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아주 작은 차이로 모양이 달라져요.
하지만 어느 것이 뛰어나고 어느 것이 열등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얼굴 생김새나 체형이나 피부색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런 건 사소한 일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더 잘 살아보기 위해 하루하루 분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제목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사랑이 없는 세계가 과연 존재할까? 인류가 있는 한 사랑과 이별은 늘 함께하는 동반자 일 텐데 말이다. 다행히 표지 가득한 식물이 제목의 힌트가 될 수 있다.
음식점 엔푸쿠테이의 종업원이자 요리사가 꿈인 후지마루.
주인인 쓰부라야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날이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엔푸쿠테이의 음식이 좋다.
음식 맛에 반해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엔푸쿠테이를 찾아왔지만, 거절당한 후지마루는 2년간 이탈리아 식당에 취직해 기술을 쌓은 후 다시 도전장을 내밀고 결국 종업원이 되었다.
(물론 기술 때문도, 일손이 부족해서도 아닌 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ㅎ)
그런 엔푸쿠테이가 배달을 시작한다. 가끔씩 오는 뭔가 의심스러운 손님이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받은 명함에는 의외로 바로 앞에 T 대학의 생물과학 교수라고 쓰여있다.
(다행히 장르 호러가 아니다. 손톱 밑에 흙이 묻어있는 것도, 왠지 저승사자 느낌의 포스도 그냥 모습일 뿐.)
얼마 후 5인분의 배달 전화를 받고 학교를 방문한 후지마루는, 식물학 전공을 하는 박사과정 1년 차 대학원생 모토무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앙증맞은 뒤꿈치에 반하고 만다.
식물을 너무 사랑하는 그녀는 애기장대를 연구하고 있다. 그냥 잡초같이 보이는 풀을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 특이해도 너무 특이하다.(특히 그들이 처음 만나던 날 입고 있던 셔츠 속 그림은 경악스럽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후지마루는 열흘에 한번 시키는 배달 전화가 반갑기만 하다.
사랑에 빠져서 그런지, 그녀가 연구하는 식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후리마루는 결국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당혹스럽기도, 아리송하기도, 신선하기도 하다.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사실 모토무라 역시도 후지마루가 싫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연구를 포기하고 싶지도, 결국 식물연구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결국 연애의 끝도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거절의 의사를 비춘 것이다.
그녀의 거절에도 후지마루는 여전히 그녀가 좋다. 과연 둘은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후지마루가 참 밝고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모토무라와 동네 작은 음식점 종업원 후지마루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이나 직업이나 환경을 보고 편견을 가진 것이다. 만약 그런 이유로 후지마루를 거절했다면, 욕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 모토 무라드 너무 순순했다는 것.
별것 아니게 보이는 작은 식물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후지마루 역시 자신이 가진 꿈을 위해 한걸을 더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의 자극적인 소설들에 비해 청초하고, 한편 밍밍해 보일 수 있는 소설이지만 그래서 더 따뜻하고 신선했다.
또한 사랑 없는 세계에 살지만 그들만의 방법을 통해 성장해가는 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만의 매력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