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현대지성 클래식 48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날, 간수가 떠난 뒤에 나는 철제 반합에 내 얼굴을 비춰보았다.

철제 반합에 비친 얼굴을 향해 아무리 웃어보아도 그 얼굴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얼굴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웃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날이 저물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 이름 없는 시간,

저녁의 소리가 감옥 층계 여기저기서 침묵의 행렬을 뚫고 올라오는 시간이었다.

20대에 만난 이방인과 30대에 만난 이방인, 그리고 40이 되어 만난 이방인은 결이 달랐다. 20대의 이방인은, 우울하면서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고, 30대의 이방인은 뫼르소의 사형 판결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40대의 이방인은 그동안 느꼈던 느낌과 많이 달랐다. 나도 세상을 더 살아서 그런 걸까?

직장 생활을 하는 뫼르소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우왕좌왕의 감정은 아니었다. 일어날 일이 있어났다, 마치 내가 할 일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대표에게 이틀의 휴가를 쓰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검은 정장을 입고 길을 나선다. 양로원 원장과 잠깐의 대화를 나눈다. 생각보다 덤덤하게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안치된 영안실로 안내를 받는다. 어머니를 보겠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그날 밤을 그곳에서 보낸다. 엄마는 알지만, 뫼르소는 모르는 노인들과 말이다. 담배를 권하는 문지기 말을 지나치기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 구슬피 우는 노인들의 울음을 들으며 밤이 저문다. 엄마의 장례식 날 아침. 밀크커피를 권하는 문지기의 권유를 받아들여 커피 한 잔을 들이켠다. 더운 여름 해가 따갑다. 장례식에는 원장과 당직 간호사 그리고 엄마의 연인이었던 토마 페레 영감이 참석한다. 페레 영감은 온통 눈물투성이다. 반면, 뫼르소는 덤덤하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우연히 마나게 된 전 직장동료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밤을 보낸다.

같은 건물에 사는 살라미노 영감은 피부병이 든 노견을 데리고 다닌다. 물론 개에게 늘 욕을 해댄다. 얼굴만 아는 사이기에 굳이 말을 섞지 않는다. 또 한 사람은 동네에 소문이 좋게 나지 않았다. 여자를 등쳐먹고 산다는 소문이다. 우연히 그 남자 레몽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된 뫼르소는 레몽의 그간의 사정을 듣게 되고, 레몽을 대신해 편지를 대필해 준다. 그렇게 안면을 튼 레몽의 집에서 큰 소리가 난다. 레몽이 여자친구를 때리고 그 일로 경찰이 출동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랍인 오빠 무리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경찰에 가서 레몽과 여자친구 일에 대해 진술을 해준 일로 레몽과 친해진 뫼르소는 레몽의 친구인 살라마노로 부터 바닷가 별장으로 초대를 받게 된다. 여자친구인 마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선 뫼르소와 레몽은 그들을 지켜보는 아랍인을 발견하지만 지나친다. 더운 여름 한참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 아랍인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칼을 들고 있는 아랍인에게 레몽이 상해를 입게 된다. 레몽이 맡긴 권총을 가지고 있던 뫼르소는 태양을 피해 한적한 그늘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레몽에게 상해를 가한 아랍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칼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공격을 해오면 권총으로 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칼에 반사된 빛이 뫼르소의 눈을 찌르고 뫼르소는 총을 발사하게 되는데...

