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썼어 너도 써 봐
장용 지음 / 마음시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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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마음이 전복돼도

엄마는

전복을 딴다

p. 56

시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시집을 잘 안 산다. 감성이 메말라서 일까? 아님 내가 단순해서일까? 산문처럼 구체적인 설명이 닿아있는 작품은 이해가 쉬운데, 짧은 단어 몇 개를 나열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다 깨닫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자연스레 시집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한 권의 시집은 읽는다. 매년 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1년을 결산하고 보면, 서평 중 시집에 대한 서평이 몇 권씩 들어있긴 하다. 물론 그 또한 내가 고른 책 들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주로 편하게 읽는 시집은 감동과 재미가 담겨있는 시집이다. 언어유희(쉽게 말해서 말장난)의 개그가 담겨있는 시집은 오랜 여운이 남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울한 가정을 한 번에 몰아내주기도 하고,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어서 좋아한다. 이 책의 저자는 개그맨 장용이다. 개그맨이 시집을? 하긴 저자가 요즘 개그프로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인물이긴 하지만 시집을 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대놓고 B급 시라는 표현이 있긴 하지만, 글쎄... 내 생각은 달랐다. 마음을 울리는 시가 꽤 많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식 웃는 시만 담겨있는 것도 아니다. 길어야 3행~4행 정도의 짧은 시지만 그 안에 담긴 찡한 의미가 정말 쉽게 다가왔다. 이렇게 짧은 단어와 문장으로 만든 시 속에 그런 감정을 넣을 수 있다니... 그런데도 B급 시라는 이름이 붙어야 할까?

감기

몸이 말을 걸어왔다

기침으로 노크하더니

콧물을 놓고 갔다

P. 115

개그맨이 쓴 시집이라서 그런지, 라임이 맞거나 한 단어를 다른 뜻으로 쓰거나, 피식 웃음이 나는 상황들이 여럿이다. 하상욱 시인의 서울시라는 시집을 읽으면서 빵 터지는 순간이 많았는데, 장용 시인의 시집에 담긴 시에는 빵 터짐의 깊이가 한 층 더 깊다. 이런 게 연륜이라는 것일까?

짧은 시와 함께 그려진 삽화. 그리고 시를 SNS에 게시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 아래 달린 댓글들도 시집 안으로 들어왔다. 시를 읽는 것도 좋은데, 같이 곁들여진 댓글도 흥미를 북돋운다. 일상의 시어를 가지고, 일상을 이렇게 공감 가도록 그려내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거기에 감동과 재미를 더 하는 것은 더 어려울 테지만... 그렇기에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아마 꽤 깊은 감동을 맛보게 될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심장병 환우들을 위해 기증한다고 하니, 이 또한 큰 감동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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