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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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 보듯 하시는군요? 사과 성명문을 내는 게 먼저 아닙니까?"

"사과요?"

"그래요, 사과. 설마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저지른 경범죄쯤으로 치부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그럴 리가요."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떤 발표도 없이 그저 협조하겠다, 한마디뿐이라니

외교 결례도 이런 외교 결례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네 한국은 사과를 그따위로 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매우 유감이군요."

세 번째 만나는 고호 작가의 작품이다. 앞 전의 두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터라, 신작인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가까운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북한과 일본의 이야기다. 각기 다른 사건이라 보이는 일들이 접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지는가, 사건과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찾으며 읽으며 더 흥미로울 듯싶다.

1991년 4월. 한 여성과 남자아이 둘 그리고 수행비서로 보이는 여성까지 4명이 하네다 공항으로 입국한다. 그들은 크라운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이름을 묻는 직원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가 아유미라고 대답한다. 체크인을 한 카드의 주인은 그레타 박.

그에 앞서 한 사건이 발생한다. 유리코 실종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미제 사건이다. 1986년 7월 나가노현에 거주하는 이노우에 유리코라는 여학생이 실종된다. 유리코가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가까이 지냈던 문학 교사 시게무라 역시 행방이 묘연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 역시 전부 거짓이었다.

사건을 계속 추적한 경찰 아키라는 시게무라로 보이는 남자가 사라진 시점과 그레타 박이 사라진 시점이 같다는 사실을 찾지만, 위 선에서는 우연의 일치라 무시하고 넘어간다.

2025년 3월. 왕위 계승 서열 1위이자, 일왕 나루히토의 외동딸인 아이코가 납치당한다. 범인은 한국인 문준기로 밝혀졌다. 아이코가 사라진 곳인 가쿠슈인 대학에서는 갑작스러운 연기가 퍼진다. 경호원들이 당황한 사이 납치범은 아이코를 데리고 사라진 것이다. 이 일로 일본 대사는 외교부를 찾아 사죄를 요구함과 동시에, 범인 문준기의 신병을 일본으로 인계하라고 요구한다. 과연 아이코는 정말 납치된 걸까?

문준기의 할아버지 문수용은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인해 홋카이도 탄광마을 유바리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1943년 12월 12월 탄광 제3갱 폭발사고로 조선인 74명이 매몰된다. 그 이야기는 공식 극비문서였던 터라 공개되지 못하다가 2019년 비밀이 해제된다. 평생을 남편이 돌아올 거라 여기며 재가도 하지 않고 살았던 문준기의 할머니.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아들문경상은 결국 아들 문준기에게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그날 이후, 문준기는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연히 하게 된 채팅의 상대는 일본의 고위 관계자였다. 그리고 그의 조부 역시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준기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그토록 아버지와 할머니가 염원하던 바를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그 또한 준기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협력하고자 한다. 과연 그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의 과거사가 고스란히 담긴 책 속의 이야기는 가까운 지리만큼 가까이 얽혀있다.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자신들의 과거사는 반성하지 않으면서 외교 결례를 들먹이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일본의 태도였다. 공주의 목숨과 가치는 대단하고, 자기들의 전쟁에 동원되어 어디에 묻힌 지조차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목숨과 가치는 먼지인가? 아마 저자는 그런 현실을 꼬집기 위해 이런 부분을 담은 게 아닐까 싶다. 실제 역사와 인물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기에 더 실제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씁쓸했던 이야기였다. 생각지 못한 반전과 함께, 책 표지의 문구를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는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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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왕 - 트랙의 왕, 러닝슈즈의 왕
이케이도 준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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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과거의 선수인 것이다.

달릴 수 없는 선수는 선수가 아니다.

하코네 러너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마라톤 러너로 성장한 라이벌.

