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 그림의 침묵을 깨우는 인문학자의 미술독법, 개정증보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안현배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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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내용에 전부터 눈이 가던 책이 있었다. 나는 미술관에 간 시리즈라고 부르는 책 중 한 권이다. 여러 권의 책을 만났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한 미술관과 관심은 있지만 좀처럼 친숙해지기 어려운 인문학의 만남이라... 둘 다 어려워하는 분야지만 그럼에도 관심이 있기에 전자책으로 보다가 덮었던 책이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보기에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만나게 된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는 무척 반가웠다. 무엇이 개정된 것일까? 우선 표지가 개정되었다. 유리 피라미드가 전면에 담긴 밤의 루브르박물관의 전경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전에 담긴 표지보다 더 우하하고, 깊이 있어 보이는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책 속 글은 다름이 없었지만, 담긴 미술작품들의 경우 상당히 증보된 것 같다. 우선 더 많은 그림이 등장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또 궁금해지는 미술작품들이 있는데, 독자가 아쉬움을 느끼지 않도록 더 많은 미술작품을 실어놓은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에서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 확대한 사진도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책 속에는 총 4개의 큰 주제 안에 65개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물론 하나의 소주제 안에 비교가 되는 또 다른 작품들이나 작가가 언급한 다른 작품들도 등장하기 때문에 이 한 권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앞표지가 루브르박물관인 것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상당수 작품들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에 등장하는 글 중 일부는 루브르 박물관 작품 해설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프로그램을 봐서 그런지, 책을 통해 다시 만나는 루브르박물관은 낯이 익었다. 48만 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 중인데, 1분씩만 할애해도 1년을 봐야 할 정도라 하니 어마어마하다. 어찌 보면 이렇게 책을 통해서 작품을 보는 게 작품을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을 듯싶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작품은 Chatper4. 인간을 비춘 미술에 담겨 있던 마리 기욤 브누아의 흑인 여인의 초상화라는 작품과 그와 관련된 저자의 글이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루브르 작품 해설에 반기(?)를 든 저자의 글 덕분에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마리 기욤 브누아는 18~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다. 근데, 18~19세기는 제국주의가 활기를 쳤던 시기였다. 그런 그가 흑인 여성을 모델로 하는 그림을 남겼다. 루브르는 그의 작품에 대해 노예 여성에 대한 공감과 사회의식 그리고 그녀가 가진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해설한다. 그에 대해 저자는 그가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로 비추어 볼 때 루브르의 평가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표현했다. 브누아가 그린 그림들의 경우 권력자들의 그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게 진정한 미술감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대세 혹은 전문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만의 생각과 감성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말이다. 상당히 많은 작품들을 다루지만, 길지 않은 내용에 글이라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마 저자 역시 한 권의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루브르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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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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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 것 같다. "혼자서"와 "종이우산"의 의미를...

새해 아침 떠들썩한 자살 소식이 톱기사를 장식했다. 12월의 말일. 80대 노인 세명이 호텔에서 엽총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시노다 간지, 시게모리 츠토무, 미야시타 치사코다. 연락을 받은 가족과 지인들은 패닉 상태가 된다. 무슨 일이 이 세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간 것일까?

나 역시 이들이 자살을 하게 된 원인을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었나 보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은 아니다. 그렇기에 원인이 되는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보다는, 그 사건 이전과 이후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책의 상당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가족들을 비롯한 지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말이다.

유일한 여성인 미야시타 치사코. 외손자인 기타무라 유우키가 그녀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들은 것은 처갓집에서 설맞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유우키는 사건의 당사자가 자신의 외할머니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소식을 들은 유우키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누나인 도우코로 부터 사건을 전해 들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인 미야시타 로코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말이다. 물론 누나 역시 친할머니와의 불화로 16살에 집을 떠나긴 했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다르다. 아내로부터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이미 와해된 가족을 지금 와서 다시 만나는 것은 불편하다.

