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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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기의 뒤를 이어가는 아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숨겼지만 이제 아들의 신념은 아버지가 지켜주어야 했다.

구면인 작가다. 책 표지 가득 꽃잎과 낙엽 그리고 제목을 보고 나니, 전 작에서도 꽃말을 비롯한 꽃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책 제목인 화녕이 여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걸 알았는데, 여기에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 화녕의 화가 당연히 꽃 화(花)일 거라 생각했는데, 불화(火)였다니...! 화녕은 불꽃이라는 뜻이다.

화녕가의 배경은 일제강점기의 경성이다. 남초시댁 도련님인 인서의 집안 분위기로 책이 시작된다. 집의 가장 어른인 인서의 할머니(실제로는 새 할머니)인 서 씨 부인이 인서에게 내릴 벌을 아범과 무명댁에게 내린다. 매 타작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아범을 보고 몸 둘 바를 모르는 인서. 그런 인서는 그날도 아범과 무명 댁의 방을 찾는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모습(반 상이 한 방에 있는)을 안 김인예는 서 씨 부인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화녕은 7년 전 사건으로 아버지 재후를 잃었다. 재후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발각되어 불령선인으로 처형을 당한 것이다. 화녕을 키워준 유모 채단과 딸 화녕도 목숨을 잃을 지경에 처했으나, 워낙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닌 채녕에게 헌병대 겐지 스바로가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하면 유모와 자신은 살려주겠다는 말에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가 처형되기 전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화녕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쪽지를 읽은 후,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살아남아서 그때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살던 집을 빼앗기고 동네에서는 화냥년이라는 따돌림을 당하는 화녕은 일주일의 한 번. 자신의 집을 차지한 헌병대장 스바로를 찾아가 노래를 부르기로 계약을 맺는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현성이다. 사실 현성의 본명은 겐지 킨타로다. 현성은 스바로의 아들이다. 현성은 일본인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않고 늘 헌병대장으로 부른다. 그리고 현성은 화녕에게 큰 빚이 있다. 재후의 처형뿐 아니라 3년 전, 화녕을 욕보이려는 스바로에 맞서 은장도로 자신의 입을 찢은 화녕을 업고 병원으로 갔던 것이 바로 현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성은 화녕이 일주일의 한 번 자신의 집으로 오는 날은 여러 핑계를 대고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현성은 인서와 막역한 사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이 울고 있을 때 사탕을 줬던 그날 이후로 인예를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인예는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서 씨 부인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인서의 짝으로 이 집에 들어왔다는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그래서 인서가 화녕에게 관심을 보이고 가까워지는 것을 고깝게 생각한다. 천한 기생처럼 노래를 팔아 사는 그녀가 더럽고 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서가 그녀에게 마음을 두자,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화녕을 해치려고 일을 꾸미는데...

