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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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죽음을 파헤치는 엄마의 추리일까?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 책 속에서 뭔가 묵직한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과연 리타는 자살을 한 걸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일까?

몇 년 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저자 김혜남의 파킨슨병 투병 소식을 들었다. 이미 2001년에 발병해서 22년째 투병 중이라는 소식에 상당히 놀란 적이 있다.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근육이 조금씩 마비되는 증상이 있는데, 뇌 쪽의 이상으로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엘레나 역시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그녀는 딸 리타와 함께 살고 있는데, 둘은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엘레나와 리타는 의지할 유일할 가족인지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리타는 은행에 근무하는 로베르토 알마다와 연인 관계인데, 로베르토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엘레나의 남편이 사망한 후 리타는 성당 측의 배려로 일자리를 얻게 된다. 다행히 리타의 벌이로 둘은 단기간 렌트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리타는 성당 종탑에 목을 맨 체 사망했다. 경찰은 리타의 사망을 자살로 여기고 사건을 종결하지만, 엘레나는 리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리타는 절대 성당 종탑에 목을 멜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날 절대 성당에 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날은 비가 왔기 때문이다. 리타는 어렸을 때부터 번개를 무서워했다. 성당의 첨탑이 피뢰침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리타는 비 오는 날 절대 성당 근처에 가지 않았다. 성당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비 오는 날 출근을 기피했던 리타가 비 오는 날. 그것도 성당 종탑에 목을 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리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기독교에서 자살은 용서받지 못할 큰 죄라는 사실을 리타가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리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엘레나는 딸 리타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파헤치고자 결심하지만,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그녀였기에 쉽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도울, 자신과 리타에게 빚을 지고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이사벨이었다. 그녀는 엘레나와 리타를 도와야 한다. 꼭!

과거 이사벨은 임신을 한 채 거리를 거닐다가 엘레나 모녀를 만난다. 낙태를 생각하고 있던 그녀를 강하게 막은 것은 리타였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리타는 그녀의 낙태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낳게 된다. 리타와 엘레나는 아이의 목숨을 살렸고, 이사벨을 죄로부터 구했다. 그렇기에 이사벨은 엘레나 모녀를 도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사벨은 이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엘레나의 생각대로 리타의 죽음의 이유를, 아니 리타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데 도움을 줄까?

책을 읽어갈수록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범인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지만 생각지 못한 범인에 가닿게 되니 말이다. 또한 엘레나 부녀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사벨의 과거 이야기가 드러난다. 과연 그들이 이사벨의 낙태를 막은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을까?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병을 가진 본인도 힘들지만, 간호를 하는 가족들 또한 고생을 한다는 말이다.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엄마를 돌보며, 장애를 가진 연인과 함께 하는 미래의 삶에 대해 리타는 과연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과연 희망찬 장밋빛 미래가 그려졌을까? 그녀의 선택을 무조건 부당하다고 매도할 수 있을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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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고길동을 부탁해 둘리 에세이 (열림원)
아기공룡 둘리.김수정 원작, 김미조 엮음 / 열림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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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마주한 둘리에서 가장 싫었던 캐릭터를 꼽자면 단연 고길동이였다. 군식구라며 둘리를 구박하고, 둘리가 데리고 온 또치와 도우너 그리고 옆집 총각 마이콜에게 늘 쓴소리를 내뱉었으니 말이다. 전혀 좋아할 수 없었던 고길동이라는 캐릭터가 나이가 드니 새롭게 다가왔다. 묘하게 공감이 가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하니 말이다. 나도 어른이 되었나 보다. 외벌이로 4식구뿐 아니라 조카인 희동이 그리고 어디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군식구들(둘리, 또치, 도우너 등)까지 먹여살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고길동씨의 수고와 노고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마워한 적 없는 캐릭터들 앞에 고길동씨의 짜증과 화는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고길동씨가 만년 과장이었다는 사실도,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 같다. 직장에서는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들조차 자신보다 직급이 높아지는데, 만년 과장인 신세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렇다고 집에 들어오면 마음 편하게 쉴 만한 공간도 없고, 둘리 같은 군식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쳐 대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길동씨는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쓴소리를 해대고 나가라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 둘리는 기다리는 그 마음을 보면 고길동씨도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가장이 아니었을까?

앞선 『둘리, 행복은 가까이 있어』가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의기소침해져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라면, 『둘리, 고길동을 부탁해 』는 그중에서도 어른의 삶의 팍팍함과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는 어른 아이와 가장들에게 주는 책 같다. 그래서 고길동 속에는 구체적인 위로의 글들이 눈에 띈다. 특히 악역으로 분류되었던 고길동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의 수고에 대한 잔잔한 위로의 글들이 많다. 사회생활의 어려움, 어른으로의 어려움, 가장으로의 어려움이 곳곳에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글이 정말 많았는데, 그중 열심히 산다는 건이라는 제목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 사회는 참 "열심히"에 목을 매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일에는 열심이지만, 쉬는 것은 잘못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참 많다.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를 때도 많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이런 위로를 선사한다. 열심히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권리도 생긴다고 말이다. 꿈꿀 수 있는 권리, 즐거울 권리, 떠날 수 있는 권리... 열심히 의무를 수행했듯이, 권리 역시 열심히 찾아보라고... 그 권리 속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으라고 말이다.