시노다 간지의 가족인 아들 시노다 도요코, 딸인 다케이 미도리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암에 걸리긴 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로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왜 가족도 변변치 않은 그들과 함께 엽총으로 자살을 택한 것일까? 어머니 옆에 가족 묘지도 준비되어 있음에도 셋은 하치오지시의 공원묘지에 함께 묻히기로 했다는 소식 또한 반갑지 않았다. 덴마크로 유학을 떠난 딸 시노다 하즈키는 할아버지 사건에 급거 귀국한다. 하즈키는 안데르센에 대한 연구를 위해 덴마크에서 유학 중이다. 사실 하즈키 역시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짐 정리는 물론, 덴마크에 있는 손녀에게 택배까지 보낸 상태였다. 가족들만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시게모리 츠토무. 그는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그의 부고를 챙겼다. 그중에는 가와이 쥰이치라는 사람이 있었다. 츠토무에게서 온 편지를 받는 순간, 쥰이치는 츠토무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츠토무와 알고 지낸 다른 지인들이 모였다. 쥰이치는 그를 위해 송별식을 열고자 했다. 함께 사망한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거절당했다.(특히 간지의 아들인 도요가 상당히 반대했다.) 츠토무 만의 송별식을 준비하던 중에 몹쓸 질병이 전 세계에 창궐했다.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다. 결국 송별회는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된다.

책 안에는 셋의 마지막 이야기와 함께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등장한다. 그들이 같은 날 죽음을 택한 이유는 사실 모르겠다. 그 저 한 인물이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듯한 이야기를 꺼낼 뿐이다. 그나마 그들 셋이 아주 오래전 같은 직장인 출판사에 근무했었고, 공부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꾸준히 갖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세 노인의 죽음으로 세 노인과 관계가 있던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그리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전혀 연락도 하지 않았던 가족과 그 일을 계기로 껄끄러운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하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매개가 누군가를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만났던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작품과 뭔지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만난 이야기에는 불륜과 같은 색다른 사랑 이야기와 함께 노곤한 오후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이 작품은 죽음이 전면에 등장해서 그런지 다른 느낌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가 책 속에 등장하니, 왠지 더 실제적이라 느껴진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마지막을 대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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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유전자 - 협력과 배신, 그리고 진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니컬라 라이하니 지음, 김정아 옮김, 장이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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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우연에 기댄듯 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리차드 도킨슨의 이기적인 유전자 역시 관심은 같지만 진화론자의 시각이라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반신반의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근데, 읽을수록 흥미로웠다. 과학 책이 맞아?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깊이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이기적인 유전자 만큼이나 색다른 협력의 유전자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리차드 도킨슨의 책은 읽지 않았기 때문에 지극히 제목으로 유추해 보자면 둘은 상충하는 내용인가 싶었다. (다행히 책 속에서 이기적인 유전자의 주된 내용을 살짝 언급하고 있이에 상충이 아닌 상보의 관계라고 보면 좋을 듯싶다.)