인서의 할아버지는 죽기 직전, 인서의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부모가 인서의 근처에 살아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부모를 찾아낸 인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일을 행했던 서 씨 부인에게 복수를 한다. 또한 자신과 뜻을 같이했던 화녕의 아버지 재후를 대신해, 화녕을 지키고자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참 아팠다. 인서와 화녕의 감정선도 그렇지만, 시대상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가지려는 스바로와 인예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보고 몸서리가 처졌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결국 스러져가는 인서와 그런 인서를 가슴에 품고 행동하는 화녕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네들이 서로를 얼마큼 아꼈는지가 정제된 행동과 말로 표현되어 있어서 더 여운이 남는 것 같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좀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우리 할아버지도 비슷한 시기에 옥고를 치렀던 독립유공자 시기 때문이다. 또한 광복절이 얼마 안 지난 시점이기에 좀 더 선명하게 그리며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펼쳐낼 줄 알았던 인서와 화녕의 이야기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버지는 자기의 뒤를 이어가는 아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숨겼지만 이제 아들의 신념은 아버지가 지켜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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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 기도를 배우다 - 다시 새롭게 드리는 주기도문 예수께 배우다
김건우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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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에 비추어 우리의 기도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이기적인 기도, 아주 폭이 좁은 기도의 단계에 머무를 위험이 큽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고 넓어지지 못하면,
생각과 마음도 커지고 넓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p.48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웠다. 열성적인 사모였던 작은할머니 덕분에 십계명을 비롯하여 성경의 각 말씀들을 반강제(?) 적으로 외우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된 것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 구절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텍스트가 아닌 실제로 만나고 나니, 아무 의미 없이 주문 외우듯 매 예배시간과 마지막 시간에 읊어대던 말씀의 가치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니 또 까먹었다.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은 내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접했을 때 마음은 반반이었다. 다시 말씀으로 새롭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반, 시간이 지나면 또 똑같아질 텐데 하는 마음 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알려진 주기도문. 과연 그 안에 어떤 깊이가 담겨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한동안은 아이와 같이 유치부 예배를 드렸고 아이들이 조금 크고 혼자 예배실을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비로소 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어른들이 결혼하고서는 처녀 때 믿음으로 버틴다는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핑계가 될 수 있겠지만, 예배도, 기도도, 봉사도 어느 하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후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집에 가서 쉬고 집안일하는 게 더 편해진 내 모습을 보며 위기감을 느낄 때가 참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주기도문 안에는 당장 내 삶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도 있지만, 공동체를 위한, 타인을 위한 기도도 담겨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의 지경이 작다는 것을 아셨기에 몸소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주기도문의 처음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책에서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유능한 분이신데 왜 굳이 당신의 이름을 높이 시기를 원하셨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저자는 현 세대를 통해 그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는 "개독교"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크리스천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욕은 하나님께로 간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려면 우리들의 삶이 그리스도인다워야 한다는 사실.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불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주기도문을 할 때마다 생각해 볼 대목이다.

저자는 주기도문의 각 부분을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모든 부분이 가슴에 와닿고,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앞으로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한 부분만 더 이야기하자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책에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의 부분이다.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우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당연히 "하나님"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알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대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단연 "항복"이었다. 하지만 항복은 절대 쉽지 않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지만, 마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처럼 세상에서 살다 보면 언제 그런 말씀을 들었는가 싶을 정도로 다 잃고 일주일은 보낼 때가 많다. 말씀을 듣고 제대로 살아야겠다 싶지만, 당장 내가 손해 보는 상황에 처하면 말씀을 접어두고 때론 모르쇠로 일관할 때도 많다. 우리의 자아는 복종 시켜야 할 정도로 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나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에게 항복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그뿐만 아니라 점점 작아지는 하나님이 아니라, 점점 커지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각 구절구절이 너무 와닿았고, 무서웠다. 아는 만큼 내가 삶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도 컸다. 청년부 시절 목사님이 하셨던 설교의 대목이 오랜만에 기억났다. 부담감은 곧 사명이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부담감이 있다.
그동안 너무 쉬운, 내가 편한 삶에 익숙해져서 다시금 말씀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이 절로 부담으로 다가온다.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그건 크리스천의 삶이 아니라는 것. 내 삶으로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 그래서 기독교인의 삶은 절대 쉽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읽는 중, 유년부에서 주기도문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정말 신기한 타이밍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주기도문을 만들면서, 주기도문 안에 담긴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그리고 이 책 안에 주기도문을 넣어두었다. 잊히기 전에 자주 들여다보며 도전을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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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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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은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다. 나환자는 나병, 즉 한센병을 말한다. 성경 시대에 나병은 신의 저주를 받은 걸 의미해 마을에서 떨어져 나와 별도의 구역에 살아야 했는데, 이 시대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센병 환자를 보고 재수가 없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이야 예방약과 조기 완치 등 치료약이 개발되었지만, 우리나라에도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소록도)이 있었다.



조수였던 마크 수사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자원해서 1년간 세인트자일스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크 수사에게 가져다줄 약을 챙기는 캐드펠 수사는 뭔가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좋지 않은 예감은 왜 그렇게 잘 들어맞는 것일까? 약을 챙겨 마크 수사를 만나던 중, 한 무리의 행렬을 마주하게 된다. 수도원에서 예식을 치를 혼례 행렬이었다. 60이 가까운 나이의 휴언 드 돔빌 남작이 신랑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나환자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난폭하게 굴었다. 그리고 이후 지나가는 신부는 신랑의 손주 뻘 밖에 안되는 여인으로 이베타 드 마사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결혼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신랑의 돕는 역할로 수도원에 온 조슬린 루시를 비롯한 3명의 남성들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그중 조슬린은 이베타와 연인관계였다. 왜 이베타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나이 많은 남작과 결혼을 하려는 것일까?