모기는 그이 등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그저 방관할 뿐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사이다 전개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의 새 장편소설을 만났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처음 만난 건 드라마로도 제작된 한자와 나오키였다.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불의에 굴하지 않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정도를 가며 은행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제적이지만 또 감동적으로 그려졌었기에 그 이후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이 생겼다. 사실 이케이도준의 소설의 내용 전개는 비슷하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와 은행권의 장난질, 각종 배신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은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 번의 위기로 기업의 어려움이 끝나고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어려움은 찾아오고, 그때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려움을 타개해가는 과정이 통쾌하게 그려져 있다. 이번 작품은 100년의 전통을 가진 일본 전통 버선을 만드는 고하제야의 이야기다. 4대째 이어온 버선 제작 업체인 고하제야는 갈수록 수요가 줄어가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사장인 미야자와 고이치는 가업임에도 사양산업이라 할 수 있는 고하제야를 아들 미야자와 다이치에게 물려주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들이 다른 회사에 취업할 때까지만 임시 직원으로 회사에 둔다. 그날도 백화점 매장 축소로 담당자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딸의 부탁으로 신발을 사러 갔다가, 기묘한 모양의 신발을 발견한다. 비브람사에서 나온 파이브 핑거스라는 신발인데, 착용감이 좋고 모양이 특이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착용감을 말하자면, 전통 버선인 다비 역시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던 미야자와는 우연히 사이타마 중앙은행의 융자 담당 사카모토 다로와 이야기를 나누다 과거 육상 선수로 활약했던 지인 아리시마를 소개받는다. 과거 고하제야에서 만들었던 러닝화인 육왕을 토대로 다비와 러닝슈즈를 합쳐 고하제야 만의 특별한 러닝화를 개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다. 이미 사양산업이 되어서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형편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적잖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무이자 경리 담당인 도미시마 겐조(겐 씨)는 미야자와의 의견에 반대한다.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제와의 니시이 후쿠코와 야쓰다 도시미쓰, 아리시마 등의 도움으로 기존 육왕의 새로운 버전을 만든다. 문제는 육왕의 실적에 대한 지표가 없다는 것이었고, 실제 착용을 통해 품질을 개선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육상 유망주였던 다이와 식품의 모기 히로토는 경기 중 부상을 입는다. 라이벌이었던 아시아 공업 게즈카 나오유키는 승승장구하는데, 부상으로 앞으로의 선수 생명조차 위태한 지경에 처한다. 대기업 아틀란티스의 슈피터인 무라노 다카히코는 이런 모기의 상황이 안타깝다. 주법을 바꾸지 않으면, 회복되어도 부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한 모기에게 더 이상의 후원을 통한 광고효과를 얻기 어렵겠다는 아틀란티스 영업부장 오바라 겐지는 무라노에게 더 이상 모기를 지원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당장 주법을 바꾸려면 새로운 러닝화가 필요하다. 그 시점에 미야자와는 주법을 바꾸려는 모기에게 육왕을 제공하고자 하지만, 감독인 기도 아키히로는 탐탁지 않아 하고 모기에게 신발을 전달하지 않는다. 다행히 신발은 모기에게 전달되지만, 듣보잡인 업체의 신발을 믿을 수 없었던 모기는 방 한편에 육왕을 처박아 둔다.

융자 담당 사카모토가 타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되자, 가뜩이나 자금 융통이 어려운 고하제야는 어려움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러닝화 밑창 때문에 고민인 고하제야에게 신소재지만, 기업의 파산으로 사장된 특허 실크레이 기술을 개발한 이야마 하루유키를 소개해 주는 사카모토. 덕분에 가볍지만 내구성이 좋고, 친환경 소재인 실크레이 덕분에 육왕의 질은 크게 업그레이드된다. 하지만 자금의 문제에 부딪친 데다, 기계마저 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된 고하제야는 육왕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때 대기업인 펠리스에서 자회사로 들어오라는 솔깃한 제안을 하는데...

중소기업은 참 힘들다. 육왕 속 이야기가 실제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케이도 준의 손에서 탄생하는 중소기업의 이야기는 수난에 가깝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극이 이끌어지긴 하지만, 대기업에게 어렵게 개발한 기술력을 빼앗기도 도태되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러닝화 천 회사 다치바나 러셀이 대기업 아틀란티스의 회유에 고하제야를 배신하는 장면 또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케이도준의 소설에는 특히 은행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은행원 사카모토의 말처럼 은행은 미래의 성장 가능성보다는 과거 실적에 대한 평가에 따라 자금을 대준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신소재를 발명했지만 자금 때문에 파산한 실쿨이나, 새로운 신발을 만들었지만 자금이 없어서 생산장비를 구매할 엄두가 안 나는 고하제야, 회사에 광고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바로 내치는 아틀란티스 등 다양한 기업의 생리를 통해 사업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었다. 소설처럼 중소기업이 자신의 권리와 기회를 빼앗기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자부심이란 간판도 직함도 아니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갖는 거지.

회사가 크든 작든, 직함이 근사하든 근사하지 않든

그런 건 관계없어.

자신에게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얼마나 책임과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지.

 

나는 이제 과거의 선수인 것이다.

달릴 수 없는 선수는 선수가 아니다.

하코네 러너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마라톤 러너로 성장한 라이벌.

모기는 그이 등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그저 방관할 뿐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진정한 자부심이란 간판도 직함도 아니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갖는 거지.

회사가 크든 작든, 직함이 근사하든 근사하지 않든

그런 건 관계없어.

자신에게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얼마나 책임과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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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져라 - 일과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인간관계의 기술
조우성 지음 / 서삼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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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You can't change the people around you, but you can change the people around you.

