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 고길동을 부탁해 둘리 에세이 (열림원)
아기공룡 둘리.김수정 원작, 김미조 엮음 / 열림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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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마주한 둘리에서 가장 싫었던 캐릭터를 꼽자면 단연 고길동이였다. 군식구라며 둘리를 구박하고, 둘리가 데리고 온 또치와 도우너 그리고 옆집 총각 마이콜에게 늘 쓴소리를 내뱉었으니 말이다. 전혀 좋아할 수 없었던 고길동이라는 캐릭터가 나이가 드니 새롭게 다가왔다. 묘하게 공감이 가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하니 말이다. 나도 어른이 되었나 보다. 외벌이로 4식구뿐 아니라 조카인 희동이 그리고 어디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군식구들(둘리, 또치, 도우너 등)까지 먹여살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고길동씨의 수고와 노고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마워한 적 없는 캐릭터들 앞에 고길동씨의 짜증과 화는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고길동씨가 만년 과장이었다는 사실도,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 같다. 직장에서는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들조차 자신보다 직급이 높아지는데, 만년 과장인 신세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렇다고 집에 들어오면 마음 편하게 쉴 만한 공간도 없고, 둘리 같은 군식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쳐 대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길동씨는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쓴소리를 해대고 나가라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 둘리는 기다리는 그 마음을 보면 고길동씨도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가장이 아니었을까?

앞선 『둘리, 행복은 가까이 있어』가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의기소침해져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라면, 『둘리, 고길동을 부탁해 』는 그중에서도 어른의 삶의 팍팍함과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는 어른 아이와 가장들에게 주는 책 같다. 그래서 고길동 속에는 구체적인 위로의 글들이 눈에 띈다. 특히 악역으로 분류되었던 고길동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의 수고에 대한 잔잔한 위로의 글들이 많다. 사회생활의 어려움, 어른으로의 어려움, 가장으로의 어려움이 곳곳에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글이 정말 많았는데, 그중 열심히 산다는 건이라는 제목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 사회는 참 "열심히"에 목을 매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일에는 열심이지만, 쉬는 것은 잘못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참 많다.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를 때도 많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이런 위로를 선사한다. 열심히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권리도 생긴다고 말이다. 꿈꿀 수 있는 권리, 즐거울 권리, 떠날 수 있는 권리... 열심히 의무를 수행했듯이, 권리 역시 열심히 찾아보라고... 그 권리 속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으라고 말이다.

40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가장의 역할을 담당했던 고길동씨. 때론 얄밉기도 하고, 유난히 둘리와 티격태격할 때도 많았지만 그에게 사랑과 연민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아예 둘리 일행을 집에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표현에 서툴렀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고길동씨는 아빠이자 가장 그리고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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