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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에 대하여 - 삶은 비운 후 비로소 시작된다
토마스 무어 지음, 박미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인들은 결핍, 부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결핍은 상대적 박탈감과 겹쳐질 때 시너지를 발휘한다. 그렇기에 이 결핍은 나이와 상관없이 분노와 상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책에서는 결핍이 오히려 삶의 동기부여가 되어 삶의 부족을 더 채우는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흡수했다가 뱉어내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그렇다.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 역시 "공허"라는 단어 때문이다. 사실 공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히 부정적이다. 텅 빈, 부족함, 없음, 결핍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안에 등장하는 공허는 마땅히 필요한 것이었다. 오히려 공허가 있을 때 삶이 더욱 성장하고, 여유 있으며, 원하는 것 이상을 채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 제목들만 봐도 고개가 흔들어지는데(화살 없는 활, 줄줄 새는 자루, 빈 마차, 다른 것은 없었다, 잃어버린 사발, 무소유...), 대부분이 공허를 뜻한다. 책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지극히 공허에 관한 이야기다. 대놓고 공허에 대하여 썼다고 하는데, 오히려 책을 읽으며 반어적인 느낌이 든다. 제목이 역설 같다. 공허한 우리의 삶을 어떻게 풀어갈 자기가 아닌, 공허의 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웠을 때,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남는 시간에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들이 들어올 틈이 생긴다. 일상에서 여유를 가질 시간을 확보하자. 이 말은 때로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것 같다.
책은 채우기 위해 욕심을 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 가지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경쟁하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더 잘 사는 삶을 위한 책인 것은 맞지만, 물질적인 양에만 잘 삶의 방점이 있지 않다. 질 적으로 채워진 삶을 위해 공허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저자의 경험이 곳곳에 담겨있는데, 짧지만 깊은 여운이 담겨있다. 그중 한 이야기인 배에는 아무도 없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작은 호수에 나간 저자는 배가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배가 뒤집히면서 배 안에 있던 물건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닌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저자를 붙들어 뒤집힌 배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저자가 깨어난 곳은 큰 침대였다. 장의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 자신이 죽은 줄 알았단다. 사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저자가 아닌 저자의 할아버지였다. 위기의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자신보다는 손자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을 희생했다. 그 경험이 저자에게 꽤 큰 의미를 주었다. 용기와 이타심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희생과 용기는 저자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극단적인 상황의 아픔이 담겨있긴 했지만, 이 또한 공허와 비움의 모습이기도 하겠다 싶었다.
이 책은 일부러라도 비움의 시간을 갖길 조언한다. 삶의 공허의 자리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자리를 채울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다. 그것이 시간이든, 물질이든, 생각이든 말이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책에 거울처럼 비쳤다. 내 삶에 필요한 공허의 부분은 어디일까?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