"저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가슴으로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유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뫼르소는 분명 사람을 죽였다. 그 일로 그는 구속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오해이던, 더운 날씨로 인한 짜증이던, 아랍인을 죽였다는 사실만이 죄가 될 뿐이다. 과연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요양원에서 지내게 한 것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목 놓아 울지 않은 게, 어머니 장례식 다음 날 여자를 만나 코믹 영화를 보고 밤을 같이 보낸 게 죄가 될 수 있을까? 뫼르소의 사형 판결에는 살인죄 외에 다른 조항이 많이 붙어있다. 만약 이방인이 1942년 프랑스가 아닌, 2023년 한국에서 발표되었어도 과연 뫼르소에게 주어진 판결이 이해가 되었을까? 사회적 분위기와 그에 따른 행동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해제를 통해 만난 1942년의 프랑스의 분위기에서는 뫼르소의 판결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글쎄다. 가족의 사망에 슬퍼하는 게 맞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또 다른 죄의 전가된 이유가 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모두의 형편이 다르니, 감정의 표현도, 말이 많지도 않은 뫼르소라면 그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 있겠다. 물론 뫼르소의 행동이 사이코패스나 공감각이 결여된 사람의 행동과는 다르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다. 그저 내 눈에는 뫼르소가 감정 표현이 자유롭지 않은 시크한 사람 정도로 보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기 전에 연쇄살인마와 프로파일러에 대한 소설을 읽어서였을까? 책 속에 등장한 실제 이야기가 너무 소설같이 느껴졌다. 이 책의 저자인 앤 울버트 버지스는 1세대 프로파일러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오늘날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녀는 간호사 출신이다. 병원에 근무하며,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중 여성들 말이다. 여성들 중에는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환자들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성폭행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묻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외모 때문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이다.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좀 더 긴밀한 연구와 시간이 필요했던 저자는 병원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간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저자는 거기서 발을 더 넓힌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심리와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즈음 FBI 안에서 늘어나는 성범죄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었다. 앤 버지스가 쓴 성범죄자에 관한 논문을 보고 있던 한 여경 덕분에 FBI에서 강의를 진행하게 되고, 그 일로 외부인인 앤 버지스는 FBI의 내부인이 된다. 물론 그녀가 FBI 안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생각보다 힘든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그녀는 프로파일링 분야를 만들면서 범죄자 프로파일 생성 절차 5가지를 만든다.

  1. 프로파일링 인풋 수집

  2. 의사결정 과정 모델 도출

  3. 범행 분석

  4. 범죄자 프로파일 작성

  5. 수사와 체포

문제는 이 프로파일링을 실전에 대입해서 실제로 얼마나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봐야 했다. 결국 그녀의 프로파일링팀인 행동과학부는 3개월 이상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을 제공받기로 하고, 그중 한 사건에 집중해서 그들이 만든 프로파일링 절차를 대입해 본다. 그 사건을 고른 이유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고,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범인은 점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조만간 발생할 피해자를 막기 위해 행동과학부는 사건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논픽션을 기반으로 해서 쓰인 책이기 때문에, 저자가 직접 프로파일링을 통해 해결한 사건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신기한 것은 사건을 토대로 그들이 작성한 프로파일링이 실제 범인과 상당히 유사했다는 점이다. 첫 사건을 해결한 후, 필요성과 성과를 도출해 내고 FBI 안에서도 프로파일링의 필요성을 증명하게 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프로파일링을 하려고 하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있고, 그로 인해 잘못된 결과가 도출될 위험 또한 있지만 그럼에도 프로파일링은 범인을 밝혀내고 차후 일어날 제2, 제3의 범죄를 막아내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나 또한 프로파일링에 대한 흥미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의 말에 나름의 반성을 하게 되었다. 프로파일링은 흥미를 돋우기 위한 것이 아닌, 범죄자로부터 피해자를 지키고 더 이상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가 처음 프로파일링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가해자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전가시키는 일은 더 이상을 일어나지 말았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스터마인드
이성민 지음 / 스윙테일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쇄살인마와 천재 프로파일러의 대결이라... 띠지에 적힌 한 줄이 기대감을 높였다. 근데 그 위에 한 줄은 기대를 넘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설마, 나 기억 못 하는 거야?"

이 한 줄은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다. 과연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일까?

경찰청 프로파일러 박수진 경감. 그녀 앞에는 큰 사상자를 낸 방화사건을 저지른 살인마가 잡혀와있다. 웅진 아웃렛 테러 사건 범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수진은 역시 프로파일러답게 상황을 잘 조정해나간다. 종이와 펜만 주면 다 밝히겠다는 그의 말에 높은 분은 종이와 펜을 제공하라고 한다. 그림을 보며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범인을 보는 수진. 아니나 다를까 범인은 펜을 자신의 목에 박고 자살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수진에게 한 마디를 건넨다. "나중에 보자"