유전자가 이기적인 것도, 유전자가 서로 협력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제1의 목적은 자손 번식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접했던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더 건강하고 힘 있는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행동에서 강한 것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등장한다. 비단 유전자 세계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살아남기 위해 협력보다는 경쟁을 택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미래를 위해 협력을 하는 유전자를 가진 종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이다. 경쟁 사회에서 지쳐있는 우리에게 협력의 유전자가 흐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엄마인 과학자라서 그런지, 그녀의 시각에서 본 유전자의 세계는 자못 독특하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보니, 퇴근 후 집안 일과 육아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남편이 육아와 집안일에 참여할 시간이 적다 보니, 늘 허덕인다. 아빠보다 엄마가 육아와 집안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서양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엄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저자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구체적 이유를 제시한다. 막연하게나마 여성이 임신을 하기에 그렇다는 것에 반기를 드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해마처럼 아빠가 양육을 도맡아 하는 동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결혼 전 혹은 임신 전에 책을 접했다면 출산을 조금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임신이 암 발생을 높일 수도 있다니... 역시 몸이 망가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일어나고 돌아다니는 상당한 생명체들과 달리 인간은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출생하는 것일까?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생육을 설명하자면 임신을 유지할수록 엄마의 몸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이유 때문이란다. 어느 정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출생하려면 총 19개월이 필요한데, 엄마의 몸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태아를 몸에 오래 두는 것은 엄마의 입장에서 상당한 위험이 수반된다. 그런 면에서 10개월은 엄마가 위험을 버틸 수 있는 최대의 기간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와 함께 여성의 폐경을 설명한다.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죽기 전까지 번식능력을 갖는다.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 평균 50세의 폐경이 되고, 그 이후로 2~30년을 더 생존한다. 여성의 폐경은 과연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의 경우도 엄마의 딸의 번식기간은 교차된다. 딸이 생식능력을 가질 즈음에, 엄마는 폐경이 된다. 책에서는 근연도 비대칭이라는 개념에서 폐경을 설명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되면 두 아이를 길러내는 게 쉽지 않다. 그렇기에 후대를 더 잘 키워낼 수 있는 환경에 집중을 하게 된다. 폐경은 번식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후대의 유전자를 더 잘 키우기 위한 인간만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된 알락노래꼬리치레, 청줄청소놀래기, 오스트레일리아흙둥지새 등의 생존은 상당한 흥미를 자극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 같아 보였지만, 그에는 확실한 의미가 있었다. 즉, 생물의 행동에는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알락노래꼬리치레 부모가 먹이를 가지고 왔을 때 내는 소리의 경우 단지 식사를 전달하는 효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목적은 새끼를 더 빨리 독립시키고자 교육하는 데 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 만나보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시각에서 인간의 행동-배신과 부패의 이야기까지-을 설명하는 부분도 신선했던 것 같다. 그 또한 미래를 위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과거에 비해 경쟁 사회에 내쳐진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협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질감이 큰데, 큰 테두리에서 보자면 협력 또한 목적(미래를 위한)을 또 다른 행동의 한 범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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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작별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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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택지가 불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미래를 맡기게 될까?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의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의 생을 바친 무언가가 있는 사람들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라도, 바보 같은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자신의 존재가치이며 삶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첫 장면부터 괴이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떤 물건을 찾는 듯한 두 남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근데 그 물건이 무엇인 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탐정사무소 지소장과 밑창이라고 불리는 백한기가 보낸 젊은 남자 박가람이 찾는 물건은 무엇일까? 탐정이 등장하고, 물건을 유추하는 것을 보고 추리소설인가 싶었다. 근데 그들은 말미에 가서야 재등장한다.

다음 장면도 역시 괴이하다. 극저온 체임버에서 갑자기 깨어난 류요엘. 7년 후 깨어나기로 되어있었는데, 2년 7개월 만에 깨어난다. 깨어난 그를 보살피는 간병로봇. 체임버에서 일어나자마자 심장의 통증을 느낀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인지할 수 있다. 냉동 수면 연구센터 피카이아의 책임연구원 류요엘. 유전형 희소질환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자신을 체임버에 넣는 데 도움을 주었던 후배이자 선임연구원인 이을유를 찾아야 한다. 그를 찾으면 7년이 아닌 2년 7개월 만에 깨어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동생 김산이 어떻게 지내는 지도...

근데 그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화기가 꺼져있단다. 체임버에서 나와 사원증을 걸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과거 안면이 있는 직원을 만난다. 그가 냉동 체임버에서 막 깨어난 사실을 전혀 모른다. 그는 모두에게 외국에 좋은 연구소로 스카우트된 걸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전한 사실은 이을유가 3,000억 사기 사건으로 구속되었단다. 일이 꼬인다. 을유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산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10살이었던 산이는 이제 12살이 되었을 텐데...

