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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독서 -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문학의 빛나는 장면들
시로군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1월
평점 :
막막한과 독서가 과연 어울릴까? 하는 말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독서에 대한 평소의 이미지가 확인될 것 같다. 그렇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막막한과 독서를 붙여 쓸 수 있을까? 글쎄... 개인적으로 나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고만 말하고 싶다. 물론 읽고 싶은 책보다는 읽어야만 하는 책에 막막한이 어울릴 것 같긴 하다. 물론 읽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책임에도 붙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가령 과제로 제출해야 할 책을 읽고 요약해야 하는데 시간에 허덕일 때, 내가 원하는 서평책을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갈 때 막막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서모임의 진행자로 대학에서 영문학,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소위 전문가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책의 제목으로 "막막한"을 골랐다. 반전이라면, 독서모임의 이름이 막막한 독서라는 것.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막막한의 뜻 그대로 많이 읽었다고 독서가 편해지는 것도, 이해가 쉬워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이 책에 막막한이 붙은 이유라고 한다. 과연 책을 다 읽었다는 뜻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은 시작된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다는 뜻일까? 아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뜻일까? 만약 끝까지 다 읽었지만, 뭔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책을 다 읽은 게 아닐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래서 막막한 독서인 걸까?
책 안에는 주옥같은(이라고 쓰고 벽돌 책이라고 쓴다.) 명작들이 등장한다. 다행히도, 책 안에 담겨있는 책 중 절반 정도는 내가 읽은 책이다. 또한, 책 안에 담긴 몇 권을 제외하고는 익숙한 이름들이다. 물론 안 읽어보거나, 낯선 이름도 섞여있다. 총 4장의 제목은 읽는 용기(첫 장), 읽는 힘(둘째 장), 읽는 습관(셋째 장), 읽는 행복(넷째 장)이다. 읽는 용기에 담긴 책들은 상대적으로 벽돌 책이다. 그래서 읽는 용기인 걸까? (첫 작품부터 압도적인 두께를 자랑하는 돈키호테가, 그다음은 안나 카레니나, 세 번째는 죄와 벌이다.)
책 안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은 저자가 해당 작품들을 읽고 쓴 서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서평(전부 소설인 문학작품들이다.)처럼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기보다는 책 안에 인상 깊은 장면들이나, 책을 읽고 느꼈던 점이나 현실과 대비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 작품의 전체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어떤 부분이 남아야 하는가? 와 앞에서 질문한 다 읽었다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번역에 대한 부분에 언급이 많이 되는데, 아마도 저자가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번역과 오역 혹은 원문의 의미 등에 대해 좀 더 냉철하게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입장에서 번역된 책만 보지, 원문을 볼 기회가 없어서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번역본을 읽는 것의 중요성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실제 읽었던 작품이지만, 놓치고 있었던 내용들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어서 나름 신선했던 것 같다. 시작의 막막함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상쇄되어서 그런지, 원작을 읽으면서 저자가 언급했던 부분이 떠오르면 그 또한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