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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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기의 뒤를 이어가는 아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숨겼지만 이제 아들의 신념은 아버지가 지켜주어야 했다.

구면인 작가다. 책 표지 가득 꽃잎과 낙엽 그리고 제목을 보고 나니, 전 작에서도 꽃말을 비롯한 꽃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책 제목인 화녕이 여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걸 알았는데, 여기에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 화녕의 화가 당연히 꽃 화(花)일 거라 생각했는데, 불화(火)였다니...! 화녕은 불꽃이라는 뜻이다.

화녕가의 배경은 일제강점기의 경성이다. 남초시댁 도련님인 인서의 집안 분위기로 책이 시작된다. 집의 가장 어른인 인서의 할머니(실제로는 새 할머니)인 서 씨 부인이 인서에게 내릴 벌을 아범과 무명댁에게 내린다. 매 타작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아범을 보고 몸 둘 바를 모르는 인서. 그런 인서는 그날도 아범과 무명 댁의 방을 찾는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모습(반 상이 한 방에 있는)을 안 김인예는 서 씨 부인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화녕은 7년 전 사건으로 아버지 재후를 잃었다. 재후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발각되어 불령선인으로 처형을 당한 것이다. 화녕을 키워준 유모 채단과 딸 화녕도 목숨을 잃을 지경에 처했으나, 워낙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닌 채녕에게 헌병대 겐지 스바로가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하면 유모와 자신은 살려주겠다는 말에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가 처형되기 전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화녕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쪽지를 읽은 후,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살아남아서 그때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살던 집을 빼앗기고 동네에서는 화냥년이라는 따돌림을 당하는 화녕은 일주일의 한 번. 자신의 집을 차지한 헌병대장 스바로를 찾아가 노래를 부르기로 계약을 맺는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현성이다. 사실 현성의 본명은 겐지 킨타로다. 현성은 스바로의 아들이다. 현성은 일본인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않고 늘 헌병대장으로 부른다. 그리고 현성은 화녕에게 큰 빚이 있다. 재후의 처형뿐 아니라 3년 전, 화녕을 욕보이려는 스바로에 맞서 은장도로 자신의 입을 찢은 화녕을 업고 병원으로 갔던 것이 바로 현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성은 화녕이 일주일의 한 번 자신의 집으로 오는 날은 여러 핑계를 대고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현성은 인서와 막역한 사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이 울고 있을 때 사탕을 줬던 그날 이후로 인예를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인예는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서 씨 부인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인서의 짝으로 이 집에 들어왔다는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그래서 인서가 화녕에게 관심을 보이고 가까워지는 것을 고깝게 생각한다. 천한 기생처럼 노래를 팔아 사는 그녀가 더럽고 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서가 그녀에게 마음을 두자,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화녕을 해치려고 일을 꾸미는데...

인서의 할아버지는 죽기 직전, 인서의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부모가 인서의 근처에 살아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부모를 찾아낸 인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일을 행했던 서 씨 부인에게 복수를 한다. 또한 자신과 뜻을 같이했던 화녕의 아버지 재후를 대신해, 화녕을 지키고자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참 아팠다. 인서와 화녕의 감정선도 그렇지만, 시대상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가지려는 스바로와 인예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보고 몸서리가 처졌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결국 스러져가는 인서와 그런 인서를 가슴에 품고 행동하는 화녕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네들이 서로를 얼마큼 아꼈는지가 정제된 행동과 말로 표현되어 있어서 더 여운이 남는 것 같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좀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우리 할아버지도 비슷한 시기에 옥고를 치렀던 독립유공자 시기 때문이다. 또한 광복절이 얼마 안 지난 시점이기에 좀 더 선명하게 그리며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펼쳐낼 줄 알았던 인서와 화녕의 이야기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버지는 자기의 뒤를 이어가는 아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숨겼지만 이제 아들의 신념은 아버지가 지켜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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