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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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별세하신 이어령 교수의 한국인 이야기의 마지막 시리즈는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다. 역시 이번에도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이어령 교수의 한국인 이야기를 다 읽었는데, 이번에도 문장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왠지 연관이 없는 듯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한국인과 AI는 다른 시리즈만큼이나 연결되었다.

사실 현직에서 은퇴를 하자마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이세돌 바둑 기사와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를 한 상황에서 이 교수의 논평을 싣고자 하는 기자의 전화였다. 팔순의 노 학자에게 왜 기자는 전화를 했을까? 이미 이 교수가 인공지능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파고와 스마트폰의 이야기를 기점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AI 이야기의 시작이 바둑대결이었기에 책 속에는 알파고와 이세돌, 바둑에 대한 이야기들도 한 주제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 만났던 디지로그로 이 책의 문을 닫는다.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이야기가 고개고개 이어진다. 꼬부랑 고개는 한국인 이야기 도입부터 만날 수 있었기에, 세 번째 만나는 이야기는 이제는 친숙하다. 끊어질 것 같지만 끊어지지 않는 고개처럼 책 속에 담긴 이야기도 그렇게 서술된다. 어느 하나 생떼를 부리거나, 억지로 이은 느낌이 아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흥미롭다. 마치 옛이야기를 만나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가령 알파고에서 코끼리로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보기 전에 우리에게 알파고는 아주 낯선 이름이었다. 그와의 대결로 모두가 아는 이름이 되어 버린 알파고. 마치 태어나서 처음 코끼리를 본 조선시대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조선 세종 때 우리나라에 소개된 코끼리와의 일과는 그런 식으로 등장한다. 책 속의 주제들 역시 이런 식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다.

한국인 이어령은 우리 문화에 대한 마음이 깊다. 책의 고개마다 그런 분위기가 가득하다. 아마 그랬기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7장부터는 AI 하면 떠오르는 구글, 인터페이스 등의 좀 더 AI가 가미된 과학적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어렵거나 따분하지 않다. 아니 젊은이들도 힘든 이런 내용들을 어떻게 그리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혀를 내 둘렀다. 역시 시대의 지성, 대 학자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 같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옛 기억을 찾는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로그. 내가 이어령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게 된 것도 교과서에 실렸던 디지로그를 통해서였다. 당시는 왜 이리 어렵고 따분한지... 물론 성인이 되고 읽어보니 또 다른 맛이었다.(당시는 지극히 시험을 위한 교과서여서 그랬나 보다.) 디지로그는 또 "엇비슷"과 "되다"라는 말과 연결이 된다. 되다는 단군 신화와 연결되어 다시 한국인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사람다워지는 것의 의미를 소통과 사랑이라고 본다. 인간과 기계가 함께 살아가는 것. 공생으로 연결시킨다.

이미 우리가 사는 세계는 AI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단지 기계로 치부하고, 인간과 단절시켜 생각한다면 발전할 수 없다. 한국인과 AI.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AI 시대를 통찰하는 눈과 지식을 겸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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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의 마법
이준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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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라... 책을 읽는 내내 내 옛 모습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준생으로 보낸 기간이 있었다. 원래 방콕을 좋아하는 성향이기도 했지만, 자신감이 없었고 굳이 약속 없이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를 못 찾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낯설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다 보니 편하기는 했지만, 집 밖이 두렵기도 했다. 그랬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유미와 주원의 이야기가 와닿았던 것 같다.

주원은 베프라고 할 수 있는 친구 재성을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뉴스 속에 등장한 친구의 사진을 보는 순간 재성의 삶이 사라지듯, 주원의 삶도 은둔의 삶으로 빠져들었다. 학교 어디에도 주원은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그렇게 주원은 자퇴를 하고, 누나 부부를 설득해 얻은 방 안으로 스스로를 가둔다.

유미는 원래 부모님과 한 섬에 살았다. 약사였던 부모님을 따라 섬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외지인이었지만, 부모님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었다.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서 부모님을 조른 날이었다. 혼자 울 장소가 필요했던 유미는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근데 유미가 상상했던 것이 현실이 된다. 마법처럼 운동장이 놀이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하루에 한 번. 유미는 원하는 장소를 떠올리면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을 바꾸는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미의 능력은 곧 친구들을 넘어 어른들에게까지 전해진다. 유미를 찾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어난다. 언제부턴가 유미는 마법을 자신이 아닌, 타인들을 위해 사용한다.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유미 역시 행복해진다. 하지만, 그날. 그 사고로 유미의 삶은 바뀌었다. 교통사고로 유미만 산 것이다. 유미가 마법을 써서 부모님이 죽었다는 소문은 처음에는 뜬 소문이었지만 어느 순간 진실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을을 떠나며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주원과 유미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모임에서 만났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다. 용기를 내 모임에 참여하게 된 주원과 유미. 주원은 재성의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유미는 할머니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고, 그들이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그들의 용기는 또 다른 시작이 되는데...

