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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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나와 주변의 경계가 없어지는 겁니다.

내가 주변이 되고 주변이 내가 되면, 세균이 그 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정상적으로 존재하던 세균들이 들어오면 내 몸은 썩지요.

살아 있어도 부패가 시작된다고요.

살아 있지만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소장하고 있다. 물론 내 책이 되었기에(?) 읽기 전이다. 초반에 여러 장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덮었다. 핑계라면 아껴 읽고 싶었다. 그 이후 한 프로에 나온 저자를 보았다. 우선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고,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놈을 치료하는 분 치고는 너무 온화한 표정과 말투라서 또 놀랐다. 새로 나온 저자의 책을 보는 순간 덮어놓고 읽고 싶었다. 솔직히 제목과 저자 이름만 보고 선택했어서, 책을 읽으면서 또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전문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암에 대한 전보다 선명한 지식이 생길 것이다.



죽음에 관심이 많다. 아니 죽음을 무척 두려워한다. 지금이야 장례식장이나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보편적인데 비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상을 당하면, 집 앞에 노란색 등이 달리고, 상가를 알리는 종이가 전봇대마다 붙는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두 곳의 장례. 우리 집 바로 앞 집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옆 골목의 나보다 1살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장례가 끝나고, 등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했다. 뭔지 모를 형체 없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막연한 죽음이라는 공포로부터 좀 편해지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죽음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책장 한 칸이 죽음에 관한 책으로 찰 정도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죽음이 여전히 공포긴 하지만, 나이 탓인지 경험 탓인지 전보다는 공포감이 좀 흐릿해지긴 했다.



죽음을 직접, 자주 목격하는 저자는 어떨까? 책의 시작은 3월 1일이었다. 3월의 대학병원은 가지 말라는 말이 등장한다. 극한의 혼돈 속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까지 초천(초보 인턴)이던 사람이, 하루 만에 초보던 터(초보 레지던트)가 된다. 하루 사이에 의학적 지식이 쑥~컸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3월 1일의 응급실은 카오스에 빠진다. 치부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저자는 책의 초반에 털어놓는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의학적 지식이 성장하는 만큼 경험도 많아진다. 그리고 죽음에도 무감각해진다고 한다. 저자가 전공한 분야는 특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암 병원 종양내과의 전문의니 말이다.



전 작 같은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책을 시작해서 술술 읽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2장부터 암 치료에 대한 역사부터 시작해서 암이 어떤 놈인지,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약제나 치료법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다행이라면 의학적 지식만 주야장천 담겨있지 않고, 실제 사례가 버무려져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도 등장한다. 기대 이상의 지식 앞에서 당혹스러웠다.(저자는 잘못이 없다. 친절하게 부제로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라고 써줬는데, 내 멋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병이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2,500년 전 이집트 문헌에 등장한다.)도 놀라웠는데, 퀴리 부인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렇게 표현하긴 그렇지만 생화학 테러 덕분에 암을 치료하는 약제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그 또한 하필 그 치료제가 잘 듣는 암에 걸린 환자에게 투여를 했다는 것도)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처럼 암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문의들이 많음에도, 암의 치료는 쉽지 않다. 과거에 비해 암이 정복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주변의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리 표적치료를 비롯한 여러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해도 "암"이라는 한 단어가 주는 고통스러운 묵직함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가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된 아버지의 폐암 투병과 죽음 이야기가 참 아프게 다가왔다. 아픈 경험은 나 하나로 족하다는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죽음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인간의 한없이 약함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다시 한번 강하게 되새겨본다. 적어도 저자와 같이 암과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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