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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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는 작가는 많지 않다. 물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책을 읽다가, 혹은 책날개의 소개 글을 보다 아! 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천선란 작가는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내게 진한 기억을 남긴 작가다. 그녀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천 개의 파랑이라는 작품이었다. 지극히 문과적 인간인 탓에 당시만 해도 SF 소설을 읽긴 하지만 재미를 몰랐었다. 그녀의 책을 접한 후로, SF에도 이런 맛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결 겁 없이 도전하게 되었다. 그 후 그녀의 책은 일부러는 아니지만, 한 번씩 접하게 된다.

노랜드. 10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는데, 보통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 표제작으로 쓰이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노랜드"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었다.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작품 속에서 마치 숨은그림찾기 처럼 떠오른 "노랜드"를 발견했다. "두 세계"라는 작품 속에서였다. 반가웠다. 중반 이상을 읽어서 드디어 발견했으니 말이다.

10편의 작품 중 상당수는 어둡고, 죽음에 관한, 사후세계에 관한 주제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아마 노랜드(NO LAND)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여진 게 아닐까 싶다. 표제작을 찾기 위해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내 생각이 얕았다는 것이었다.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이 제목밖에 없구나 싶었다.

내가 발견한 노랜드가 등장하는 두 세계의 이야기는 이렇다. 쌍둥이 자매 황유라. 황유진. 유라는 이 세상에 있지만, 유진은 이 세상에 없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유라의 기억 속 유진은 특별하고 특이한 아이였다. 세상에 도통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듯 보이는 아이였다. 이란성 쌍둥이기도 했지만, 둘은 참 달랐다. 시간이 흘렀고, 유라는 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꿈을 이뤘다.

노랜드. 소설의 내용을 가상현실 세계 속으로 옮겨서 책을 오감으로, 현실감 있게 읽도록 구현한 노블 워크의 프로그램. 오감을 이용해서 책을 읽기에 실제 같은 느낌과 함께 등장인물과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그녀는 8년간 쉬지 않고 일했고, 노블 워크 이름의 빌딩이 하나 세워질 정도로 성공했다. 그녀의 직함은 프로젝트 오너다. 유진의 기일에 추모공원을 들렀다 가는 길에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재원의 전화였다. 아락스라는 소설에 클레임이 걸려왔다. 그것도 아주 큰 클레임이었다. 소설의 내용이 바뀌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락스는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이다. 관련 상황을 살펴보던 중, 보통 1회 구입을 하는 대부분의 고객과 달리 무려 35회에 걸쳐 구입한 고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중 34번은 2개월 이내 구매였다. 신규영이라는 이름의 고객을 만나게 된 유라는 그녀에게 뭔가 이질감을 느낀다. 자동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온 몸에는 여기저기 상처도 많다.

그녀를 만난 후, 자꾸 유진이 했던 말이 생각나는 유라. 이 세계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자꾸 귀를 맴돈다.

유라야, 가끔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그러면 몸은 살아 있찌만 영혼은 죽게 되는 거야.

현실에 있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나는 그 사람들이 가는 곳이 궁금해, 유라야.

소설 아락스의 결말은 심각하게 바뀌었다. 주인공 아락스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는 것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하는 내용으로 말이다.

밖의 세계.

세계의 밖.

다시금 규영을 찾는 유라. 유라는 그녀의 정체를 알았다. 규영은 과연 누구일까?

노랜드 속에는 각기 다른 세상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녀의 소설 속 배경들은 어두웠지만 한 편으로는 신선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 속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짧기도 길기도 한 10개의 작품이 모여서 노랜드가 되었다. 어떤 세계를 가보고 싶은가? 어떤 세계 속에 살고 싶은가? 어떤 세계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은가?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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