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을 만났다. 이번 책의 주인공은 쓰리 걸즈라는 이름으로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세 여성의 이야기다. 시간이 지난 만큼 이들의 상황도 각기 다르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고, 영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세이케 리에는 친구인 스와 다미코의 집에 머문다. 다미코가 미혼의 어머니 가오루와 둘이 살고 있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가오루 역시 예전부터 리에와 성격이 잘 맞았기에, 리에의 방문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딸 다미코 보다 리에가 더 잘 통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또 한 친구는 유일하게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무로후시 사키다. 결혼 전 이름은 세노 사키였다. 아픈 시어머니가 요양 시설에 계시는 관계로, 사키는 이래저래 챙겨야 할 일이 많다. 리에의 귀국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뭉친 쓰리걸즈.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냈지만, 성격도 참 다르다.
사실 리에를 보고 좀 의아하긴 했다. 가족이 일본에 없는 것도 아니고, 워낙 짐이 많은 친구답게 가지고 온 짐도 한가득이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신세를 질 정도로 잠깐 있다가 들어갈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머물 곳을 찾기 보다 차를 먼저 사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다미코 역시 그랬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지 못하는 캐릭터라서 그런지 덥석 자동차를 구입했다는 리에의 행동에 당황한다. 리에는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님 가오루가 눈치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예 눌러앉을 기세다. 리에는 일본에 동생 부부가 있고, 조카도 있다. 조카와는 꽤 잘 지내서, 영국에 있을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영상통화를 했다. 영국에 다니러 간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런 조카에게 귀국한 후, 스테이크를 사주겠다고 전화를 했지만 조카는 리에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 말에 속상해진 리에. 다음 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던 터라 조카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고모가 부모님 보다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것은 조카 역시 마찬가지다.
전에 읽었던 소설들에 비해 대놓고 불륜이나, 과거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들은 이번 책에는 많지 않다. 리에의 과거 남편들의 이야기나, 오랜 남사친의 이야기가 등장하긴 하지만 거부감이 덜하다. 친구들 간의 이야기와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라서 그런지 잔잔하고 일상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그래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읽다 보니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베프인 친구가 있었는데, 회사가 근처라서 퇴근길에 같이 집에 갔었다.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 친했는데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서 적잖이 당황했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이 생겼고, 친구는 아직 솔로였는데 생활의 경계가 달라서 그런지 공감대를 가지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부분이 많이 협소해졌다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다. 친구의 조카 이야기와 내 아이 이야기, 여행 다니는 이야기 등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 끊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하고 또 해도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서 2시간씩 통화를 해도 결국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몇 년 사이에 달라진 서로의 상황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책 속의 쓰리 걸즈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상황을 바라보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