히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승완과의 계약을 깨기에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 결국 전승완을 찾아가는 제욱은 그의 부하인 박철민이 큰돈을 만지는 것을 보고 돈을 훔치려다가 습격을 받게 되고 2주 만에 깨어나게 된다. 2주 동안 엄청난 일이 벌어져있다. 코로나의 9차 변이로 공기는 심각하게 오염되고 사람들은 방독면을 쓰고 다닐 지경에 처한다. 2주 만에 직장에 복귀한 제욱. 아무도 그가 2주 동안 사라진 지 모른다. 그 사이 마이푸드는 국가지원 사업체가 되고, 마이푸드 직원들에게는 마스크와 질 좋은 방독면이 제공된다. 이제는 살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떠나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 사이 조명지 회장과 윤덕술 사장은 더 상태가 이상해진다.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는 직원들을, 회의 중간에 살해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에 반기를 들 수 없다. 과연 이 모든 상황은 첨가물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을 알고 있는 제욱은 그 모든 것을 수습하고자 조회장에게 대항하는데...

자신의 뜻과 다른 직원들에게는 가차 없이 철퇴를 가하는 중역의 모습이 괴이하다. 갑질을 넘어서는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사실 직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을 택하는 뉴스를 종종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다. 혹자는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왜 목숨을 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직원들 중에는 차라리 그렇게 살해당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가족들은 평생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회사가 어디 있어?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신체에 가하는 위해가 아니라 말로 정신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한 회사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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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내가 되기로 한 순간 - 하루 한 뼘 성장 에세이
박미현 지음 / 든든한서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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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워킹맘인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나도 엄마처럼 두 가지를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타고난 성격과 직업병 때문인지, 왠지 둘 다를 다 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지쳐 떨어져도 꾸역꾸역 제대로 해내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완벽한 인간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어느 정도 내려놓고 나니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7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오랜 꿈이었지만, 그저 말뿐인 꿈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다행이라면, 그녀가 꿈을 잊지 않게 꿈을 일깨워준 친구가 주변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글을 쓰겠다는 그녀의 꿈은 이 책으로 완성되었다.

책 속에는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뭔가 대단히 특별하진 않아도, 그저 하루하루의 성장이 쌓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겨우 하루 한 뼘 성장으로 언제 대단한 무언가를 이룰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도태되지 않고 조금씩 자기만의 페이스로 성장한다면 어느 순간 생각보다 부쩍 커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왠지 모를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여행을 다녔을 때의 기억도 좋았지만, 엄마로 그녀의 모습도 참 좋았다. 뭔가를 하기에는 버거운 워킹맘이지만, 출퇴근길 북적이는 대중교통 안에서의 짬 나는 시간이 아쉬워 평소 좋아하던 책을 읽기 시작한 게 벌써 7년이다. 처음에는 그 시간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1시간여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웠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가방 안에는 늘 한 권 이상의 책이 들어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은 책들이 쌓이고 쌓였다. 심심함을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 어느 순간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저자처럼 나도 하루 한 뼘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잠이 부족한 워킹맘이라서 새벽 기상은 늘 마음에만 있는데, 한번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도 필요하니 말이다. 더 나은 내가 되기로 한순간하게 된 결심이 쌓이면 결국 한 자 더 성장한 내가 될 수 있다. 물론 그에는 아이도 그 몫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감정과 환경, 생각의 폭이 생기기 때문이다.

뭔가 대단한 목표와 계획이 아니어도 좋겠다. 그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시도를 해보자.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경험을 통해 얻은 무언가가 있을 테니, 완전한 실패는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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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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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사는 것이다.

살아서, 살아가는 것이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것이 다 되어야 죽는 것이다.

여기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둘은 차이가 크지만, 둘은 또 비슷하기도 하다. 단지 존재한다고 느끼는 사람의 인식 차이일까 싶을 정도로 찰나에 둘은 뒤 바뀐다. 이 책을 펼쳐볼 즈음에 벌어진 믿기 힘든 참사에 내려앉은 감정이 도무지 올라올지를 모른다. 그래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Life and death라는 부제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누구도 내 삶이 언제 시작될지, 그리고 끝날지 모른다. 어찌 보면 반전이라고 표현하는 이야기들이 각 작품의 중반부를 넘어가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반전은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어있느냐다.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폴론 저축은행은 8편의 작품 중 한 작품의 제목이다. 결이 다른듯한,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작품들이 등장하지만 작품을 이어주는 유일한 주제는 삶과 죽음이다. 죽기 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이 책 안에서는 중요하다.

