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의 교양 - 내 손목에 있는 반려도구의 인문학
시노다 데쓰오 지음, 류두진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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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손목시계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서, 나중에는 손목시계의 매력에 빠져서 한동안 시계를 모았다. 물론 자금 사정 상 메이커나 고가의 시계가 아닌, 내 눈에 예쁘고 괜찮아 보이는 제품들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은 손목사정도 좋지 않고, 시계의 용도는 핸드폰이 하고 있기에 서랍 한쪽에 모셔져 있는 상황이다. 사실 제목을 보고 좀 놀라웠다. 손목시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위 마니아층을 위한 책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펼쳐보았다. 이번에도 내 생각은 기우였다. 6개의 큰 테마로 나누어진 손목시계에 의한, 손목시계에 대한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 그와 함께 쉽게 접하지 못할(상당히 고가의!) 손목시계의 자태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와 함께 교양도 쌓을 수 있다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다.

시계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어디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위스를 이야기할 것이다. 스위스는 왜 시계 강국이 된 것일까? 예상과 다르게, 시계의 역사학 파트에서는 반전을 만났다. 원래 시계 강국은 프랑스였다는 사실이다. 루이 14세의 종교탄압으로 인해 시계 기술자들이 옆 지역 스위스로 건너가게 되었고, 거기서 기술을 이어나가면서 지금의 스위스가 시계산업을 이끌어나가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손목시계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여기에도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반전이 담겨있다. 지금은 명품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근데,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는 여성을 위해 만들어졌고, 당시 시계 역시 시간의 역할보다는 사치품과 같은 장식품(액세서리)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교회의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한 첨탑의 큰 시계가 점점 작아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힘을 쏟아야 했을까?

텍스트의 흥미로움과 함께 실제 시계의 자태를 사진을 통해 만날 수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시계 중 하나가 이 사진 속 시계였다. 저 작은 기판 안에 날짜, 요일, 시간에 윤년 표기까지 된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 모든 것이 전자가 아닌 많은 부품들에 의해 기계식으로 구성된다고 하니 세밀한 공정 하나까지 설계하고 실험하여 하나의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뿐더러, 왜 그리 고가에 팔리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저 시간을 알려주는 정도에만 머물 줄 알았던 시계는 그 이후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생활방수뿐 아니라 흠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자성을 가진 물건들(핸드폰, 가방 자석, 핸드폰 케이스 자석 등)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한 소재의 진화, 기계식 시계의 한계일 수 있는 시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한 연구, 다양한 디자인과 심미적 요소들을 살리기 위한 노력 등 참으로 다양한 노력들이 집약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참 매력적이었다. 소위 장인이 한 땀 한 땀 파고 깎아서 만들어낸 기요세 뿐 아니라, 그저 파란색으로 칠했다고 생각했었던 시계 침을 300도가량의 불로 연단시켜 색을 표현해냈다는 사실을 통해 역시 아는 만큼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전혀 몰랐을 사실 들이니 말이다.  

 

 

 

 

그 밖에도 사실 고가의 시계하면 떠오르는 롤렉스! 말고는 아는 시계 브랜드가 없었는데, 책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시계 업체들의 이름을 보고 정말 놀랐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시계만 봐도 대략 얼마인지 알 정도로 유명한 시계부터, 각 시계의 특징이나 성격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소위 명품을 상징하는 여성의 가방, 그리고 남성의 손목시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용도라면, 이 모든 장인들의 수고가 좀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명품은 가치를 알아보고, 그에 맞게 사용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지닐 때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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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읽는 시간 - 도슨트 정우철과 거니는 한국의 미술관 7선
정우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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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가 대세인 시절, 누군가는 유행에 휩쓸리고

누군가는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갑니다.

한국 화가들을 공부하며 알게 된 거장이라 불리는 그들의 공통점은 유행을 따르면서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얼마 전 큰아이와 함께 곤충체험관에 간 적이 있다. 도슨트를 통해 곤충과 파충류의 생태와 특징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한결 더 생생하고 흥미롭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심도 더 생기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덕분에 처음 경험한 도슨트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사실 요 근래 들어 미술과 친해지려 다분히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미술은 쉽지 않다. 내게 제일 접근이 어려운 곳을 한 곳 꼽자면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미술과 감상은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다. 그럼에도 미술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큰아이가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소위 서양화가들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미술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나 화가 역시 국내의 화가보다는 해외의 화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미술 도슨트인 저자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 그리고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7개의 미술관들의 특징이라면 국내에 있다는 것과 한 명의 화가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 화가만의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수원시립미술관을 제외하고는 각 미술관은 한 화가의 작품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다. 가령 환기미술관에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에서는 장욱진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미술작품을 만날 때마다 당혹스러운 것이 왜 이 작품의 값어치가, 소위 가격이 왜 이리 비싼 걸까 하는 생각들이다. 어떤 그림은 우리 집 아이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고, 끼적여놓은 낙서같이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나와 같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아는 저자는 그림 이면에 있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준다.