이베타의 삼촌인 고드프리드 피카르 경과 숙모인 애그니스 피카르는 걱정이 앞섰다. 이제 내일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베타를 결혼시키는데, 이베타가 허튼짓을 해서 결혼식을 망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사방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수도원 안에 있기에 고드프리드는 걱정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애그니스는 찜찜함을 버릴 수 없었다.



조수인 오스윈 수사는 여기저기 비는 구석이 많다. 이번에도 뜨거운 솥을 찬물에 넣어서 솥이 깨지는 바람에 애써 만든 약재를 다 버리게 생겼다. 오히려 솥이 깨진 걸 알았냐는 물음으로 캐드펠 수사를 당황하게 만드는 오스윈 수사 덕분에 캐드펠 수사는 늦은 시간까지 작업장에서 야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야근 덕분에 둘이 밀회를 나누는 장면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소란이 인다. 조슬린과 돔빌 남작 사이의 일이었는데, 돔빌 남작은 결혼식을 위해 준비한 목걸이를 조슬린이 훔쳐 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목걸이가 조슬린에게서 나온다. 그렇게 전날 밤 신랑인 돔빌남작이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처음부터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애정 없는 결혼이 진행된다. 이번에도 사건 전에 등장인물들을 마주했던 캐드펠 수사이기에, 사건을 풀어나가는 역할을 감당한다. 그리고 나병환자이자 남작의 채찍을 맞았던 라자루스 노인의 이미지가 처음부터 캐드펠을 통해 인상 깊게 남았었는데, 역시나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흥미를 자아냈던 것 같다.



이렇게 5권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이 넘치는 캐드펠 수사의 다음 이야기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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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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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은 성 베드로 축일이다.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물러난 자리에 부수도원장인 로버트 페넌트가 아닌 외부에서 온 라둘푸스가 수도원장이 된다. 그는 상당한 원리원칙주의자로 성베드로 성바오로 수도원의 이름을 줄여 쓰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이제 얼마 후면 성 베드로 탈옥 축일 행사가 진행된다. 성 베드로가 헤롯 왕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 천사가 쇠사슬을 풀어주어 탈옥한 것을 기리는 축일이다. 축일장이 열리는 사흘 동안 시내의 가게는 영업을 할 수 없으며, 에일과 포도주가 아닌 다른 음료는 판매가 금지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기에 통행세만 해도 엄청나지만, 상인회는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특권은 수도원에 있기 때문이다. 행사에 대한 대가로 수도원은 38실링을 납부하는데, 상인회는 이에 대해 불만을 내뱉는다. 전편을 읽은 독자는 알겠지만, 모드 황후와 리처드 백작 사이의 왕권을 놓고 전쟁이 일어났다. 수도원이 속한 슈루즈베리성은 모드 황후 편을 들었고, 전쟁의 승리는 리처드에게 돌아간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성을 복구하기 위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자금을 마련한 방도가 딱히 없던 터라 시장을 비롯한 상인회 길드의 사람들은 수도원장에게 벌어들이는 수익에 1%만 기부를 해달라고 하지만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거부한다.

농장을 돌보던 중 반가운 손님이 등장한다. 휴 베링어와 그의 아내가 된 얼라인 시워드였다. 그런데, 눈에 띌 정도로 얼라인의 배가 불렀다. 임신을 한 것이다. 2권부터 막역한 사이가 된 캐드펠 수사와 베링어 부부는 인사를 나눈다. 역시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축일장을 앞둔 7월 31일, 이번에도 웨일스어 통역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가 불려간다. 그는 로드리 압 휴라는 상인으로 양모와 벌꿀, 벌꿀주 등의 많은 물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를 도와 자리를 마련하도록 돕고 있던 중, 이미 한번 마찰을 빚었던 시장의 아들인 필립 코비저가 도발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장사 준비를 하는 브리스틀의 토머스는 필립의 말에 대해 화를 낸다. 필립이 토머스의 옷자락을 잡는 순간, 자신을 공격하는 걸로 착각한 토머스는 필립에게 사정없이 지팡이로 내리쳐서 중상을 입힌다. 이를 시작으로 싸움이 시작된다. 토머스의 조카인 에마 버놀드가 토머스를 말려 겨우 끔찍한 지경에 이르는 걸 막아낸다. 이 일로 싸움에 휘말린 마을 청년 17명이 잡혀가지만, 주동자인 필립은 자리를 빠져나온다.

