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어령 대화록 2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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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울지 않습니다. 분석하고 심판하고 의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지성은 차갑고 명징하고 투명한 것입니다...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지성의 눈은 아주 맑고 명료한 호수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제가 흘린 눈물은 지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감성, 감정, 그리고 사랑이죠.

이것은 지성의 무력함이요,

지성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 지성의 대표였던 이어령 교수가 별세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중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만난 디지로그라는 글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한국인 이야기다. 이어령 교수 특유의 꼬리를 이어가는 화법과 본연의 가치를 읽어내는 냉철하고 또 유머러스한 이어령 표 글이 참 좋았다.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대학교수로 수많은 이성적인 글들을 남겼기에 그는 지성인의 대표였다. 그런 그가 70이 넘어서 크리스천이 된다. 바로 큰 딸인 이민아 목사의 소원이자 전도를 통해서였다.

사실 제목을 읽는 순간 뜨끔했다. 왜 찔렸을까? 그냥 딱 제목 한 줄일 뿐인데 말이다. 내 본명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내 종교를 짐작한다. 다분히 종교적 성격이 강한 이름이기 때문이다.(성경 인물은 아니다.) 그랬기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교회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일요일은 교회 가는 날이 이젠 습관이 되어버릴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고 신앙이 아주 깊지는 않다. 단지, 성실할 뿐이다.(성실한 것과 신앙이 좋은 건 다르다. 신앙이 좋으면 성실할 수 있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밥 먹듯 교회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큰 체험은 없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연스레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책 안에 드러난 이어령 교수의 변화가 내심 부럽기도 했다.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그는 지성의 옷을 내려놓았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았었다고, 자신이 무척 잘난 줄 알고 살았던 그가 자신은 창조자가 아닌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겸손해졌다고 고백한다. 이어령 교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큰 자신감을 넘어선 교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딸의 실명 위기 앞에서 하나님과 딜 아닌 딜을 한다. 딸의 눈을 회복시켜주시면, 자신이 가진 재능(글을 쓰고 가르치는)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적처럼 딸의 눈이 회복된다. 근데, 막상 그러고 나니 슬쩍 발을 빼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이기에, 지키기 해야 했지만 미루기도 했단다. 아픈 딸의 소원이 아버지와 함께 교회 가는 것이라는 말에 이 교수는 세례를 받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커져서 그는 정말 세례를 받고, 그때부터 크리스천이 된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문제는 단순히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고 인간의 사는 문제고

살아있는 생명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책 속에는 방송이나 신문사와의 대담, 출연 그리고 간증 7편이 담겨있다.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간증은 색다르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는 그답게, 신앙의 문제 또한 이성으로 풀어가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의 삶에서 늘 어려움을 겪고, 우리처럼 순간의 유혹에 휩쓸리기도 한다. 사실 나 또한 궁금했던 내용이 있다. 딸의 투병 그리고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슬픔, 그리고 자신 또한 암으로 투병하다가 별세했는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길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길이다. 물론 딸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자신이 그 자리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그 자리를 하나님이 대신해 줬다는 사실에 인간적으로 속도 상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어찌 보면 이어령 교수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구보다 철저한 이성주의자이자 무신론자였기에,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뛰어나고, 높은 권력을 가지고,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도 죽음 앞에서는, 신앙 앞에서는 동일한 것 같다. 책 속에 담긴 고백은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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