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세계사 365 - 역사책 좀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요나스 구세나에르츠.벤저민 고이배르츠.로랑 포쉐 지음, 정신재 옮김 / 정민미디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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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참 365 일력 같은 책들이 공전의 히트를 거두었다. 시작은 매일매일 상식을 채워주는 한 페이지 분량의 책 들이었고,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일력처럼 매일 넘기면서 보는 상식이나 단어, 한자어 등 아이들이 공부하기 좋게 만들어진 책이었다. 


  뉴스의 한 꼭지로 과거의 오늘 있었던 일들을 영상으로 그린 세계의 역사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이 책이 그 영상의 책 버전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가십 성보다는 역사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이 있다. 매일매일 오늘 일어난 세계사 속 이야기들이 그려지고, 해당하는 사진도 담겨있는데 분량은  딱 한 페이지다. 길면 부담되는데, 한 페이지 분량이기에 다 읽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물론 암기하고 시험 보는 것 아니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

 2월 12일은 영화 마지막 황제로도 잘 알려진 청나라 선통제 푸이의 퇴위일이었다.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2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그는 6살에 강제로 퇴위된다. 그 이후 푸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물론 자신의 의사가 아닌 옹립과 퇴위를 또 겪는다. 책 아래에는 퇴위 이후의 삶이 그려져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일(의거일)이 둘째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시간은 달랐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과거의 오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책 안에는 특히 중요한 하나가 등장하는데, 읽고 나면 세계사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과연 내 생일에 일어난 일은 무엇이었을까? 기왕이면 좋은 일이면 좋겠는데 싶었는데...! 다행히 전쟁은 아니지만, 잉카문명 마추픽추의 발견이 있던 날이란다. 잉카문명이 알려진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끔찍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문화재가 약탈된 것은 가슴 아프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미국 교수 하이럼 빙엄 3세에 의해 우연히 마추픽추를 발견하게 된다. 도굴꾼의 위험으로부터 이 멋진 문화유산을 지키고 싶었던 빙엄은 이 사실을 대중에 공개한다.

사실 나 역시 잉카제국이나 마추픽추에 대한 내용을 여러 매체와 책을 통해서 접해서 그런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또 내 생일이랑 이렇게 우연히 마주하게 되니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세계사 속에 우리의 역사는 들어있을까?(책의 저자는 외국인들이다.)가 궁금했는데, 두 편을 발견했다. 을미사변과 5.18민주화운동이 바로 그 내용이다. 사실 떠올려지는 날짜들이 많은 게 과연 좋은 것일까 싶긴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날짜들은 기쁜 일 보다 슬픈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매일매일 꾸준히 읽는 것도 좋겠고, 특별한 날을 떠올리며 그날의 있었던 세계 곳곳의 역사를 만나는 것도 꽤 매력적이고 흥미로울 것 같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도 과거에는 하나의 역사가 될 텐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 기왕이면 씁쓸한 역사보다는 향기 나는 역사로 남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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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안중근
박삼중.고수산나 지음, 이남구 그림 / 소담주니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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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


현빈 주연의 영화 하얼빈 덕분에 안중근 의사의 삶이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일본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하여 사망케 한 큰일을 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 그의 삶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참 적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영웅 안중근을 읽으며 나 또한 안중근 의사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다.

입학하면서 빠지지 않고 1년 동안 방과 후 역사 수업을 들은 아이는 자신이 배운 것을 꼭 내게 이야기해 준다. 소담 주니어 출판사에서 영웅 안중근이라는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흥분한 이유는 얼마 전 수업 시간에 안중근 의사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아이가 물어오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차역(하얼빈 역인지도 기억이 안 났다. 책을 읽고 나니 왜 영화 제목이 하얼빈인 줄 알게 되었다;;)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것과 손도장 정도가 전부였기에 민망하긴 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룬 안중근 의사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위인전과는 달리, 이 책은 안중근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있다. 놀랍게도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족이나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담당 간수였던 지바 도시치를 비롯하여 교화승인 쓰다 가이준, 만철 이사인 다나카 세이지로,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우지히토가 그들이다. 총 7명 중 4명이 일본인이고, 그들은 대부분 안중근을 뤼순 감옥에서 만난다. 그들의 시작은 자신들의 영웅인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원수로 안중근을 대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안중근을 만난 그들의 생각은 달라진다. 안중근이 한 일에 대해 이해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안중근의 사형집행을 가슴 아파하는 일도 있었다. 왜일까? 왜 그들은 안중근을 만난 후,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일까?