익숙한 무언가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때론 엄청난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익숙하게 해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 일 수 있다.

주원과 유미 두 동갑내기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한 것을 벗어나는 용기에 대해서, 나와 다르다고 쉽게 색안경을 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마법 이야기가 담겨있음에도 강렬하기 보다 은은한 향이 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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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게 시끄러운 오르골 가게
다키와 아사코 지음, 김지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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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끄럽기에 제목에 이렇게 강조가 되어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나는 제목이다. 열면 오르골 소리가 나면서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예쁜 보석함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물론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르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두 아이 모두 오르골 모빌을 달아줬던지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몇 달 동안 오르골 자장가를 들었다. 동생에게 선물 받은 초점책도 오르골 음악이었고...

개인적으로 오르골로 연주된 음악이 좋다는 생각보다는 거슬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마 같은 음악만 계속 들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오르골 가게라면 오르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도 충분히 만족스럽겠다는 생각 또한 해봤다.

책 속에는 총 7편의 오르골 가게와 얽힌 사연이 들어있다. 우연히 보게 되고 들어가게 된 그곳에서 그들은 참 따스한 경험들을 한다. 아마 대부분의 이야기가 가족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북쪽 마을 골목 안에 있는 오르골 가게는 보기에는 그리 다르지 않지만, 보통의 가게와 다른 점이 있다. 손님이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서 자신만의 오르골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마음속의 음악을 듣고 곡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문 제작이지만, 기성품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한다.

7편의 사연 중 가장 마음에 들어온 이야기는 첫 번째 등장한 돌아가는 길이라는 작품과 고향이라는 작품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유토와 엄마 미사키의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쳐도 엄마는 자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면 자책의 수위는 높아질 것 같다. 나 역시 유토처럼 귀가 안 들리는 조카가 있다. 수술을 통해 인공와우를 달았고, 재활을 거치면서 조금씩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유토 역시 난청으로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제 3살인 유토는 1년 전 선천성 난청 진단을 받았고, 4살이 되기 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빗살 부품이 움직이는 것으로 음이 보인다는 말에 미사키는 유토에게 오르골을 만들어 주기로 한다. 문제는, 유토가 음악을 고를 수 없다는 데 있다. 유토를 대신해 음악을 고르려는 미사키에게 점원은 유토의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듣고 결정하겠다는 말을 한다. 유토와 잠깐 시간을 보내는 점원. 갑자기 노트에 악보를 적기 시작한다. 일주일 후, 미사키는 전화로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가게를 지나치려고 하는데 유토는 그런 미사키를 가게로 이끈다. 그리고 완성된 오르골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는 순간, 미사키는 놀라고 마는데...

늘 아픈 손가락인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아이가 늘 안타깝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 주는 소소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면 하는 마음은 누군가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연들은 아픈 상처이기도 하고,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고, 때론 굳이 곱씹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간의 마법 때문일까, 아니면 음악이 주는 치유 때문일까? 신비한 마법을 맛본 것처럼 그들의 마음은 가게를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사뭇 다르다.

때론 한마디 말보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진심을 담은 노래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 또한 같은 것 아닐까? 오늘은 각자의 사연만큼이나 다양한 음악들이 담긴 오르골 가게를 방문해 보자!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소중한 추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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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해야 늦지 않는 메타버스 성교육 - 99% 양육자가 모르는 알파 세대의 가상 세계 성(性) 이야기 메타버스 성교육
이석원.김민영 지음 / 라온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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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요즘 많이 듣는 메타버스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Meta와 Universe의 합성어였다니... 무슨 버스지? 이랬었는데...^^;;

코로나19 이후 모든 것이 비대면화되면서 가상세계로의 확장이 더욱 빨라졌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가상세계 속 상황들이 편해진 것 같다. 과거에는 오프라인의 정(靜) 적인 상황에 익숙했다면, 현재는 3D를 넘어 4D로 오감을 사용하는 동적인 상황들이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게임 역시 그런 세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진화되어 가상이 실제 현실과 같은 상황으로 이루어지기에 몰입도가 더 높아졌다.

