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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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 것 같다. "혼자서"와 "종이우산"의 의미를...

새해 아침 떠들썩한 자살 소식이 톱기사를 장식했다. 12월의 말일. 80대 노인 세명이 호텔에서 엽총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시노다 간지, 시게모리 츠토무, 미야시타 치사코다. 연락을 받은 가족과 지인들은 패닉 상태가 된다. 무슨 일이 이 세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간 것일까?

나 역시 이들이 자살을 하게 된 원인을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었나 보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은 아니다. 그렇기에 원인이 되는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보다는, 그 사건 이전과 이후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책의 상당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가족들을 비롯한 지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말이다.

유일한 여성인 미야시타 치사코. 외손자인 기타무라 유우키가 그녀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들은 것은 처갓집에서 설맞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유우키는 사건의 당사자가 자신의 외할머니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소식을 들은 유우키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누나인 도우코로 부터 사건을 전해 들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인 미야시타 로코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말이다. 물론 누나 역시 친할머니와의 불화로 16살에 집을 떠나긴 했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다르다. 아내로부터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이미 와해된 가족을 지금 와서 다시 만나는 것은 불편하다.

시노다 간지의 가족인 아들 시노다 도요코, 딸인 다케이 미도리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암에 걸리긴 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로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왜 가족도 변변치 않은 그들과 함께 엽총으로 자살을 택한 것일까? 어머니 옆에 가족 묘지도 준비되어 있음에도 셋은 하치오지시의 공원묘지에 함께 묻히기로 했다는 소식 또한 반갑지 않았다. 덴마크로 유학을 떠난 딸 시노다 하즈키는 할아버지 사건에 급거 귀국한다. 하즈키는 안데르센에 대한 연구를 위해 덴마크에서 유학 중이다. 사실 하즈키 역시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짐 정리는 물론, 덴마크에 있는 손녀에게 택배까지 보낸 상태였다. 가족들만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시게모리 츠토무. 그는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그의 부고를 챙겼다. 그중에는 가와이 쥰이치라는 사람이 있었다. 츠토무에게서 온 편지를 받는 순간, 쥰이치는 츠토무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츠토무와 알고 지낸 다른 지인들이 모였다. 쥰이치는 그를 위해 송별식을 열고자 했다. 함께 사망한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거절당했다.(특히 간지의 아들인 도요가 상당히 반대했다.) 츠토무 만의 송별식을 준비하던 중에 몹쓸 질병이 전 세계에 창궐했다.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다. 결국 송별회는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된다.

책 안에는 셋의 마지막 이야기와 함께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등장한다. 그들이 같은 날 죽음을 택한 이유는 사실 모르겠다. 그 저 한 인물이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듯한 이야기를 꺼낼 뿐이다. 그나마 그들 셋이 아주 오래전 같은 직장인 출판사에 근무했었고, 공부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꾸준히 갖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세 노인의 죽음으로 세 노인과 관계가 있던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그리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전혀 연락도 하지 않았던 가족과 그 일을 계기로 껄끄러운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하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매개가 누군가를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만났던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작품과 뭔지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만난 이야기에는 불륜과 같은 색다른 사랑 이야기와 함께 노곤한 오후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이 작품은 죽음이 전면에 등장해서 그런지 다른 느낌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가 책 속에 등장하니, 왠지 더 실제적이라 느껴진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마지막을 대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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