나조차도 책을 읽으며 그의 매력에 빠졌다. 사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안중근은 원수 중의 원수일 거라 생각했고, 당연히 사형! 을 집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 안에는 좀 더 구체적인 정황들이 담겨있다. 당시 일본의 국제적인 상황을 토대로 보자면, 안중근은 일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심각한 피해를 본 나라의 국민으로 상대국의 원수(元首)를 향해 총을 겨누고 살해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정당방위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일본은 이 상황을 빨리 덮고자 노력을 한다. 특히 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우지히토는 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안중근을 독대해서 항소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항소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안중근의 한마디에 그는 자신의 나라가 지고 말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책 안에 인물들이 만난 안중근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는 민족애와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이 한 잘못과 일본인들을 다르게 생각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일본이 밉지, 일본인이 미운 것은 아니라는 안중근의 말은 정말 웬만한 배포를 가진 인물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게도 보인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게 어미의 마음 아닌가? 엄마로서는 가슴이 찢어지지만,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한 것이니 비굴하게 항소하여 일본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으라는 편지를 읽으며 손이 떨렸다. 내가 조마리아 여사였으면 절대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 같다. 역시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3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나라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그렇게 큰일을 해낼 수 있었던 그의 모습에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 역시 독립유공자의 자손으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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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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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나와 주변의 경계가 없어지는 겁니다.

내가 주변이 되고 주변이 내가 되면, 세균이 그 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정상적으로 존재하던 세균들이 들어오면 내 몸은 썩지요.

살아 있어도 부패가 시작된다고요.

살아 있지만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소장하고 있다. 물론 내 책이 되었기에(?) 읽기 전이다. 초반에 여러 장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덮었다. 핑계라면 아껴 읽고 싶었다. 그 이후 한 프로에 나온 저자를 보았다. 우선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고,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놈을 치료하는 분 치고는 너무 온화한 표정과 말투라서 또 놀랐다. 새로 나온 저자의 책을 보는 순간 덮어놓고 읽고 싶었다. 솔직히 제목과 저자 이름만 보고 선택했어서, 책을 읽으면서 또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전문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암에 대한 전보다 선명한 지식이 생길 것이다.



죽음에 관심이 많다. 아니 죽음을 무척 두려워한다. 지금이야 장례식장이나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보편적인데 비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상을 당하면, 집 앞에 노란색 등이 달리고, 상가를 알리는 종이가 전봇대마다 붙는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두 곳의 장례. 우리 집 바로 앞 집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옆 골목의 나보다 1살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장례가 끝나고, 등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했다. 뭔지 모를 형체 없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막연한 죽음이라는 공포로부터 좀 편해지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죽음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책장 한 칸이 죽음에 관한 책으로 찰 정도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죽음이 여전히 공포긴 하지만, 나이 탓인지 경험 탓인지 전보다는 공포감이 좀 흐릿해지긴 했다.



죽음을 직접, 자주 목격하는 저자는 어떨까? 책의 시작은 3월 1일이었다. 3월의 대학병원은 가지 말라는 말이 등장한다. 극한의 혼돈 속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까지 초천(초보 인턴)이던 사람이, 하루 만에 초보던 터(초보 레지던트)가 된다. 하루 사이에 의학적 지식이 쑥~컸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3월 1일의 응급실은 카오스에 빠진다. 치부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저자는 책의 초반에 털어놓는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의학적 지식이 성장하는 만큼 경험도 많아진다. 그리고 죽음에도 무감각해진다고 한다. 저자가 전공한 분야는 특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암 병원 종양내과의 전문의니 말이다.



전 작 같은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책을 시작해서 술술 읽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2장부터 암 치료에 대한 역사부터 시작해서 암이 어떤 놈인지,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약제나 치료법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다행이라면 의학적 지식만 주야장천 담겨있지 않고, 실제 사례가 버무려져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도 등장한다. 기대 이상의 지식 앞에서 당혹스러웠다.(저자는 잘못이 없다. 친절하게 부제로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라고 써줬는데, 내 멋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병이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2,500년 전 이집트 문헌에 등장한다.)도 놀라웠는데, 퀴리 부인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렇게 표현하긴 그렇지만 생화학 테러 덕분에 암을 치료하는 약제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그 또한 하필 그 치료제가 잘 듣는 암에 걸린 환자에게 투여를 했다는 것도)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처럼 암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문의들이 많음에도, 암의 치료는 쉽지 않다. 과거에 비해 암이 정복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주변의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리 표적치료를 비롯한 여러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해도 "암"이라는 한 단어가 주는 고통스러운 묵직함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가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된 아버지의 폐암 투병과 죽음 이야기가 참 아프게 다가왔다. 아픈 경험은 나 하나로 족하다는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죽음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인간의 한없이 약함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다시 한번 강하게 되새겨본다. 적어도 저자와 같이 암과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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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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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른 데 한번 누워 봐. 

부엌이나 복도처럼 평소에 누워 자지 않는 곳.

그럼 바로 알 수 있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얼마나 낯선 곳인지.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을 만났다. 이번 책의 주인공은 쓰리 걸즈라는 이름으로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세 여성의 이야기다. 시간이 지난 만큼 이들의 상황도 각기 다르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고, 영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세이케 리에는 친구인 스와 다미코의 집에 머문다. 다미코가 미혼의 어머니 가오루와 둘이 살고 있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가오루 역시 예전부터 리에와 성격이 잘 맞았기에, 리에의 방문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딸 다미코 보다 리에가 더 잘 통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또 한 친구는 유일하게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무로후시 사키다. 결혼 전 이름은 세노 사키였다. 아픈 시어머니가 요양 시설에 계시는 관계로, 사키는 이래저래 챙겨야 할 일이 많다. 리에의 귀국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뭉친 쓰리걸즈.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냈지만, 성격도 참 다르다. 