문제는 얼마 전 큰 충격을 안겼던 n번방 사건처럼, 사이버 상에서도 범죄가 만연해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오프라인 성교육을 넘어서 메타버스 성교육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뿐 아니라 가상세계 속 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에,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게임을 접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평소 좋아하는 만화를 유튜브 등으로 자주 시청하는지라 인터넷상의 정보들에 대해 무분별하게 접하게 될까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클릭 하나로 옮겨갈 수 있다 보니 원하지 않는 영상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현실을 반영하여 왜 메타버스 성교육이 필요한 지 설명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모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특히 3장에서는 메타버스 시대의 성을 준비하기 위행 체크리스트가 담겨있기에, 부모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실제적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웹상에서 이 정도로 성폭력이 만연해져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문제는 어른들이야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지만,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경우 잘못했다간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바타가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한다면 과연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실제가 아닌 사이버 상의 이야기니까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을까? 문제는 아바타가 겪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 메타인지를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역시 메타버스가 익숙해져야 한다.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무조건 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많은 문제가 오고 가는 세대 속에 살고 있다. 오히려 성교육에 대해서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기에 여기저기 걸러지지 않는 무분별한 정보에 아이들이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내 아이의 건강한 성인지 감수성과 교육을 위해 부모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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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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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는 작가는 많지 않다. 물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책을 읽다가, 혹은 책날개의 소개 글을 보다 아! 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천선란 작가는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내게 진한 기억을 남긴 작가다. 그녀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천 개의 파랑이라는 작품이었다. 지극히 문과적 인간인 탓에 당시만 해도 SF 소설을 읽긴 하지만 재미를 몰랐었다. 그녀의 책을 접한 후로, SF에도 이런 맛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결 겁 없이 도전하게 되었다. 그 후 그녀의 책은 일부러는 아니지만, 한 번씩 접하게 된다.

노랜드. 10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는데, 보통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 표제작으로 쓰이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노랜드"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었다.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작품 속에서 마치 숨은그림찾기 처럼 떠오른 "노랜드"를 발견했다. "두 세계"라는 작품 속에서였다. 반가웠다. 중반 이상을 읽어서 드디어 발견했으니 말이다.

10편의 작품 중 상당수는 어둡고, 죽음에 관한, 사후세계에 관한 주제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아마 노랜드(NO LAND)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여진 게 아닐까 싶다. 표제작을 찾기 위해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내 생각이 얕았다는 것이었다.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이 제목밖에 없구나 싶었다.

내가 발견한 노랜드가 등장하는 두 세계의 이야기는 이렇다. 쌍둥이 자매 황유라. 황유진. 유라는 이 세상에 있지만, 유진은 이 세상에 없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유라의 기억 속 유진은 특별하고 특이한 아이였다. 세상에 도통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듯 보이는 아이였다. 이란성 쌍둥이기도 했지만, 둘은 참 달랐다. 시간이 흘렀고, 유라는 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꿈을 이뤘다.

노랜드. 소설의 내용을 가상현실 세계 속으로 옮겨서 책을 오감으로, 현실감 있게 읽도록 구현한 노블 워크의 프로그램. 오감을 이용해서 책을 읽기에 실제 같은 느낌과 함께 등장인물과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그녀는 8년간 쉬지 않고 일했고, 노블 워크 이름의 빌딩이 하나 세워질 정도로 성공했다. 그녀의 직함은 프로젝트 오너다. 유진의 기일에 추모공원을 들렀다 가는 길에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재원의 전화였다. 아락스라는 소설에 클레임이 걸려왔다. 그것도 아주 큰 클레임이었다. 소설의 내용이 바뀌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락스는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이다. 관련 상황을 살펴보던 중, 보통 1회 구입을 하는 대부분의 고객과 달리 무려 35회에 걸쳐 구입한 고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중 34번은 2개월 이내 구매였다. 신규영이라는 이름의 고객을 만나게 된 유라는 그녀에게 뭔가 이질감을 느낀다. 자동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온 몸에는 여기저기 상처도 많다.

그녀를 만난 후, 자꾸 유진이 했던 말이 생각나는 유라. 이 세계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자꾸 귀를 맴돈다.

유라야, 가끔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그러면 몸은 살아 있찌만 영혼은 죽게 되는 거야.

현실에 있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나는 그 사람들이 가는 곳이 궁금해, 유라야.

소설 아락스의 결말은 심각하게 바뀌었다. 주인공 아락스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는 것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하는 내용으로 말이다.

밖의 세계.

세계의 밖.

다시금 규영을 찾는 유라. 유라는 그녀의 정체를 알았다. 규영은 과연 누구일까?

노랜드 속에는 각기 다른 세상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녀의 소설 속 배경들은 어두웠지만 한 편으로는 신선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 속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짧기도 길기도 한 10개의 작품이 모여서 노랜드가 되었다. 어떤 세계를 가보고 싶은가? 어떤 세계 속에 살고 싶은가? 어떤 세계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은가?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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