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 보듯 하시는군요? 사과 성명문을 내는 게 먼저 아닙니까?"
"사과요?"
"그래요, 사과. 설마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저지른 경범죄쯤으로 치부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그럴 리가요."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떤 발표도 없이 그저 협조하겠다, 한마디뿐이라니
외교 결례도 이런 외교 결례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네 한국은 사과를 그따위로 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매우 유감이군요."
세 번째 만나는 고호 작가의 작품이다. 앞 전의 두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터라, 신작인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가까운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북한과 일본의 이야기다. 각기 다른 사건이라 보이는 일들이 접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지는가, 사건과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찾으며 읽으며 더 흥미로울 듯싶다.
1991년 4월. 한 여성과 남자아이 둘 그리고 수행비서로 보이는 여성까지 4명이 하네다 공항으로 입국한다. 그들은 크라운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이름을 묻는 직원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가 아유미라고 대답한다. 체크인을 한 카드의 주인은 그레타 박.
그에 앞서 한 사건이 발생한다. 유리코 실종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미제 사건이다. 1986년 7월 나가노현에 거주하는 이노우에 유리코라는 여학생이 실종된다. 유리코가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가까이 지냈던 문학 교사 시게무라 역시 행방이 묘연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 역시 전부 거짓이었다.
사건을 계속 추적한 경찰 아키라는 시게무라로 보이는 남자가 사라진 시점과 그레타 박이 사라진 시점이 같다는 사실을 찾지만, 위 선에서는 우연의 일치라 무시하고 넘어간다.
2025년 3월. 왕위 계승 서열 1위이자, 일왕 나루히토의 외동딸인 아이코가 납치당한다. 범인은 한국인 문준기로 밝혀졌다. 아이코가 사라진 곳인 가쿠슈인 대학에서는 갑작스러운 연기가 퍼진다. 경호원들이 당황한 사이 납치범은 아이코를 데리고 사라진 것이다. 이 일로 일본 대사는 외교부를 찾아 사죄를 요구함과 동시에, 범인 문준기의 신병을 일본으로 인계하라고 요구한다. 과연 아이코는 정말 납치된 걸까?
문준기의 할아버지 문수용은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인해 홋카이도 탄광마을 유바리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1943년 12월 12월 탄광 제3갱 폭발사고로 조선인 74명이 매몰된다. 그 이야기는 공식 극비문서였던 터라 공개되지 못하다가 2019년 비밀이 해제된다. 평생을 남편이 돌아올 거라 여기며 재가도 하지 않고 살았던 문준기의 할머니.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아들문경상은 결국 아들 문준기에게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그날 이후, 문준기는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연히 하게 된 채팅의 상대는 일본의 고위 관계자였다. 그리고 그의 조부 역시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준기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그토록 아버지와 할머니가 염원하던 바를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그 또한 준기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협력하고자 한다. 과연 그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의 과거사가 고스란히 담긴 책 속의 이야기는 가까운 지리만큼 가까이 얽혀있다.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자신들의 과거사는 반성하지 않으면서 외교 결례를 들먹이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일본의 태도였다. 공주의 목숨과 가치는 대단하고, 자기들의 전쟁에 동원되어 어디에 묻힌 지조차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목숨과 가치는 먼지인가? 아마 저자는 그런 현실을 꼬집기 위해 이런 부분을 담은 게 아닐까 싶다. 실제 역사와 인물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기에 더 실제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씁쓸했던 이야기였다. 생각지 못한 반전과 함께, 책 표지의 문구를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는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