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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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라진 남편. 근데, 그가 내가 알던 사람과 다르다면...?

해나 홀은 유명한 선반공이자, 결혼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여성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기술을 토대로 그녀는 선반공이 되었고, 우연찮게 그녀가 만든 작품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녀는 핫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단골 고객 중 하나인 벨 톰프슨의 남편인 아베트 톰프슨과 함께 그녀의 작업실을 찾아온 남자 오언 마이클스를 만나게 된 그녀는 첫눈에 그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당시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2년간의 연애 후 그녀는 오언과 결혼하게 된다. 오언에게는 16살 된 딸 베일리 마이클스가 있었다. 사실 베일리와의 관계는 어렵다. 노력 중이지만, 베일리의 태도에서는 왠지 못마땅함이 가득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를 통해 노란색 쪽지가 전해진다. 남편 오언이 보낸 쪽지라고 했다. 쪽지에 내용은 단 한 줄.

당신이 보호해 줘.

남편에게 전화를 걸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다. 딸인 베일리는 데리러 가던 중, 뉴스에서 남편 회사에 대한 소식을 접한다. 그가 근무하는 더 숍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대표인 아베트 톰프슨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베일리가 들고 나온 가방 안에서는 6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이 담겨있었다. 오언이 베일리에게 편지와 함께 남긴 돈이었다. 그날 이후 오언을 찾는 연방수사국의 수사관들이 해나를 찾아온다.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게 되는 해나. 수사관이라는 사람이 남긴 전화번호를 토대로 오스틴이라는 지역을 찾아낸 해나. 결혼 전 유달리 오스틴에 대해 방어적으로 대했던 오언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어린 시절 베일리의 기억 또한 오스틴을 향하고 있다. 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해나는 베일리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오스틴으로 떠나게 되고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해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페이지터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좋은 소설이다. 특히 해나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해나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책을 읽게 된다. 부부의 이야기는 부부만이 안다고 하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부재는 아내에게 여러 가지 의미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책 속 해나는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차분했다. 나라면 글쎄...멘붕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자극적인 것이라고는 갑자기 연락한 줄 없이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진 남편 정도 일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긴장하며 읽을 만큼 흥미롭다. 과연 오언은 해나에게 무엇을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해나가 남편을 찾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베일을 벗는 그와 베일리의 존재가 드러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는 것이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내 기억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말을 통해 구성된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그 안에 담긴 사랑은 또 다른 형태로 연결된다. 부성애와 모성애. 두 사랑을 책을 통해 직접 목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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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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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아기는 자신의 삶이 시작될 거란 걸

알지 못했을 것이고,

할머니 역시 지금이 자신의 삶이 끝나는 순간이란 걸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생사는 인간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없는 법이었다.

반면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인간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의지대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게 인생이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을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게 인간의 삶이었다.

책 속에 담긴 전래동화가 한 편 있다. 선녀와 나무꾼. 선녀가 잃어버린 것은 날개옷인데, 책 속의 신의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천명대 의대 강해수는 응급실 의사다. 그에게는 언제부턴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심정지 환자에게 PCR(심폐소생술)을 하면 환자의 과거가 보인다. 문제는 환자의 과거를 보는 시간 동안 자신의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환자에 따라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에 해수는 의사를 그만둬야 하나를 깊이 고민한다.

한연화는 고아다. 엄마는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였다고 한다. 그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연화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남하도 앞바다의 크루즈를 타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고, 아빠는 물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연화는 홀로 남겨졌다. 그날 남하도 앞바다 크루즈는 큰불이 나서 3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났다. 문제는, 연화의 가족은 그 배의 승선인원 명단에 없었고, 연화 역시 생존자지만 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고 후 삼촌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된 연화는 19살 도망친다. 의대에 진학한 연화는 응급실에서 해수를 만난다.

중학교 졸업식날 아버지를 잃은 신재하는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천명대 의대로 온다. 정신과 전문의가 된 재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자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연화와 오랜 인연이 있는 재하. 재하의 지인의 지인이라고 소개받은 해인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던 연화는 해인의 전시회 소식을 듣는다. 재하와 함께 가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병원 호출에 재하만 해인의 전시회를 찾고, 그곳에서 한 소년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그림에 끌린다. 해인과 재하는 첫 만남에 서로를 향한 호감을 느낀다. 해인이 준 그림을 가지고 가는 재하. 그렇게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어느 날 해수는 한 스님을 만난다. 스님은 그에게 신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저주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의 물건을 돌려줘야 한다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남긴다. 연화 역시 스님을 만난다. 엄마가 있는 곳을 돌아가야 한다고... 엄마와 같은 방법으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연화.