이 작품에 담겨있는 화가의 처절한 슬픔과 고통의 비애 혹은 그리움의 감정이나 행복감이 작품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며 작품을 보는 눈을 일깨워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장욱진 화백의 가족이라는 작품이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들은 지극히 단순하고, 간단하다. 특히 아내를 그린 진진묘란 작품은 정말 졸라맨처럼 보이기도 했다.

평생 손에 잡힐만한 사이즈의 그림만을 그렸다는 장 화백의 작품들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그림들이 없다고 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우리 주변의 모습들을 주제로 삼아 그린 그의 그림을 보자니 처음에는 장난같이 보였던 작품들 속의 따스한 감정이 녹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네 식구가 문을 통해 밖을 들여다보는듯한 가족이라는 작품은 마치 우리 가족을 그린 것처럼 익숙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그 밖에도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여류 화가 나혜석이나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구면이었던 김환기, 조금은 낯설었던 이응노, 이름만으로도 큰 존재감을 줬던 박수근 등 7명의 대 화백들의 삶과 작품들을 통해 좀 더 우리나라 화가들을 깊이 있게 만났던 시간이었다.


책 말미에 미술관이 어려운 독자들을 향한 저자의 애정 어린 미술관 관람의 팁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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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불가능 대한민국 - 고도성장의 기적 이후, 무엇이 경제 혁신을 가로막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26
박상인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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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 짧은 시간 동안 빈곤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년 남짓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성공기에는 "기적"이라는 말이 붙는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그렇게 이룩했던 성장이 지속되고 있는가?

서가명강 26번째 주제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혁신의 명암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1960년대 박정희 체제 속에서 이뤄낸 경제성장이 왜 현재까지 지속되지 않는지에 대해 밝힌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경제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다시피 한 대한민국은 가지고 있는 기반을 다질만한 천연자원도 없었고, 외국의 원조도 끊긴 시점이었다. 당시 외국에서 차관을 도입한 박정희는 타국의 지도자처럼 든든한 배경을 가진 출신도 아니었다. 모든 상황에서 그는 경제를 일으켜야 할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일명 "국가대표 선수 육성정책"이었다. 당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제조업을 통한 수출을 증대시키는 것이었고, 박정희는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에게 보조금과 같은 특혜를 준다. 그리고 그 특혜에 힘입어 지금의 재벌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당시 어떤 기반 시설도 없었기에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 했고, 그에 따라 재벌기업들은 일명 수직계열화로 모든 것을 본인들이 다 아우르는 시장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런 급속도의 성장 정책이 왜 현재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저자는 우리의 상황과 같은 또 다른 예로 미국과 유럽. 일본의 성장세에 대입해 설명한다. 경제발전의 단계마다 전략이 달라져야 함에도 같은 전략을 고수하기 때문이라는 슘페터주의 성장이론이 여기서 등장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시점에서는 우리가 주목한 국가대표 선수 육성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만, 경제의 주 동향이 바뀌는 시점에서는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제조업들의 경우 특수재가 아닌 범용재를 생산하는 형태이고, 범용재의 경우 가격경쟁력에 따라 차후 시장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기업들에게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미국이나 유럽 같은 기업들에는 기술력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형태. 즉, 넛크래커로 악화일로를 겪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 역시 범용재를 생산하고 있다. 왜 우리 경제는 그럼에도 그동안 조금씩 성장을 했던 것일까?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현대-기아차가 독점 형태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오로지 현대-기아차와만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말한 수직계열화가 되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런 소위 밴딩사들의 가격을 후려쳐야 한다. 즉,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재벌기업 위주의 경제형태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는 탄소중립 협정을 맺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경유나 휘발유를 연료로 쓰는 차에서 전기차로 시장이 변화되고 있는데, 그동안 가격경쟁력에 우위를 지키고 있던(하청사 가격 후려치기로!) 독점 생산자는 급변하는 변화에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정부에서 약속한 기한이 있다 보니 탄소중립 협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빠른 산업전환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현재 탄소를 배출하는 주된 산업 군들이 해체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 큰 문제가 야기되기 전에 발 빠른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중화학공업과 제조업에 역량이 집중되어 있다. 거기에 플랫폼 산업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제2의 기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어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고, 수직계열화를 무너뜨리고 경쟁의 우위를 다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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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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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산 자의 죽어가는 목소리를 감싸 안는 일.

그것이 남은 이들의 숙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참 많은 이별이 있다. 경험이 많으면 잘 대처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이별은 아무리 경험을 해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 같다. 특히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이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프고 힘이 들다. 얼마 전 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작별 인사조차 못하고 먼 길을 떠났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 책을 접해서 그랬을까? 책 속에 담긴 각가지 사연들이 모두 가슴을 저밀 정도로 아프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제목을 아무리 선명하게 찍으려고 해도 마치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처럼 뿌옇게만 보인다.

저자는 장례지도사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에 대한 시선이 어두운 것 같다.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지만, 웬만하면 죽음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이번 참사처럼 자녀는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참척이라고 한다는데, 책의 처음 등장하는 이별이 바로 그런 이별이었다. 그 밖에도 참 많은 죽음의 모습이 등장한다.