길지 않은 작품들도 있고, 상당한 분량이 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봐야 묘미를 맛볼 수 있다. 표제작도 좋았지만, 첫 번째 수록된 작품인 그 봄과 이중 선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봄이라는 작품은 아빠가 사망하고, 엄마와 떨어져 절에 사는 두 형제 시원과 시율의 이야기다. 어딘지 모르는 산골 암자에 살고 있는 시원과 시율은 늘 엄마가 그립다. 절에 있는 누구도 형제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지만 그나마 산적스님만 형제와 말을 섞는다. 12살 시원 역시 엄마가 그립다. 하지만 동생처럼 마냥 엄마를 그리워할 수 없다. 형이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하루, 엄마는 형제를 만나러 온다. 스님은 그날은 형제를 위해 하루 동안 그들 가족만 있도록 자리를 비워준다. 하지만 언제 왔는지 모르는 엄마는 또 언제 가는지 모르게 사라진다. 엄마가 올 때는 맛난 케이크와 시원이 좋아하는 게임팩, 시율이 좋아하는 곰 젤리와 스케치북을 사 온다. 언제 온 지, 가지도 모르는 엄마기에 시원은 혹시 엄마가 귀신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근데, 엄마가 작년에는 오지 않았다. 보살 할머니들을 통해 들은 얘기는 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오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는 정말 시원. 시율 형제를 버린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피눈물이 흐른다. 예상치 못한 결말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누구의 감정도 안아줄 수 없어서였다. 아이들을 보듬어야 할까, 엄마를 보듬어야 할까?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그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해할 수 없던 게 한순간에 풀려 허무할 정도다.

이중 선율이라는 작품은 타지에서 사망한 망자를 장례식장까지 운구하는 운구용 구급차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날은 서울에서 광주까지 시신을 날라야 했다. 망자는 얼마 전, 큰 화재로 사망한 여성이었다. 혹시 함께 타고 갈 가족이 있나 싶었는데, 친구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시신과 함께 타고 가는 게 영 내키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여성은 두려워 보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동승자는 사망한 여성의 사건을 전담했던 소방서에 근무하는 여자 소방관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려는 운전자는 150킬로 넘게 과속을 한다. 이유는 망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을 조금 더 벌어주기 위해서이다. 근데 뭔가 좀 기묘하고,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 자꾸 벌어진다. 역시 결말에 가야 이 모든 게 명쾌히 풀린다.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가다 보니 무료해진 소방관은 노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묻고, 직업 때문에 수시로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노인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나비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 나비이야기는 이 차에 타고 있는 인물들과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삶과 죽음. 그 뒤바뀐 날은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그저 책 속 한 줄처럼 삶이 사라지는 날이 죽는 날이 될 뿐이다. 언제일지 모르기에 매일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하지만, 아직 죽음이 와닿지 않는다. 삼풍사고 생존자 산만언니의 기사를 읽었다. 얼마 전 일어난 이태원 참사에 대해 묻는 연락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는 그녀의 말이 유독 와닿았다. 죽이기 위해, 죽기 위해 간 것이 아닌 그저 평범한 날이었고, 그 평범한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가 되었을 날. 책 속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사연 속에 담겨있는 그 평범한 날을 맛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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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대 뒤에 있습니다
명승원 지음 / 뜰book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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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내가 몸소 체험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배운 것들은

언젠간 한 번이라도 나를 빛나는 순간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일이라도 쉽게 포기하고 가볍게 생각하지 말자.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인해 당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콘서트와 팬미팅 등 다수의 공연의 연출 감독 명승원의 에세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니, 어린 시절 나도 동경했던 몇몇 가수들이 떠올랐다. 당시 가요 TOP10이라는 프로그램 이름도... (적고 나니 나 정말 나이 많은 사람 같다... ㅎ) 당시에도 공개방송을 향한 열망은 어마어마했다. 워낙 용기도 없고, 겁도 많은 나였던지라 한 번도 공개방송을 가본 적이 없다. 그저 TV 화면을 향해 사진기를 들이대는 정도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수들의 방송을 보며 동경해왔던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기획사에 취업을 하게 된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결국 지금의 그의 길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박봉이지만 동경하는 일을 했던 그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고 한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너무 좋았고, 회사에서 자기도 했다는 정도로 일에 흠뻑 빠져있는 직원들 보고 어느 대표가 예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책 속에는 연출 감독이 되기까지의 여정과 경험담들이 가득하다. 여러 번 설명했지만, 공연기획과 공연 연출의 개념이 다르다는 정도 밖에는 모르겠다. 기획은 좀 더 비즈니스에 가깝고, 연출은 무대의 전체를 책임지고 꾸미는 일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보통의 감독들이 조감독을 몇 년 거치면서 소위 입봉을 한다고 하는데, 저자는 유일한 기획사 출신의 감독이라고 한다. 대놓고 이러저러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보통의 길과 다른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2018년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독립 프로덕션을 차린 저자는 쉼 없이 달리다 소위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한다. 그의 일과를 보면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구나! 싶을 정도기도 하다. 코로나로 한참 쉬어가는 시간이 길긴 했지만, 연말이 되면 쏟아져 나오는 가수들의 콘서트를 연출 감독하는 사람들이 50여 명이라고 하니, 정말 4~5개 이상의 공연을 준비하려면 어쩔 수 없겠다 싶지만, 그럼에도 가수의 색에 맞는 다양한 연출을 고민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의 능력 이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통해 만난 저자는 성실한 사람 같았다. 인간관계의 우위를 다지기 위해 꼼수를 부리기 보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로 포장하기 보다, 자신이 피해를 보고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진실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황을 풀어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함께 공연을 했던 아티스트들을 비롯하여 기획사들도 그의 진심을 알아줬던 것 같다.

콘서트장이나 큰 공연장에서는 늘 포커스가 스타들을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적인 공연을 해내기 위해서는 저자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P.S 여담이라면,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초록 창의 쳐봤더니 지방의 만두가게의 이름이 먼저 등장했다.(정말 맛집인가 보다.) 언젠가는 만두가게를 앞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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