40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가장의 역할을 담당했던 고길동씨. 때론 얄밉기도 하고, 유난히 둘리와 티격태격할 때도 많았지만 그에게 사랑과 연민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아예 둘리 일행을 집에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표현에 서툴렀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고길동씨는 아빠이자 가장 그리고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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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행복은 가까이 있어 둘리 에세이 (열림원)
아기공룡 둘리.김수정 원작, 김미조 엮음 / 열림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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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주하는 둘리와 친구들이라 그런지 무척 반가웠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둘리가 올해로 40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둘리와 나는 정말 친구였나 보다. 나이까지 같으니 말이다. 몇 년 전 한참 옛 추억의 만화를 바탕으로 하는 에세이가 봇물처럼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둘리는 도통 만나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런 큰 그림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둘리 시리즈는 총 2권인데, 이 책의 화자는 둘리다. (참고로 고길동 책의 화자는 도우너였다.)

우연한 계기로 서울까지 떠내려온 빙하 속의 아기공룡 둘리는 고길동 집에 군식구가 되어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며 꿋꿋하게 고길동씨의 구박을 견디며 산다. 이 책 속에는 그런 둘리의 40년간의 속내가 담겨있다고 해야 할까? 위로와 힘이 되는 글이 상당히 담겨있다. 둘리를 비롯하여 희동이나 마이콜, 도우너 등의 캐릭터들이 함께 등장하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둘리 삽화가 담겨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짤막한 위로의 글이 담겨있다.

마음에 와닿는 글이 참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기억이 남는다. 투명 인간에 대한 글이었는데, 많이 공감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늘 의식하며 사는 편이다. 잘 몰랐는데, 내 언어생활을 돌아보니 내가 자주 하는 말이 "내가 ***행동을 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혹은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남들이 뭐라고 그러겠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과연 우리의 친구 둘리는 내게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그 시선의 중심을 타인에서 나로 옮기라고 조언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는 도망갈 수 있지만, 내 시선으로부터는 도망갈 수 없으니 그저 내 시선으로 나를 보듬아주고 돌아봐주라고 말이다.

책 속에 담긴 글들은 하나같이 길지 않다. 4~5줄 정도의 짧은 글이다. 여러 장의 삽화가 아니라 캐릭터가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 정도의 그림 하나라서 그림만 봤을 때는 정확히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그럴 땐 글을 한번 읽어보자. 그리고 다시 그림을 보면 왠지 모르게 묘하게 이해가 된다.

강산이 4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지났고,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 사이 어른이 되었다. 만화 속 둘리는 변한 게 없지만 난 참 많이 변했다. 어렸을 때는 큰 웃음을 줬던 둘리는 여전히 내게 무언가를 준다. 어렸을 때처럼 공감하며 웃지 못할 것을 예상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따뜻한 위로의 말들을 건넨다. 아마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른지라, 그 위로의 내용 어디가 울림으로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마주한 둘리는 반갑고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생긴 아쉬움이 있다면, 둘리 속 실제 만화가 좀 더 많이 담겨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캐릭터도 반갑지만, 그 시절 만화가 좀 더 많이 담겨있었으면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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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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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라는 말이 떠올랐다.

연극 무대나 영상 분야에서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로 페퍼라는 사람과 관련이 있을 텐데,

아무튼 조명과 유리를 사용해 다른 곳에 있는 물체를 관객 앞에 보여주는 기술이다.

원래 거기 말고 다른 곳에 숨겨진 물체가 마치 거기 있는 것처럼 등장한다.

다작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만났다. 페퍼스 고스트. 제목을 읽어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고스트는 귀신인데... 그럼 귀신이 등장하나? 책 중반부를 넘어갔을 때 제목의 뜻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뜻이 그때 등장하는 이유 또한 이해가 간다. 그 장면에서야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알았다.