스님은 연화와 해수에게 방해자가 활동을 시작했으니 늦지 않게 행동을 하라고 조언한다. 과연 방해자는 누구일까?

해수가 보는 과거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하도 앞바다 크루즈 사고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해수가 과거를 볼 수 있다면, 연화는 미래를 볼 수 있다. 몇 달 후, 몇 주 후 일어날 일을 예지몽으로 꾼다. 문제는,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지인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끔찍하고 슬픈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는 참 질긴 인연이 등장한다. 연화와 해수. 해인과 재하.

한순간의 일탈로 끔찍한 사건을 만들어낸 해수. 오로지 아들만 살리기 위해 수백 명의 목숨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 아버지의 죄과를 알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해인. 중학교 졸업식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재하. 학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자살을 선택한 선생님. 선녀인 엄마와 이무기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축복받아야 할 생일에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고 엄마의 반지까지 빼앗긴 연화.

악연이라면 악연이 책 속에 하나 둘 등장하며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모든 죄의 시작은 해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실수로 이 모든 사건들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신의 물건을 탐해서 생긴 저주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실수로 수백 명의 사람을 바다에 생매장했다는 사실 또한 저주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편, 주인공 대부분이 의사라서 그런지 책을 읽으며 해수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인종, 종교, 국정, 정당 당파,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해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근데 해수처럼 환자의 과거를 알게 되면 어떨까? 내가 살리려는 사람이 연쇄살인마라면,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일으킨 사람이라면, 아이를 무참히 성폭행한 성폭행범이라면... 그래도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지키며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오로지 환자만을 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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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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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피하는 분야가 있다면 단연 시다. 시는 글 중에서 가장 간결하지만, 가장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단순하게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산문보다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는, 마치 묵은 숙제를 해결하듯이 한 해의 한 권 이상의 시집을 읽고 있다는 것과 시 뒤에 붙은 "역사"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시의 역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책 속에는 모든 시의 역사라기보다는 (영미권 혹은 서양)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었다고 볼 법하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 시(인)도 등장하긴 하지만, 책의 상당수는 영국과 미국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인류에 등장한(기록으로 현존하는) 첫 시는 과연 무엇일까? 기원전 20세기 경에 등장한 길가메시 서사 시라고 한다.(다행히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어봤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사실과 함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시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등장하는데, 실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세계사를 통해 익히 들었던 터라 신화와 연관된 서사시는 흥미를 자아냈다.

그 밖에도 방대한 내용만큼이나 종교적 색채와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과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나 존 밀턴의 실낙원이나 되찾은 낙원 등의 시도 만날 수 있다.

시의 역사를 보면 14세기 이후의 다양한 사조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시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띄는 시기(17세기)를 넘어서면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상징주의 등의 사조가 등장한다. 특이점이라면 여성 시인들의 활약기도 책 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류시인들 역시 자신만의 색채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제와 시어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존 밀턴처럼 종교적 색채를 띤 시인의 다음 시기에 등장한 시인들은 정 반대적인(성적 욕망과 성적 희열에 집중하는) 색채를 가진 시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번역가의 말처럼, 시는 타 언어로 번역하기 참 힘든 장르인 것 같다. 모국어로 쓰인 시조차 이해가 어려운데, 타 문화와 시 속의 분위기 등을 우리 말로 옮기는 게 과연 얼마나 힘들까? 사실 우리나라의 많은 주옥같은 시들이 외국어로 번역이 힘든 것 또한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의 역사를 통해 시의 변화와 방향성을 맛볼 수 있었고, 시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나이기에, 이 책이 아니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보지 않을법한 시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인간사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시의 주제는 죽음과 사랑이 대부분인 걸 보면 말이다. 시 중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시어 속에 숨겨서, 혹은 대놓고 희로애락을 드러내며 쓰인 시도 있다. 시 안에는 시인의 삶과 생각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역시 어찌 보면 자신만의 관점에서 시를 평가하기도 한다.

시가 낯설고 어렵다면, 우선 시의 개관이라 할 수 있는 시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사조와 시를 맛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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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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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의 지도는 과연 같을까? 여러 가지 이유로 과거의 장소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환경의 변화 때문이 많지만, 문화나 지역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떠오른다. 물론 그 정도로 급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주제이기에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다.