한편, 늦은 밤 소란이 일어난다. 토머스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휴 베링어와 무장한 부하 여섯이 영주 이보 코르비에르와 함께 토머스를 찾아 나선다. 다음날 아침 9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나체로 발견된 그는 왼쪽 견갑골 밑에 예리한 단검이 뒤에서 심장까지 찌른 채 발견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배를 뒤진 자국까지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토머스를 죽이고 배를 뒤진 것일까?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은 전날 토머스와 난투극을 벌이고 사라진 필립이다. 과연 필립이 정말 토머스를 죽인 걸까?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꽤나 촘촘하다. 반전이라면 반전일법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대놓고 범인인 척하는 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의 탐욕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과거나 현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끔찍한 일까지 벌이는 것을 보면 가장 무섭고 악한 건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 역시 진범을 찾는 것,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원인을 찾는 것과 함께 토머스의 외조카인 에마와 영주 이보 그리고 시장의 아들 필립의 삼각관계를 풀어가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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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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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의 제목은 수도사의 두건이다. 사건을 풀어가는 주인공의 직업이 수사기도 하고,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배경이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이기 때문에 시리즈 중 가장 궁금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은 캐드펠 수사가 만든 독약의 이름이다. 그것도 맹독성 독약이다. 시리즈를 읽어왔다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캐드펠 수도사는 수도원에서 허브를 비롯한 식물을 키우는 일을 오래도록 해왔다. 일이 고되기에 가끔은 그를 돕는 일손이 필요한 참이었는데, 수련사 마크가 그를 도와 일을 하고 있었다. 2권에 등장했던 모드 황후와 스티븐 백작의 전쟁에서 스티븐 백작이 승리를 거두고 왕이 된다. 권력을 장악한 스티븐 왕은 모드 황후 편에 섰던 슈루즈베리에게 앙심을 품은 것일까? 슈루즈베리에 있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수도원장 해리버트는 교황사절 회의에서 재임명을 받기 전까지 수도원장직이 정지되는 상황에 처하고 소환된다. 이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부수도원장인 로버트 페넌트다. 현 2인자인 그가 수도원장에 가장 유력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열심히 약초를 재배하는 캐드펠 수사는 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 돈도 나이도 많은 말릴리 영주가 전 재산을 수도원에 기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나이가 들어 수도사가 되는 경우는 당시에는 낯선 광경은 아니다. 캐드펠 역시 40세가 넘어서 수도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약초 재배뿐 아니라 웨일스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능력과 튀지 않고 언제나 중도를 지키는 성품 덕분에 캐드펠은 적이 없는 편이다.

보넬 부인의 심부름으로 요리에 쓸 허브를 얻으러 왔다는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그의 이름을 앨프릭이었는데, 그는 앞에서 말한 부유한 영주의 하인이었다. 세이지와 비질을 얻어 돌아간 앨프릭. 그로부터 얼마 후, 끔찍한 소식이 전해진다. 음식을 먹은 영주 보넬이 고통을 호소하고 쓰러졌다는 이야기였다. 급하게 그곳으로 향한 캐드펠은 이상한 향을 맡게 된다. 자신이 키운 모든 허브와 그것으로 만든 약의 향을 맡기만 해도 아는 그였기에, 급사한 영주가 먹은 게 그가 만든 독약인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사실 수도사의 두건은 관절염의 특효약인 기름으로, 투구꽃이 주 재료이다. 상처 부위에 바르면 효과가 있지만, 마실 경우 치명적인 독이 된다. 죽은 영주 옆에 떨고 있는 보넬 부인을 보게 되는 캐드펠. 그녀가 과거 자신의 약혼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책의 초반에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투구꽃으로 만든 기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약을 다룬 후에는 꼭 손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그냥 넘겼는데 왜 언급을 했는지는 얼마 후 알 수 있다. 이번 작품에는 영주의 사망에 얽힌 사건을 풀어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캐드펠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수도원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이야기도 한층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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