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유명한 고전 중 하나다. 이해하기 어렵고, 얇은 분량에 비해 진도가 술술 안 나가는 다른 고전소설에 비해 꽤 흥미롭게 읽히기도 했다. 클래식 라이브러리 7번째 책으로 만난 인간 실격 안에는 두 작품이 들어있는데, 표제작인 인간실격과 유고집이자 미완성 작품인 굿바이 이렇게 두 편이 담겨있다. 2년 전 한번 읽은 기억이 있는지라 인간 실격의 내용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어떤 부분이 자신의 삶을 옮긴 것일까 궁금했었다. 책 말미의 해설을 읽다 보니, 마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상당 부분 닮아 있었다.
가령 주인공인 오바 요조가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려움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비롯하여 좌익이라 부르는 마르크스 주의에 빠져있었던 것, 알고 지냈던 여성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만 살아남고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것 등이 실제 작가의 삶과 닮아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자신의 집안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 등의 감정이 인간 실격을 비롯한 여러 작품으로 담겨있는 것 같다.
다시 마주한 인간 실격을 읽으며 주인공 요조는 참 여린 심성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 대한 공포증이라 보였던 감정들이 실제로는 자신과 다름을 대놓고 인정하기 힘들었기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겉과 속이 다른 모습들이나 아버지의 지인들이 오바 요조 앞에서 해낸 불평과 달리 아버지 앞에서는 칭찬 일색인 모습들을 보며 낯설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나 타인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어려움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오히려 타인을 웃기기 위해 어릿광대 역할을 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었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기자인 시즈코의 도움을 받아 그와 동거하며 딸인 시게코를 돌볼 때의 이야기였다. 시게코를 진짜 딸처럼 생각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어느 날, 시게코로 부터 진짜 아빠를 갖고 싶다는 말을 들은 요조는 큰 상처를 받는다. 나라면 그동안 내가 너에게 그런 아빠가 아니었냐고 물을 만도 한데 요조는 집을 떠나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집 앞에서 시게코와 시즈코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걸 보고 그 길로 아예 집을 떠나게 된다. 자신이 그들의 행복을 빼앗을까 봐, 그들의 행복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때론 타인과 나를 속이며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갈 배짱이 없던 요조의 삶을 마주하며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사실 누구나 그런 거짓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누구나 스스로를 대할 때와 타인을 대할 때 쓰는 가면이 있을 테니 말이다. 요조는 타인 앞에서의 가면을 쓴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가졌지만, 누구도 요조에게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 오히려 요조는 어떤 면에서는 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사회생활을 20년 가까이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게 인간관계다. 아마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고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만든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이 주인공 요조와 겹쳐져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