당신은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의 본성을 바꿀 수 없으나,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 자체를 바꿀 수는 있다.

나이를 먹어도 쉽지 않은 것을 꼽자면 단연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으면, 요령이 생기니 조금은 쉬워질 거라 생각했지만 글쎄... 죽을 때까지 어려운 게 인간관계가 아닐까? 책의 제목이 끌렸던 이유는 단연 "마흔"의 방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른을 앞두고 "서른"으로 시작하는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마흔이 되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우연의 일치일까? "마흔"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마흔을 불혹이라고 하지 않나?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가 마흔이라고 하는데, 마흔을 맞이한 나는 여전히 매일이 쉽지 않다. 20대 때에는 마흔이 되면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고,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의 자리에 "착각"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될 정도로 서른이나 마흔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나는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하루살이 같은 워킹맘이니 말이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의 에피소드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조우성 변호사의 책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알고 있다. 26년 차 로펌 대표 변호사인지라, 아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인간관계를 접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 속에는 실전의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우선 인간관계를 4계절에 비유해서 4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제목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간단하지만,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제목 한 줄이 궁금증을 더한다. 각 내용 또한 길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실제적인 이야기 속에 변호사로서의 경험담도 담겨있고, 다양한 인간관계의 예도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어렵지 않게 읽힌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야 하는구나!'이야기도 다수 있다. 내 경우는 주위에 친한 지인이 많지 않다. 인간관계도 관계지만, 여러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에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발 넓게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지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위로가 되었던 내용이 있다. 인간관계를 많이 늘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양보다는 질! 이 여기도 등장한다. 가지치기의 인간관계라고, 건강한 관계는 깊이 있는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 너무 많은 인맥에 목매지 말자.

또한 경조사에 대한 내용도 기억이 남는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지만, 정말 10년 넘게 절친이던 친구가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같이 갈 친구가 없다는 이유였다. 혼자 결혼식에 덩그러니 있기 민망하다고 못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럴 수 있다 싶었지만, 그 이후로 그 친구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성인이 돼서도 일 년에 서너 번씩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낼 정도로 오래 유지했던 관계도 자연히 끊어졌다. 경사도 그렇지만, 애사의 경우 특히 더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애사에 소홀해지면 관계가 돈독해지기 어렵다. (물론 코로나라는 상황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사소한 하나가 마음을 열기도 하고, 마음을 닫게 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팁이 될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도 역시 기초가 중요한 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나이 먹어도 인간관계는 어렵다고...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책 제목의 뜻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을 마지막으로 적어본다.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도, 야박하게 굴지 말아. 세상은 참 좁디좁아.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거든...

그러니 다시 안 볼 사람이라도 기분 좋게 헤어져. 그래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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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오브 킹즈 QUEEN OF KINGS
탁윤 지음 / 이층집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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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나를 지키겠다며 어린 나에게 계속 마법을 강요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수많은 고통이 뒤따랐고 그때마다 마음속엔 강박관념과 상처가 새겨졌다.

귀족들과 왕족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든, 난 엄마의 방식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었다.

급작스럽다. 소설의 시작도, 소설의 내용도 말이다. 프롤로그가 있다지만,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다. 읽으면서 파악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극의 내용은 고구마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용도 빠르게 전개된다. 그래서일까? 등장인물의 모습도, 성격도 작품의 속도만큼이나 급작스럽게 바뀐다. 그래서 그만의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소설 속에서 출생의 비밀부터, 목숨의 위협과 전쟁, 로맨스 이야기, 마법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속도감 있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라면 만족스러울 것 같다.

20살 오브리엘 클레어는 마녀라 불리는(실제로는 미친 여자 취급을 받는) 엄마 옥타비아 클레어와 함께 살고 있다. 불행하게도 엄마는 마녀의 기질을 타고나지 못했지만, 딸인 오브리엘에게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마법을 가르치고 각종 식물의 향을 맡게 한다. 오브리엘의 감정이나 생각은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말이다. 그러다 옥타비아가 사망한다. 많은 독초의 향 때문이었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오브리엘은 갑자기 평민에서 여왕이 된다. 16개의 연방을 가진 칼라논 왕국의 선왕인 암브로스 블랙번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오브리엘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조차 모르고 20년을 살았는데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신분 상승의 신데렐라를 생각하겠지만, 오브리엘의 경우는 정반대다. 어디서 나타난 듣보잡 때문에 왕위 계승 서열 1위에서 추락한 왕자 헨리크 블랙번은 자신의 것을 도둑질한 그녀에게 대놓고 죽이겠다는 협박을 늘어놓는다. 뿐만 아니다. 귀족들이나 연방의 왕들 또한 오브리엘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대놓고 성추행을 하려는 오델의 왕 브리나르 바한, 그녀를 성 밖으로 떨어뜨려 죽이려 하는 헨리크, 뷴 왕국의 대사인 카스티엘의 방문에 여왕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자문관들, 여왕의 방을 허락 없이 들어와서 목숨의 위협을 가하는 왕자를 보고도 반응이 없는 경비병들까지...