 사실 리에를 보고 좀 의아하긴 했다. 가족이 일본에 없는 것도 아니고, 워낙 짐이 많은 친구답게 가지고 온 짐도 한가득이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신세를 질 정도로 잠깐 있다가 들어갈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머물 곳을 찾기 보다 차를 먼저 사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다미코 역시 그랬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지 못하는 캐릭터라서 그런지 덥석 자동차를 구입했다는 리에의 행동에 당황한다. 리에는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님 가오루가 눈치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예 눌러앉을 기세다. 리에는 일본에 동생 부부가 있고, 조카도 있다. 조카와는 꽤 잘 지내서, 영국에 있을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영상통화를 했다. 영국에 다니러 간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런 조카에게 귀국한 후, 스테이크를 사주겠다고 전화를 했지만 조카는 리에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 말에 속상해진 리에. 다음 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던 터라 조카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고모가 부모님 보다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것은 조카 역시 마찬가지다. 


 전에 읽었던 소설들에 비해 대놓고 불륜이나, 과거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들은 이번 책에는 많지 않다. 리에의 과거 남편들의 이야기나, 오랜 남사친의 이야기가 등장하긴 하지만 거부감이 덜하다. 친구들 간의 이야기와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라서 그런지 잔잔하고 일상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그래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읽다 보니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베프인 친구가 있었는데, 회사가 근처라서 퇴근길에 같이 집에 갔었다.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 친했는데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서 적잖이 당황했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이 생겼고, 친구는 아직 솔로였는데 생활의 경계가 달라서 그런지 공감대를 가지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부분이 많이 협소해졌다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다. 친구의 조카 이야기와 내 아이 이야기, 여행 다니는 이야기 등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 끊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하고 또 해도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서 2시간씩 통화를 해도 결국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몇 년 사이에 달라진 서로의 상황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책 속의 쓰리 걸즈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상황을 바라보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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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양상 현대지성 클래식 60
루스 베네딕트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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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의 좌우명은 "모든 것에는 자기 자리가 있다"이다.


 일본 문화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책이 바로 국화와 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제목은 들어봤지만, 직접 읽어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 아버지의 칠순 기념으로 가족들이 다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에 일본을 좋아했던 동생 내외와 달리, 나는 일본 여행이 처음이었는데 워낙 일본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웃나라인 일본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잔 지식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막상 잘 몰랐던 내용들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참 많이 들었다. 덕분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민성이나 문화, 역사에 대해 이해가 많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책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다. 이 책은 1944년 미국 당국에서 요청받아서 쓰기 시작한 책이라고 한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적대적인 상황이었고, 1945년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가 있었다. 이미 진주만이나 여러 전쟁을 통해 일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터라,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책이 꼭 필요했을 것 같다.) 루스 베네딕트는 직접 일본을 가진 않았지만, 일본인이 쓴 책이나 일본 태생의 미국의 거주하는 일본인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일본 문화에 대해 파악했다. 8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성에 대해 이렇게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읽는 내내 참 놀라웠다.


일본 군인들은 죽음이 곧 정신의 승리이며, 


미국인처럼 병자를 돌보는 것은 폭격기에 설치된 안전장치만큼이나 


영웅적 행위를 가로막는 방해물이라고 배웠다.


 막부나 사무라이, 천황(일왕) 같은 일본의 역사의 흐름뿐 아니라 위계질서나 가족관계, 효, 수치심 같은 일본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신적 근거들이 각 주제별로 촘촘하게 등장한다. 같은 아시아의, 근거리에 있음에도 우리조차 일본인이나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은데, 서양의 미국인이 본 일본은 당연히 이해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물론 우리와 다른, 일본인의 정신은... 등등의 단어들이 수시로 등장하지만) 서술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책의 도입부의 일본을 표현한 내용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같이 나올 수 없는 두 단어가 동시에 등장하는, 양면성을 지닌 민족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이다. 책에 중간중간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더해지니 비로소 완전체가 되어 이해가 되었다. 유난히 일본의 문화는 체면을 중시한다. 책에는 그 부분을 정신의 승리라고도 표현하는데, 오랜 시간을 거쳐 그런 문화가 쌓이고 쌓였기에 가능한 것 같다. 여전히 수치스러운 상황 앞에서  차라리 할복과 같은 죽음을 택하는 것이,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여전히 일본 사회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내 이름과 같아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온(은혜 은, 恩) 문화에 대한 부분도 꽤나 흥미로웠다. 전혀 다른 문화를 그 나라에 가보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자세하게 쓸 수 있다니 저자의 통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국화와 칼. 이보다 더 일본인의 양면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일본에 관심이 없더라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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