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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유전자 - 협력과 배신, 그리고 진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니컬라 라이하니 지음, 김정아 옮김, 장이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평점 :

진화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우연에 기댄듯 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리차드 도킨슨의 이기적인 유전자 역시 관심은 같지만 진화론자의 시각이라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반신반의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근데, 읽을수록 흥미로웠다. 과학 책이 맞아?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깊이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이기적인 유전자 만큼이나 색다른 협력의 유전자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리차드 도킨슨의 책은 읽지 않았기 때문에 지극히 제목으로 유추해 보자면 둘은 상충하는 내용인가 싶었다. (다행히 책 속에서 이기적인 유전자의 주된 내용을 살짝 언급하고 있이에 상충이 아닌 상보의 관계라고 보면 좋을 듯싶다.)
유전자가 이기적인 것도, 유전자가 서로 협력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제1의 목적은 자손 번식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접했던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더 건강하고 힘 있는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행동에서 강한 것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등장한다. 비단 유전자 세계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살아남기 위해 협력보다는 경쟁을 택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미래를 위해 협력을 하는 유전자를 가진 종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이다. 경쟁 사회에서 지쳐있는 우리에게 협력의 유전자가 흐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엄마인 과학자라서 그런지, 그녀의 시각에서 본 유전자의 세계는 자못 독특하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보니, 퇴근 후 집안 일과 육아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남편이 육아와 집안일에 참여할 시간이 적다 보니, 늘 허덕인다. 아빠보다 엄마가 육아와 집안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서양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엄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저자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구체적 이유를 제시한다. 막연하게나마 여성이 임신을 하기에 그렇다는 것에 반기를 드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해마처럼 아빠가 양육을 도맡아 하는 동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결혼 전 혹은 임신 전에 책을 접했다면 출산을 조금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임신이 암 발생을 높일 수도 있다니... 역시 몸이 망가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일어나고 돌아다니는 상당한 생명체들과 달리 인간은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출생하는 것일까?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생육을 설명하자면 임신을 유지할수록 엄마의 몸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이유 때문이란다. 어느 정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출생하려면 총 19개월이 필요한데, 엄마의 몸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태아를 몸에 오래 두는 것은 엄마의 입장에서 상당한 위험이 수반된다. 그런 면에서 10개월은 엄마가 위험을 버틸 수 있는 최대의 기간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와 함께 여성의 폐경을 설명한다.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죽기 전까지 번식능력을 갖는다.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 평균 50세의 폐경이 되고, 그 이후로 2~30년을 더 생존한다. 여성의 폐경은 과연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의 경우도 엄마의 딸의 번식기간은 교차된다. 딸이 생식능력을 가질 즈음에, 엄마는 폐경이 된다. 책에서는 근연도 비대칭이라는 개념에서 폐경을 설명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되면 두 아이를 길러내는 게 쉽지 않다. 그렇기에 후대를 더 잘 키워낼 수 있는 환경에 집중을 하게 된다. 폐경은 번식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후대의 유전자를 더 잘 키우기 위한 인간만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된 알락노래꼬리치레, 청줄청소놀래기, 오스트레일리아흙둥지새 등의 생존은 상당한 흥미를 자극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 같아 보였지만, 그에는 확실한 의미가 있었다. 즉, 생물의 행동에는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알락노래꼬리치레 부모가 먹이를 가지고 왔을 때 내는 소리의 경우 단지 식사를 전달하는 효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목적은 새끼를 더 빨리 독립시키고자 교육하는 데 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 만나보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시각에서 인간의 행동-배신과 부패의 이야기까지-을 설명하는 부분도 신선했던 것 같다. 그 또한 미래를 위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과거에 비해 경쟁 사회에 내쳐진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협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질감이 큰데, 큰 테두리에서 보자면 협력 또한 목적(미래를 위한)을 또 다른 행동의 한 범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