하지만 그녀는 어려서부터 엄마로부터 강제적으로 마법을 배웠다. 왕자 세바스찬이 돌보는 정원 정중앙에서 죽음의 여신의 꽃인 효시아무스를 발견한다. 마법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는데, 그녀를 위협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서였을까? 그녀는 그 꽃을 취한다. 그리고 그 꽃으로부터 불러낸 그림자 병사들은 그녀를 죽음의 여신 이솔데의 딸이라 부른다. 그녀가 위협을 당하는 순간 나타난 그림자 병사는 그녀를 위협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헨리크를 처참하게 부상 입히고, 그녀에게 추행을 일삼은 바한을 살해한다. 하지만 그녀가 마법을 쓰는 것을 막으려 하는 뷴의 대사 카스티엘.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와 가까워질수록 오브리엘은 뭔지 모를 감정에 빠진다. 한편, 그녀가 마법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헨리크는 그녀에게 적대적이었다 사랑을 고백하는데... 과연 그의 고백은 진실일까? 뷴의 여황제는 강력한 마법의 소유자라고 하는데, 그가 대사를 보내 오브리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남기 위한 그녀의 선택은 또 다른 결과를 낳는다. 그토록 고통스럽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목숨의 위협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환되는 마법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그녀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 그것뿐이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원하지 않는다고 던져버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되니 산 넘어 산이지만, 어려움은 성장을 낳게 되는 법. 아무것도 모르는 평민 여왕의 성장을 통해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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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직접 하는 우리 아이 스며드는 역사 공부법
김경태 지음 / 델피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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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역사를 참 좋아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역사를 무척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글이 마치 내 경험인 것 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저자가 휴가 때 문화재나 역사유적지를 코스에 포함시켰다고 했는데 우리 부모님 역시 매번 여름휴가 때는 꼭 유적지가 한 개 이상 들어 있었다. 어떤 때는 경주가 통째로 담겨있기도 했고, 시간이 날 때면 고궁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과목을 몰라도 국사와 세계사, 한국지리 등의 과목은 고등학교 때까지 아버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다행이라면 남편 역시 역사를 좋아한다. 역시나 시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올해 7살이 된 큰 아이가 18번처럼 부르고 다니는 노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다. 아침잠 많은 아이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틀어놓으면 자동으로 일어나기도 하니 역사 사랑은 대를 이어가는 듯싶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우리 아이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읽는 역사책 제목을 보고(얼마 전 삼국유사를 읽었을 때처럼) 관심을 가지는 아이의 관심을 더 넓혀주기보다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던 기억도 책을 읽으며 갑자기 떠올랐다. 다행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아이는 이과임에도 한국사 1등급을 맞은 이유를 어려서부터 엄마가 한국사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레 아이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대하드라마나 역사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이덕화 배우가 출연했던 한명회나 전광렬 배우 주연의 허준, KBS1 TV에서 늘 방영하던 용의 눈물,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대장금 등 다양한 작품을 보며 시대상과 역사적 사건을 스토리로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을 교과서를 통해 다시 접하니 마치 예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자 역시 역사 공부를 위한 무언가가 아닌, 아이가 관심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매개를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가지길 조언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의 스토리를 통해 역사와 친해지기, 다양 유적지 여행을 통해 역사와 친해지기, 박물관을 활용해서 역사와 친해지기, 등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며 아이와 부모가 함께 역사 공부를 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를 쉽게 접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역사만화를 추천하기도 하고, 엄마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통해 흥미를 끌어내도록 조언하기도 한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엄마가 먼저 역사 공부를 통해 전체적인 스토리를 꿰고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특히 10장에는 궁궐 나들이나 웹툰 등을 통해 역사 공부를 실제로 적용한 사례가 등장하니 참고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역사는 암기과목이다, 어렵다, 복잡하다는 선입관이 있다. 나 역시 조선시대보다는 자주 접하지 지 않은 근현대사는 낯설고 어렵다. 그 시대상을 다룬 매체들을 자주 접했다면 덜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저자의 말처럼 고등학교에 가면 수능을 준비하느라 국영수 공부를 하기에도 빠듯할 텐데, 어려서부터 역사와 친해져서 밑바탕이 깔려있다면 공부가 한결 편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공감한다. 당장 이번 주말 아이와 함께 고궁 데이트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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