책 속에는 두 가지 이야기,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현실 속과 소설 속의 주인공이다. 중학교 국어교사 단 지사토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전해진 능력인데(아버지 역시 아버지로부터 전해 받은 능력이다.), 일명 선공개 영상이라는 이름의 능력이다. 어떤 상황이던지, 비말이 튄 상대방의 다음날 일어날 하이라이트 상황이 단에게 보인다. 10초일 수도, 3분일 수도, 10분일 수도 있다. 이 능력에 대해 들은 것은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날이었다. 자신이 겪었기에 조언해 줄 수 있었던 아버지는 스스로 무엇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을 유언과 같이 남긴다. (아버지는 자신이 다음 날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 선공개 영상을 통해서 말이다.) 두 명의 학생과 대화를 나눴던 단은 그중 한 학생의 선공개 영상을 보게 된다. 신칸센 열차 탈선사고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장면이었다. 고민을 하던 단은 사토미 다이치에게 연락을 한다. 자신의 친구인 점술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는 변명을 하면서 말이다. 다음 날 정말 신칸센 열차 탈선사고가 일어나고, 학생과 외할머니는 무사히 사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학생의 사토미의 아버지인 사토미 핫켄이 단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우연히 사토미 핫켄을 마주한 단은 그가 신칸센 사건의 배후로 단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털어놓는다. 얼마 후, 단은 사토미 다이치로부터 아빠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사토미 핫켄과 같은 동우회 활동을 하고 있다는 노구치 하야토와 나루미 효코로 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한편, 단 지사토의 반 학생 중 후토 마리코는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국어 교사이자 담임인 단에게 자신의 소설을 건넨다. 소설 속에는 고양이를 잡아 잔인하게 괴롭히고 죽이는 화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고지모(고양이를 지옥에 보내는 모임)를 보고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대신해 복수를 하는 2인조 러시안 블루와 아메쇼가 등장한다. 2인조라 하지만, 성격은 판이하게 다른 둘은 10억 엔의 돈을 받고 과거의 고지모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이 고양이에게 한 짓을 똑같이 해주는 복수를 대행하고 있다. 과거 고지모 후원자이자, 추잡한 인터넷 방송과 가상화폐로 큰돈을 번 바쓰모리 바쓰타로에게 복수를 하러 가던 날, 그들보다 앞서 바쓰타로가 납치된다. 가까스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바쓰타로를 다시 덮치는 2인조는 바쓰타로에게 복수를 가하던 중, 자신을 납치한 사람 중 한 명이 고지모 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데...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접점을 통해 얽히게 된다. 사실 중반부를 지날 때까지 왜 작가가 이 두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놨는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작가는 이 모든 것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대단한 반전! 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자신의 능력을 그냥 넘기지 않고 타인을 돕는 데 사용하는 단.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만,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무력감을 느끼는 단의 모습과 고지모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 스스로 똑같은 방법으로 당함으로 인해 복수를 가하는 2인조 그리고 인질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방송에서 입을 잘못 놀려서 인질 전부를 죽게 만든 방송인과 그 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동우회 인물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자아냈다. 누군가는 더 많이 구하지 못함에 안타까움을 가진 반면, 누군가는 자신이 지은 잘못에 대해 뉘우치기는커녕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대는 모습이 교차되면서 씁쓸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이한 설정 중 또 하는 사토미 핫켄과 단 지사토의 첫 만남에서부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등장하는데, 그 또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힌트를 주자면 영원회귀설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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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클래식 라이브러리 7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현선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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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유명한 고전 중 하나다. 이해하기 어렵고, 얇은 분량에 비해 진도가 술술 안 나가는 다른 고전소설에 비해 꽤 흥미롭게 읽히기도 했다. 클래식 라이브러리 7번째 책으로 만난 인간 실격 안에는 두 작품이 들어있는데, 표제작인 인간실격과 유고집이자 미완성 작품인 굿바이 이렇게 두 편이 담겨있다. 2년 전 한번 읽은 기억이 있는지라 인간 실격의 내용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어떤 부분이 자신의 삶을 옮긴 것일까 궁금했었다. 책 말미의 해설을 읽다 보니, 마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상당 부분 닮아 있었다.

가령 주인공인 오바 요조가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려움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비롯하여 좌익이라 부르는 마르크스 주의에 빠져있었던 것, 알고 지냈던 여성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만 살아남고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것 등이 실제 작가의 삶과 닮아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자신의 집안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 등의 감정이 인간 실격을 비롯한 여러 작품으로 담겨있는 것 같다.

다시 마주한 인간 실격을 읽으며 주인공 요조는 참 여린 심성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 대한 공포증이라 보였던 감정들이 실제로는 자신과 다름을 대놓고 인정하기 힘들었기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겉과 속이 다른 모습들이나 아버지의 지인들이 오바 요조 앞에서 해낸 불평과 달리 아버지 앞에서는 칭찬 일색인 모습들을 보며 낯설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나 타인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어려움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오히려 타인을 웃기기 위해 어릿광대 역할을 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었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기자인 시즈코의 도움을 받아 그와 동거하며 딸인 시게코를 돌볼 때의 이야기였다. 시게코를 진짜 딸처럼 생각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어느 날, 시게코로 부터 진짜 아빠를 갖고 싶다는 말을 들은 요조는 큰 상처를 받는다. 나라면 그동안 내가 너에게 그런 아빠가 아니었냐고 물을 만도 한데 요조는 집을 떠나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집 앞에서 시게코와 시즈코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걸 보고 그 길로 아예 집을 떠나게 된다. 자신이 그들의 행복을 빼앗을까 봐, 그들의 행복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때론 타인과 나를 속이며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갈 배짱이 없던 요조의 삶을 마주하며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사실 누구나 그런 거짓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누구나 스스로를 대할 때와 타인을 대할 때 쓰는 가면이 있을 테니 말이다. 요조는 타인 앞에서의 가면을 쓴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가졌지만, 누구도 요조에게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 오히려 요조는 어떤 면에서는 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사회생활을 20년 가까이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게 인간관계다. 아마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고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만든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이 주인공 요조와 겹쳐져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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