범인 사망 후 얼마 안 돼 2호선 지하철 테러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으로 수진은 남편과 아들을 잃는다. 이상한 상황이었다. 노인에게 일방적으로 욕을 먹던 남자가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꺼낸 것. 시한폭탄이었다. 본능적으로 폭탄을 알아본 수진의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사망했다. 뉴스를 통해 남편의 마지막을 본 그녀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녀에게 남겨진 "사랑해"라는 문자. 그 문자만 보내지 않았다면, 핸드폰만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남편과 아들을 살 수 있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수진은 경찰 옷을 벗는다. 죽고 싶었지만, 남겨진 딸 해연을 위해 마트 알바를 하며 악착같이 살아간다. 그날은 해연과 오랜만에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비가 오고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는데, 딸이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뒤 차가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이다. 트릭을 써봤는데, 정말 미행 중이었다. 검은 정장 차람의 남자 둘이 수진의 차로 접근한다. 그들의 정체는 국정원 직원이었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 처리에 수진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2단계 승진 처리해서 복직시켜주겠다는 말을 건넨다.

그렇게 그들을 따라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되는 수진. 방공호라 불리는 앤트홀에 들어가게 된다. 최첨단 보안이 걸려있는 그곳에 수진이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소장 전승태와 미군 사이먼, 연구원 김진혁, 박호철, 김태리 그리고 마스터라 불리는 인물. 수진은 이상함을 느낀다. 직접 눈으로 갇혀있는 마스터를 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상처투성이의 마른 여성이 쇠사슬에 묶여있다. 방 어디를 봐도 상해를 입을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수진은 베테랑 프로파일러다. 그녀가 하는 거짓말의 정체를 알아낸다. 수진의 이야기를 들은 마스터는 웃으며 구면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이 작품의 가장 신선했던 점은 연쇄살인마가 눈을 통해 다른 몸으로 옮겨간다는 점이었다. 연쇄살인마는 남의 몸을 빌려 입고 사건을 저지른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1초만 바라봐도 이동할 수 있다. 무지막지한 능력이다. 문제는, 이 방공호 연구소 안에 마스터의 첩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스터를 뺀 5명 중에 있다는 사실인데, 과연 그 첩자는 누구일까?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눈을 통해 이동하는 범인의 능력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반전 때문에 마지막 한 줄을 마주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과거에 비해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에는 CCTV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각지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생긴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흥미로운 주제지만, 마지막 개연성이 조금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하기 전, 일하는 중, 일하고 난 후 - 초격차 성과자들의 터닝포인트
류랑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 직장에 입사한 지 14년 차가 되었다. 작은 중소기업이기도 했고, 회사의 설립연도와 사번 앞자리가 같은 터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왔다. 다행이라면, 창업 전 대표 두 분이 큰 회사에서 근무하셨던 터라 기업의 생리나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초짜나 다름없는 내가 소위 말하는 양식과 업무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책 속에 이야기처럼 팀으로 일을 하는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지만, 일의 맥락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찔리는 부분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직속상관도, 직속 부하도 없는지라 가끔 타 부서의 지원을 받아야 할 때가 있는데, 나 역시 독고다이 정신이 강한지라 위임을 하는 게 어려웠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나처럼 혼자 일을 했던 습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팀장이 된다면 책에서 말하는 그런 부류의 팀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줄기차게 성과와 실적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성과와 실적의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받은 만큼 일한다고 이야기한다. 내 월급만큼만 일한다고 말이다. 과연 그때의 받은 만큼의 일은 성과일까, 실적일까? 저자는 성과와 실적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과는 수요자인 고객이 인정한 결과물이고, 실적은 실행자인 내가 노력한 결과물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과는 수요자가 원하는 결과물인 "목표"를 달성한 상태를 의미하지만, 실적은 실행하는 내 기준에서 일을 얼마나 "열심히"했는지, 내가 어떤 "노력을"했는지의 결과물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받은 만큼 일한다는 말은 실적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고 하지만, 성과가 나지 않았을 때다. 역으로 회사에서 이만큼의 월급과 시간 등을 제공해 줬는데 성과가 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실행자가 목표를 어떻게 잡고 일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우선은 업무의 목표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업무를 혼자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업무를 혼자 하더라도 보고해야 할, 최종으로 내용을 알아야 할 누군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누군가는 상사가 될 수도 있고, 고객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보고자의 입맛에 맞게 업무를 할 필요가 있다. 구색을 맞추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확한 포커스를 잡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무를 일임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를 알아야 하는 것과 함께, 중간중간보고를 통해 일의 진척 여부를 보고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저자는 이와 함께 주기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정리하기를 조언한다. 기간을 정해 성과 정리 및 보고는 또 다른 어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잘러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비단 이는 업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학업이나 집안일, 인간관계에 대입해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겸손보다는 어필이 중요한 때다. 팀장이 일을 많이 준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그만큼 믿음직하구나!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물론 호구는 사양이다.) 또한 업무에 지적을 받는다면, 과연 나는 제대로 된 성과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어령 대화록 2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성은 울지 않습니다. 분석하고 심판하고 의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지성은 차갑고 명징하고 투명한 것입니다...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지성의 눈은 아주 맑고 명료한 호수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제가 흘린 눈물은 지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감성, 감정, 그리고 사랑이죠.