언젠가는 모두 가야 할 길이라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마지막은 묘하게 또 다르다.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아무도 없이 외롭게 떠나간다. 때론 그 마지막조차 오랜 시간이 지나 알려지기도 하고, 겨우 연락이 닿은 가족들조차 외면하는 죽음도 있다. 또 죽음이 서로의 어그러진 관계를 풀어내는 열쇠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책 속에는 저자가 치러낸 장례의 이야기뿐 아니라,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장례지도사가 된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 끝에 그녀는 대학원을 다니며, 장례지도사의 길에 이른다. 지금은 조금 덜해지긴 했지만 그녀가 막 장례지도사가 되었을 때 성별과 나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도 담겨있고, 결혼이나 이직과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다행(?)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는데,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도 역시나 그녀가 만난 고인과 가족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부유하다고 베푸는 것은 아니고, 없다고 인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장례식장에서 경험한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죽음의 시간에도 진심이 통해야 한다는 사실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한 여성이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장면은 놀랍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별이 아닌, 고인을 기리고 생각할 수 있는 진정한 이별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을 통해 죽음의 가치와 생각이 한결 더 정리되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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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옥, 주님만 따라간 삶
석은옥 지음 / 행복에너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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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도 계속 직장 생활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친정엄마 역시 나와 동생을 키우며 워킹맘으로 평생을 사셨기 때문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엄마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하나와 둘은 정말 차이가 컸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내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지 실제는 겨우겨우 해내는 내 모습에 실망과 함께 형편 상 함께 하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는 대로 쌓여서 전보다 다투는 횟수가 많아졌다.

장황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석은옥 여사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삶을 감사하며 살 수 있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석은옥 여사가 누구인지 몰랐다. 아마 나아 같은 독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영우 박사는 어떨까? 잘은 모르지만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의 이름은 들어본 독자들이 상당할 거라 생각한다. 석은옥 여사는 바로 강영우 박사의 아내다. 이 책에는 그녀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강 박사와의 첫 만남과 결혼, 미국 유학 생활과 강 박사 사후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 나 역시 편견이 상당히 있는 편이다. 물론 장애인과 함께 생활할 기회가 적은 것도 이유겠지만,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들이 더 큰 편견을 만들어낸 것 같다. 하물며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1960년대는 어땠을까? 그녀의 글 속에서 본 과거의 모습 속에는 "아침에 장님(시각장애인)을 보면 재수가 없다"라는 분위기였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강 박사는 중학교 시절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석 여사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대학생으로 자원봉사자로 지원을 하게 되었고 고등학생 강 박사를 만나게 된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석 여사는 일반교사에서 특수교사로 꿈이 바뀌게 되고, 강 박사와 같은 맹인들을 돕기 위한 교사가 되기 위해 1년간 미국에서 연수를 받기도 한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그녀가 가진 꿈을 이해해 주는 배우자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러던 터에 6년간 친남매처럼 지냈던 강 박사는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리고 둘은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는다. 유복한 가정에서 대학 공부까지 마친 엘리트였던 그녀가 장애를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 역시 반대를 한다. 하지만 그녀의 확고한 결심에 결국 어머니는 결혼을 승낙한다. 결혼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그녀는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공부를 지원하고, 자신도 특수교사로의 꿈을 이어나간다. 그 사이 둘 사이에는 두 아들이 태어난다.

책을 읽으며 큰 아들이 했던 질문이 가슴에 박혔다. 아빠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큰아들은 매 식사시간마다 아빠의 눈을 고쳐달라고, 그래서 함께 공놀이를 하고 싶다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의 기도를 들으며 부모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나라면 미안한 마음과 함께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부부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아빠는 불 꺼진 방에서도 너희를 위해 책을 읽어줄 수 있지만, 엄마는 캄캄한 방에서 빛 없이 너희에게 책을 읽어줄 수 없지... 그러니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개발시키면 큰 꿈을 이룰 수 있단다."

이 말은 훗날 아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큰 아들은 안과 전문의가, 둘째 아들은 변호사가 되는 기틀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장애를 딛고 박사가 된 강 박사도 대단하지만, 그의 눈이 되어 그를 이끌었던 석은옥 여사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남편이 눈이 안 보이면, 집안일을 비롯하여 아이를 돌보는 모든 일은 다 석 여사의 몫이었을 텐데, 그녀는 그 10년간의 시간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히 버틸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고백한다. 물론 그 고백의 뿌리에는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다는 고백이 깔려있다.

80세가 된 석 여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이 책을 통해 고백한다. 남편이 그녀에게 선물한 석 은 옥이라는 이름처럼 석(石)의 시대 10년, 은(恩)의 시대 10년, 그리고 옥(玉)의 시대 10년을 보내고 지금의 이르렀다.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리며 여전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는 그녀의 삶을 통해 또 다른 감동과 교훈을 얻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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