유명한 생태조류학자인 아버지 류한조. 아버지와 이혼하고 탈북자 출신 남자와 재혼한 엄마. 엄마는 20살 터울의 동생 김산을 낳는다. 20살 터울이라서 그런지, 요엘은 산이 동생 같지 않았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산이 3살 되던 해. 엄마가 북한으로 건너간다고 한다. 월북을 하겠단다. 산이의 아버지는 27년 전 탈북한 사람이었는데, 북한에서 백두혈통의 연줄이 있기에 건너가도 고생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산이만은 놓고 가기를 애원했지만, 그녀는 결국 어느 날 연락 없이 사라진다. 브로커인 백한기를 만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였다. 엄마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백한기를 통해야 했다. 근데 그는 매번 연락할 때마다 상당한 금액의 돈을 요구한다. 여유가 있었기에 마지못해 수락하지만, 매번 갖은 핑계를 대는 그가 꼴 보기 싫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저 수긍할 수밖에...

어린 시절 요엘은 아버지의 탐조에 동행한 기억이 있다. 새를 너무 좋아했던 아버지. 새의 소리만 들어도 어떤 새 인지 아는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연구를 위해 건너간 곳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의 비밀. 미묘하게 달랐던 버튼을 발견하게 된 날. 지하실에서 아버지가 했던 연구는 상상할 수 없었다. 새를 사랑하고, 새를 아꼈던 아버지가 했던 연구는 끔찍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한조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연구의 결과를 이뤄내야 했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이었을 것이다.

기이한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중반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반전 아닌 반전에 이해가 된다. 왜 그가 7년이 아닌 2년 7개월 만에 냉동 체임버에서 깨어난 것인지, 깨어나자마자 들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와 동생 산이에 존재까지... 과연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끝까지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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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 곁의 산 자들 -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배운 생의 의미
헤일리 캠벨 지음, 서미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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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보는 충격과 슬픔의 충격을 분리해야 해요."

언제부턴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의미에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경험치들이 생겨날수록 죽음이 더 두렵기도 하고, 더 와닿기도 한다. 이 책에는 누구보다 죽음을 수시로, 자주 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의 경우 요즘은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지만, 죽음과 관련된 곳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화장장이나 장례식장을 혐오시설로 보고 반대하는 경우도 매체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사실 서양은 죽음에 대해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외국의 공동묘지만 해도 공원처럼 꾸며놓는 경우가 상당해서였다. 하지만, 죽음은 인간에게는 범접하기 싫은 무언가인 것은 동서양이 같은 것 같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장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30대 여성인 포피의 부모는 상당히 개방적이라서 7세 때 바나나에 콘돔 씌운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는데, 그럼에도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 말이다.

놀라웠다. 나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죽음과 죽음을 수습하는 사람들을 같이 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에 당혹스러웠다. 우리가 접하는 죽음의 모습들은 어느 정도 수습이 된 이후의 모습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얼마 전까지 옆에서 같이 숨 쉬고, 음식을 먹던 사람이면 그 충격은 더 심해진다.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다양했나 싶을 정도로 책 안에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장의사를 비롯하여 사형집행인, 해부 책임자, 시인 방부처리사, 범죄현장 청소부, 사산 전문 조산사, 인체 냉동 보존 연구소 임직원에 이르기까지 12개의 직업인들과 함께하며 기자인 저자는 죽음의 다양한 모습과 생의 의미들을 글로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직업은 사산 전문 조산사였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기 전에는 임신을 하면 무조건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출산을 20일 앞둔 여배우가 사산을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같이 배 아파 아이를 낳지만, 아이에게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사산 전문 조산사인 클레어 역시 매번 가슴 아픈 경험을 목도한다.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어서 더 큰 상실감을 갖게 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직업을 통해 상처받은 가족들을 위로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부모들을 위해,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들(아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손. 발 도장 등)을 보관해뒀다 훗날 찾는 부모들에게 전달한다. 단계적으로 아기를 가족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가령 아기를 먼저 살펴보고 생김새를 설명하기도 하고, 사진으로 먼저 보도록 권하거나 담요로 아이를 감싸고 발만 보이게 해서 안아보게 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그를 위해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한다.

그동안 읽었던 죽음과 관련된 책들은, 비슷한 시선에서 죽음을 바라보게 해줬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을 가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른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죽음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삶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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