이것은 지성의 무력함이요,

지성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 지성의 대표였던 이어령 교수가 별세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중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만난 디지로그라는 글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한국인 이야기다. 이어령 교수 특유의 꼬리를 이어가는 화법과 본연의 가치를 읽어내는 냉철하고 또 유머러스한 이어령 표 글이 참 좋았다.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대학교수로 수많은 이성적인 글들을 남겼기에 그는 지성인의 대표였다. 그런 그가 70이 넘어서 크리스천이 된다. 바로 큰 딸인 이민아 목사의 소원이자 전도를 통해서였다.

사실 제목을 읽는 순간 뜨끔했다. 왜 찔렸을까? 그냥 딱 제목 한 줄일 뿐인데 말이다. 내 본명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내 종교를 짐작한다. 다분히 종교적 성격이 강한 이름이기 때문이다.(성경 인물은 아니다.) 그랬기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교회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일요일은 교회 가는 날이 이젠 습관이 되어버릴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고 신앙이 아주 깊지는 않다. 단지, 성실할 뿐이다.(성실한 것과 신앙이 좋은 건 다르다. 신앙이 좋으면 성실할 수 있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밥 먹듯 교회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큰 체험은 없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연스레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책 안에 드러난 이어령 교수의 변화가 내심 부럽기도 했다.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그는 지성의 옷을 내려놓았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았었다고, 자신이 무척 잘난 줄 알고 살았던 그가 자신은 창조자가 아닌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겸손해졌다고 고백한다. 이어령 교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큰 자신감을 넘어선 교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딸의 실명 위기 앞에서 하나님과 딜 아닌 딜을 한다. 딸의 눈을 회복시켜주시면, 자신이 가진 재능(글을 쓰고 가르치는)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적처럼 딸의 눈이 회복된다. 근데, 막상 그러고 나니 슬쩍 발을 빼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이기에, 지키기 해야 했지만 미루기도 했단다. 아픈 딸의 소원이 아버지와 함께 교회 가는 것이라는 말에 이 교수는 세례를 받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커져서 그는 정말 세례를 받고, 그때부터 크리스천이 된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문제는 단순히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고 인간의 사는 문제고

살아있는 생명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책 속에는 방송이나 신문사와의 대담, 출연 그리고 간증 7편이 담겨있다.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간증은 색다르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는 그답게, 신앙의 문제 또한 이성으로 풀어가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의 삶에서 늘 어려움을 겪고, 우리처럼 순간의 유혹에 휩쓸리기도 한다. 사실 나 또한 궁금했던 내용이 있다. 딸의 투병 그리고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슬픔, 그리고 자신 또한 암으로 투병하다가 별세했는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길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길이다. 물론 딸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자신이 그 자리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그 자리를 하나님이 대신해 줬다는 사실에 인간적으로 속도 상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어찌 보면 이어령 교수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구보다 철저한 이성주의자이자 무신론자였기에,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뛰어나고, 높은 권력을 가지고,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도 죽음 앞에서는, 신앙 앞에서는 동일한 것 같다. 책 속에 담긴 고백은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