책 속에는 37곳의 장소들이 등장한다. 때론 도시기도 하고, 강이 되기도 한다. 들어본 적 있는 지역도 있지만, 낯선 곳도 상당수 있다. 총 4개의 주제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주제는 고대 도시에 대한 내용이다. 고대 도시라는 이름처럼 과거 번성했지만 현재는 잊히거나 여러 환경의 영향으로 숨어버린 도시들이 그곳이다. 코로나 전에 부모님이 여행을 다녀오셨던 페트라 이야기가 특히 반가웠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고대 도시. 그렇기에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곳은 2004년 대형 쓰나미로 인해 모습이 드러난 인도의 마하발리푸람이라는 지역이었다. 쓰나미는 인류의 많은 것을 빼앗아가기에 결코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근데, 이 쓰나미가 감춰져있던 도시를 드러냈다. 커다란 파도와 물살이 모래와 흙을 씻어내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조각과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멋진 위용이 그동안 감춰져있었다니...! 사진으로 보면서도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물에 둥둥 뜬다는 바다 사해도 이 책에 등장한다. 사해가 사라지는 곳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소금 성분 때문에 뜬다는 것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사해인데 말이다. 과거에 비해 사해의 크기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개인적으로 4장의 등장한 지역들은 씁쓸하고 가슴이 아팠다. 다른 이유가 아닌 인간에 의해 사라질 지경에 처한 곳들이 다수 등장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만년설이 녹아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사실 책 속에 등장한 곳은 10곳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곳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기온이 오르며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인간의 탐욕 때문에 무분별하게 벌채가 이뤄지고 불타 없어지는 지구 곳곳의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 이야기로 등장하니 책잡히기 그지없었다. 2022년에는 10곳이 소개되었지만, 10년 후에는 30곳 40곳이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남아있을 때 지켜야 한다. 훗날 잊어버리고 후회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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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하인후 옮김,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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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작인 나의 로망, 로마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김상근 교수의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자의 방식은 특히 인문학 초심자들에게 유용할 것 같다. 인문학 보다 여행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이라 쓰고 마키아벨리라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만약 반대로 마키아벨리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아마 지레 겁먹고 책 표지조차 펼쳐보지 않는 독자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전 작과 달리 이 책에는 번역자가 등장한다. 책 서두의 그와의 관계와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완역은 했으나, 공급에 비해 수요가 적은 관계로 안타깝게 사장될 뻔한 하인후 역자의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바탕으로 김상근 교수가 사랑하는 도시 피렌체의 역사와 문화 등이 어우러져서 책에 담겨있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16년~1434년까지의 피렌차사(평민의 시대)와 1434~1525년까지의 피렌체사(메디치 가문의 시대)로 나누어져 있다. 총 13장에 거쳐 피렌체의 유명한 명소들을 다룬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이라는 부제답게 명소와 연결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가이드가 필요한 법.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파악했겠지만, 이 책의 가이드는 무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다. 책에 인용된 피렌체사의 저자 역시 마키아벨리다. 마키아벨리의 저서와 함께 피렌체의 피의 역사를 통해 세계사 뿐 아니라 인간사의 교훈까지 한 번에 얻을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한 피렌체의 3대 천재인 단테,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뺀다. 피렌체로부터 내쫓기다시피 해서 결국 프랑스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와 그들의 도시 피렌체는 여러모로 유서가 깊다. 특히 르네상스 기대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메디치 가문 역시 이 책의 한 장을 차지할 정도로 빼놓을 수 없으니 말이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게 마련인가 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니 말이다. 마치 우리의 붕당정치처럼 피렌체에도 두 당으로 나뉘어서 피 튀기는 복수의 복수를 거듭하는 모습을 책 속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귀족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평민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했을까? 글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귀족들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그렇기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층민들과 주변의 평민들을 대하는 걸 보면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구나! 싶다. 피렌체사의 주된 이야기는 계층 간의 투쟁이다. 지배하지만 지배하는 법을 몰랐고, 지배당하기 싫지만 자유를 지키는 법을 몰랐던 그들은 그저 서로를 향해 적대적인 감정만 드러냈을 뿐 서로 윈-윈 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렇기에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의 이야기는 상당수가 반목에 대한 이야기였다.

역사는 돌고 돈다. 피렌체의 피의 이야기들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 역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 피렌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의 교훈도 바로 이것이다.

지배하려는 자는 위엄을 지켜야 하고,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자는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3곳의 명소를 여행하며,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와 역사를 통한 교훈까지 한 번에 얻을 수 있어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맛볼 수 있는 아주 유용하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마키아벨리의 글을 통해 언급했던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어쩌면 또 다른 피렌체의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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